하지만 독서 예찬론자라는 말은 불편하다.
21살부터 독서를 시작한 나는 지금까지 약 10년째 책을 읽고 있다. 1,000권 이후부터는 딱히 숫자를 세지는 않는다. 이런 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들을 보인다. 기억상으로는 이런 반응이 많았다.
'열심히 독서한다고는 하는데 하는데 저러다가 말겠지'
몇 년이 지나고서는 이런 반응도 있었다.
'쟤는 뭐 말만 하면 독서래?'
대화를 하다 보면 책에서 본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었고, 문제가 발생하면 책에서 힌트를 얻어 해결하고는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결과적으로 좋은 일들이 많이 발생했지만 그 과정이 계속해서 책과 연결되니 주변 사람들은 뭔가 불편했나보다.
독서 예찬론자라는 말도 듣곤 했는데 그 단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삶의 많은 문제를 책에서 얻는 지혜로 해결해나가긴 했지만 사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나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준이라고 해서 뇌피셜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예찬론자의 뜻을 다시 찾아보았다. 국어사전에는 '어떤 대상을 매우 좋게 여겨서 찬양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무조건이라는 단어는 없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의미를 보면 무조건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봤다.
'독서가 필요없는 사람이 있을까?'
독서는 보통 간접 경험이라고 한다. 무엇이든지 직접 경험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간접 경험을 해야 한다. 직접 경험이 매우 풍부한 사람이라면 굳이 독서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책 읽는 인간, 호모부커스>에서도 설명했듯이 난 공부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었고, 집안은 매우 평범했다. 인간관계와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었던 사람이었다. 돈에 대해서도 걱정이 너무 많았다.
이게 21세기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어쨌든 나는 독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10년째 독서하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은 정말 만족스럽다.
독서 예찬론자. 모든 사람에게는 필요하지는 않지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단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내 과정을 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소한 사건들부터 엄청난 기회를 만들어낸 이야기까지 천천히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