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국가 (1)

by 그린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되는 나라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전에는 어떤 기년법을 썼다고 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누군가의 탄생을 기준으로 B.C와 A.D라 구분한다 했던가. 후일 종교적 색채의 배제를 위해 B.C.E와 C.E로 나눈다 했던 것도 같다. 폭풍 이전 사람들은 무엇을 더 많이 사용했을까? 지금 혀를 굴려 발음해 보면 C.E 쪽이 조금 더 매력적인 느낌도 든다. 뭐, 어찌되었건 그 두 기년법이 오늘날 역사서 안에서만 살아 숨쉬는 단어가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A.S 61년이다. After Storm의 머릿글자를 따 만들어진 기년법이다.


세계는 한 차례의 전쟁을 맛보았다. 전쟁 이후의 사람들은 그것을 폭풍이라는 추상적인 그릇에 옮겨 담아 불렀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 전쟁의 성격에 기가 막히도록 잘 들어맞는 이름이었다. 폭풍은 이름답게 자신이 휩쓸고 지나가는 자리의 ‘국가’를 모조리 뿌리째 쥐어뽑아 놓았고, 국가가 뽑혀나간 자리에는 민족과 인종과 문화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주(state)’라는 집단이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며 이 주들은 다시 얽히고설켜 ‘초주연합’이라는 거대한 덤불을 이루어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섯 개의 초주연합. 이들은 사실상 반백 년이 넘도록 국가의 역할을 대신해 오고 있었다.


살레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름다운 도시인 동시에 주인 동시에 초주연합이었다. 어째서 단일한 도시가 초주연합의 자격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언하지 못했으나, 살레가 세계의 다른 연합과는 도통 교류를 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명백했다. 살레는 잿빛과 노란빛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상호 존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들 색이 신기하게도 살레에서는 사방을 가득 채운 유이한 빚깔이었다. 잿빛 보도블럭과 가로등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으나 침울하지 않았고, 건물과 담벼락을 이루는 노란빛은 이른 오후의 햇살 같았으나 밝지 않았다. 살레는 그런 도시였다. 그런 살레를 세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야경국가’.


야경국가란 폭풍 이전의 철학자들에 의해 생겨난 개념이었다. 국민들의 삶에 일절 손대지 않은 채 치안과 외교권만을 담당하는 국가. 오직 이 두 가지의 과업만을 이행하는 살레는 야경국가라는 수식어와 참으로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살레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살레에 ‘국가’라는 칭호는 너무 과분하다는 것이 주된 감상이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국가의 실체를 두 눈으로 마주해 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지도자도 없었고, 물리적 공간에 기반을 둔 정부도 없었고,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공무 집행자들도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없었다’라는 묘사는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무언가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살레는 야경국가로서의 두 가지 책무를 단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었다. 사실 다른 초주연합과의 교류가 없으니 우리의 보이지 않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뿐이었던 셈이다. ‘살레에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끔 하는 것’. 우리의 정부는 그 임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정말, 정말 착실히 수행했다.


살레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해악을 끼칠 수 없었다. 만일 누군가 타인을 해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그는 늦어도 다음날 아침이 되기 이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겹게 손을 흔들며 내일 보자는 인사를 건넨 뒤 헤어졌던 사람이 다음날 아침 모든 살림살이와 소지품을 그대로 남겨 놓은 채 홀연히 사라져 있는 일은 살레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못해 실로 안심되기까지 하는 일이었다. 그런 ‘증발’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으레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범죄를 저지를 예정인 사람이었구나. 그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그렇게 사라진 후 무슨 일을 당하게 되는지, 그리고 ‘누가’ 그들을 끌고 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고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증발은 단 한 번도 잘못 집행된 적이 없었다. 무고한 사람이 끌려가는 일도 없었고, 무고하지 않은 사람이 끌려가지 않는 일도 없었다. 건국 이래 살레에서는 단 한 번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살레의 사람들은 한없이 따뜻했다. 그 옛날 야경국가라는 말을 처음 만든 폭풍 이전의 철학자조차 야경국가에서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이 생기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을 테지만, 정작 폭풍 이후 도래한 야경국가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굶어 죽거나 길바닥에 나앉아 얼어 죽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를 살뜰히 챙겼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무탈한 사회였다. 살레의 무탈함은 다섯 개의 초주연합 중 단연 비할 바 없이 최고였다. 어느 초주연합의 비평가는 이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나라를 일컬어 소국과민의 현대적 정의가 아니겠느냐고도 말했다.


살레의 무탈함. 누군가는 그것을 과학의 결실이라고 불렀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과학의 탈을 쓴 오판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헛소문이라 불렀으며, 다른 누군가는 마법이라고 불렀다.


살레의 안온함이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나는 살레의 유일한 심리학자다. 지금이 폭풍 이전이었다면 분명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강제로 뇌과학의 일부에 편입되고 만 영역이니 대외적으로는 스스로를 뇌과학자라 소개해야 한다.


살레가 이룩한 평화를 이르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는 ‘과학’이 맞다. 이곳의 모든 사람은 양쪽 귀 뒤에 작은 전극이 부착된 칩을 붙이고 다닌다. 왼쪽 귀 뒤에 붙어 있는 칩은 NRF 시그널을 생성하는 역할을 하고, 오른쪽 귀 뒤에 붙어 있는 칩은 NRF 시그널을 받아들여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아마 폭풍 이전에는 이 작은 칩 대신 자기장을 생성하는 기계를 사용했다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사람의 뇌를 한 번 영상화하려면 자기장 안에 사람을 밀어 넣고 RF, Radio Frequency 시그널을 쏘았다가 사람의 뇌 속에 있는 프로톤이 균형 상태로 되돌아오며 내뱉는 RF 시그널을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폭풍 이후의 과학자들은 자기장 없이도 뇌 혈관 속 산소 분자량에 비례하여 반사되는 새로운 신호를 찾았다. 그 혁신적인 발견을 이루어내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는 바람에 이름을 짓는 과정이 귀찮게 느껴졌는지 몰라도, 새로운 신호는 NRF, New Radio Frequency 시그널이라는 다소 진부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살레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지니고 있는 두 개의 작은 칩은 바로 이 NRF 시그널을 통해 우리의 뇌 영역 중 어느 부분이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를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게 하는 놀라운 역할을 한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국가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시켜 우리의 뇌를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뇌가 범죄 의지를 가지게 되면 그는 살레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거대한 금속 기계 안에 들어가야만 했던 폭풍 이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물론 국가가 우리의 뇌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실제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안온함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였다. 누군가 자신의 집 테이블 위에 잘 차려진 아침식사를 남겨 둔 채로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이따금씩 일어나면, 그 막연한 생각이 잠깐이나마 형체를 갖출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살레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는 성립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이 성립할 수 없는 문장이 살레의 수많은 - 고작해야 대여섯 개 정도가 전부이지만 - 언론의 1면에 대서특필되던 그날, 도시의 모든 사람들은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단순히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범죄라는 사건 자체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 도시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열하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비보를 듣자마자 정신을 잃은 탓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죽은 그 애는 내 동생이었으니까.






내 부모님은 나를 새라라고 불렀다. 따라서 자연히 그것이 내 이름이 되었다. 주민등록 체계도, 행정기관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법적인 이름이라는 것이 존재할 리가 없었으므로.


내 동생은 마찬가지로 새미라고 불렸다. 자연히 그것은 내 동생의 이름이 되었다. 새미는 마음이 따뜻하고 올곧은 아이였고, 플루트 선율이 들어간 음악을 좋아했고, 하늘의 한 폭을 그대로 베어 온 것처럼 나풀거리는 연한 색의 스커트를 좋아했다. 절벽에서 떨어지던 날, 아니 바다에서 떠오르던 날도 새미는 그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낮은 절벽과 맞닿아 있는 살레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거닐던 한 어린아이가 고개를 푹 처박은 채 물 위를 부유하던 새미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연한 하늘색 스커트는 원래의 색보다 더 짙은 푸른빛의 바닷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등에는 총알이 박혀 있었다.


명백한 살해였고, 살레에서 일어난 최초의 범죄였다. 살레의 모든 사람들은 국가가 붕괴한 것이 아니냐며, 우리 중에 살인범이 있다는 뜻이 아니냐며 두려움에 빠졌다. 경찰도 정부 기관도 없는 이곳에서 최초의 살해는 재앙이었다.


그 아름다운 바닷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새미와 내가 종종 함께 산책을 나가던 곳이었다. 날이 더운 여름이 되면 새미는 옷이고 뭐고 다 내던져 버린 다음 저 바다로 뛰어들어 몸을 담그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럼 나는 웃으며 내년에는 꼭 수영을 나가자고 답하곤 했고. 실로 무탈한 하루하루였다. 어쩌면 무탈함은 진작부터 우리에게 곧 깨어지겠다고 신호를 보내 왔는데, 그걸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머릿속의 산소 분자가 오른쪽 칩을 향해 반사하는 NRF 시그널은 무탈함이 우리에게 전하는 경고음이었다. 곧 깨어질지 모르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경고음. 그러나 새미의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아무런 신호도 전해 받지 못했고, 결말은 참담했다. 무탈함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전하기를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NRF 시그널 외의 다른 신호를 읽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무탈함은 새미가 숨을 거두기 두 달 전까지는 거듭 이어져 오고 있었다. 처음으로 균열이랄지 미세한 실금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두 달 전부터였다.


새미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유진. 그는 새미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올곧은 사람이었고, 아이 같으면서도 호쾌한 웃음소리를 지녔고, 악기 다루는 것을 좋아해 이곳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두 사람이 만난 지는 제법 오래되었기 때문에 나 역시도 유진과 오랜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종종 일이 끝나면 갓 구운 빵을 사 들고 우리 집을 찾았고,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빵을 조금씩 뜯어 나누어 먹으며 온갖 주제로 담소를 나누는 안락함을 함께 누리곤 했다. 살레의 사람이라면 응당 누려야만 하는 그런 종류의 행복이었다. 삶이 언제까지고 이렇게 부드럽게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그런 행복. 그 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삶의 당연한 진실을, 살레 바깥의 사람들이 이미 머리와 마음에 단단히 아로새긴 진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을 쌓아 올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행복이 깨지는 데는 정말 찰나의 순간만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 세 사람이 육 년여간 쌓아 올린 행복은 단 하룻밤만에 그 명을 달리했다. 어느 날 아침,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유진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와 토스트 한 쪽을 테이블 위에 남겨 둔 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의 집에 들어선 새미와 나는 한참 동안 서로의 떨리는 손을 마주 잡고 있어야만 했다. 잘 다려 놓은 셔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둔 작은 로즈마리 화분, 벽에 가지런히 세워 둔 기타. 그의 공간 안에 있던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유진만 없었다.


그가 전날 밤 인근의 야산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새미와 나는 문드러진 동아줄을 움켜쥐듯 그 이야기 하나에 매달려 유진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유진이 증발했다고는 도무지 믿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마음 따뜻한 살레의 사람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두 팔을 걷어붙이고 유진을 찾는 우리를 도왔다. 유진이 가르치는 아이들, 유진의 퇴근길 근처에 있는 상점의 주인들, 그날 빨래를 너느라 오후 내내 바깥에 있었다는 이웃집의 주민. 모두가 ‘산에 오르는 유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노라고 증언했을 때, 유일하게 ‘산에서 내려오는 유진의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한 것은 다름아닌 빵집 주인이었다. 유진이 매일같이 갓 구운 빵을 사기 위해 발을 들이곤 했던 그 빵집의 주인은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어제 열 시쯤 마지막으로 봤다니까. 여기 들렀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분명히 확인했어.”


그가 말을 끝맺자마자 함께 걱정스러운 얼굴로 유진을 찾던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더 이상 유진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살레는 그렇게 유진을 기억 속에서 도려내 버렸다.

새미는 한동안 방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새미는 유진이 범죄를 저지를 예정인 사람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육 년간 함께했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랑했던 연인의 부재를 오롯이 견뎌내는 일을 힘들어했을 뿐이다. 아주 드물게 방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새미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지만, 그 열린 방문 틈새로는 어김없이 새미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않는 짙고 숨 막히는 슬픔이 새어나오곤 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준다는 말만큼 기가 찬 표현도 없지만 그때 나는 정말이지 새미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어 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딱 두 사람분의 온기만이 남은 우리의 거실에서는 이전과 같은 담소가 아닌 진중한 상담이 울려 퍼지게 되었다. 이제는 뇌과학에 편입되어 버린 영역이 한때 지녔던 뇌과학이 아닌 부분집합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새미는 그런대로 잘 이겨내는 듯 보였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새미는 말했다. 그래,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해 놓고 일주일이 지나자 새미는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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