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랑아와 노느라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던 내게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계의 작은 바늘은 숫자 9를 가리키고 있었다.
너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 영어 캠프에서 제공하는 점심도 거절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온 후 줄곧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나는 조용히 네가 랑아와 노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얹혀 산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본능을 자제하도록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었다. 그렇지만 자연적인 생리 현상까지 막을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일순간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은 너는 미안하다며 주방으로 향했고, 곧이어 식탁에는 두툼한 스테이크가 올라왔다. 내 접시에는 한 사람 몫으로 알맞은 양의 고기가 놓여 있었다. 네 접시에는 한 사람 몫이라기엔 약간, 아니 많이 애매한, 수치로 따지자면 0.7인분 정도의 양이 될 법한 고기가 놓여 있었다. 나머지 0.3인분은 어딜 갔나 궁금했던 나는 식탁 밑에 또 다른 접시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더 몸을 숙이자 챱챱 소리를 내며 고기를 먹고 있는 랑아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한 번 쿵쾅, 하고 뛸 때마다 그 박자에 맞추어 누군가가 대정맥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식탁 밑에 맹수의 새끼가 웅크리고 있다. 나는 내가 그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지만 발끝에 와 닿는 랑아의 뜨거운 날숨은 일 초에 한 번 나던 쿵쾅, 소리를 두 배로 빨라지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그래서 대정맥을 잡아당기는 누군가의 손길 역시 두 배로 빨라졌고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다리를 의자 위로 올렸다. 왜 그래? 네가 물었고, 아니 그냥 다리에 쥐가 난 거 같아서,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대답했다. 그 순간 랑아가 앞발로 내 무릎을 슥 훑어 내렸다. 동시에 한 줄기 식은땀이 내 목덜미를 슥 훑어 내렸다.
랑아가 깨어 있는데 먼저 잠에 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2층의 방에 몸을 숨긴 채, 영겁의 기다림 끝에 더 이상 랑아가 내는 푸르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방의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런데 방문을 잠그려고 보니 손잡이가 없었다. 손잡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휑하니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즉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방문이 안 잠겨.”
“응. 손잡이 고장 났어. 왜?”
넌 내 생사가 달린 일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방문이 안 잠긴다니까, 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 뭘 무서워해.”
“뭘 무서워하냐고? 내가 지금 안 무섭게 생겼어?”
“아, 너 잠들고 나면 내가 문 앞에 상자 같은 거 쌓아서 막아 놓을게. 아무도 못 들어가게 빈틈없이 막아 줄게. 됐지? 얼른 자.”
나는 다시 2층의 내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 밑에서 낡고 오래된 구식 자명종을 발견한 나는 그걸 머리맡에 놓고 잤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무언가 묵직하고 단단한 게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잠결에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너에게 하면 아직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어린애가 무슨 포효야, 하면서 믿어 주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입 다물고 있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내가 방문을 열었을 때 그 앞에는 상자가 쌓여 있기는커녕 먼지 한 움큼 떨어져 있지 않았다. 너는 내 생사가 달린 일을 가볍게 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덮어놓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막상 방을 나서긴 했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갈 만큼의 용기는 나지 않아 그대로 계단 앞에 쭈그려 앉았다. 랑아는 너보다 일찍 깨어나 계단 아래층에서 나를 한심하다는 듯 올려다보았고, 너는 한참 후에 깨어나 나를 발견하고 2층으로 시리얼과 우유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계단 난간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나 오늘 아르바이트 가야 돼.”
나는 곧 나가 봐야 하니까 랑아가 현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지 않게 해 달라는 뜻을 담아 네게 말했다.
“무슨 아르바이트?”
“패스트푸드점.”
“그건 또 언제 알아봤대. 그럼 몇 시에 오는데?”
“여섯 시.”
“알았어.”
너는 랑아의 이후 행보에 관련해서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대정맥이 쫄깃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전속력으로 달려 현관을 지나 잔디밭 위를 질주했다. 랑아는 마당 한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올 때 랑아가 제발 대문 앞을 가로막고 있지 않길 기도하며 대문을 나섰다.
과연 기도는 효력이 있었다. 너의 배려인지 하늘의 배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랑아는 자기를 위해 마련된 방에서 토끼 봉제인형을 안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랑아가 잠든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나는 겨우 식탁에 앉아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너는 언제까지 그렇게 숨어만 지낼 거냐며 나를 타박했다. 전혀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아이한테 왜 그리 겁을 먹느냐는 것이었다. 나도 할 말이 없진 않았다.
“너야 주인이니까 그렇지. 네 말대로 동물은 주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며? 그럼 그건 너한테만 해당되는 얘기잖아. 나는 언제 물릴지 모른다고.”
“랑아 그렇게 사나운 애 아니야, 여태껏 한 번도 사람 무는 거 못 봤어. 물릴까 봐 무서우면 앞으로 집 들어오기 전에 잔디밭에서 구르고 오던지. 옷에 풀 냄새라도 배어 있으면 좀 덜하지 않겠어?”
“아예 화단에 들어갔다 나오라고 하지 왜?”
“그러던가. 풀 냄새보다는 꽃 냄새가 더 낫겠다.”
“아, 좀. 난 진지하다고.”
“랑아 진짜 순하다니까? 좀 이따가 랑아 우유 먹여야 하는데 그때 네가 한번 먹여 봐. 직접 만져 보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싫어.”
나는 네 긴 부탁을 단 한 마디 말로 거절했지만 너는 나의 거절을 다시 거절하고는 랑아에게 먹일 우유를 준비하러 가 버렸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얹혀 사는 것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실감한 나는 화단으로 나가 흰 꽃이 피어 있는 꽃나무에 온몸을 비볐다. 몸에서 싱그러운 향이 날 때까지 비비고 또 비볐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양쪽 벽에 붙어 있는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치는데 그것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흉터 하나 없는 깨끗한 내 얼굴에게 작별을 고한 후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난 랑아에게 다가갔다. 랑아는 오렌지색 재봉선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토끼 인형에 정신이 팔려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너는 팔짱을 낀 채 뒤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우유 먹일 때 뭐라고 해?”
“글쎄. 랑아야 우유 먹자, 그래.”
나는 네 억양을 그대로 따라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랑아야, 우유 먹자.”
랑아는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토끼인형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직접 안아서 먹여 줘야 돼, 라는 네 말이 섬뜩하게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없던 용기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억지로 쥐어짜낸 다음 랑아의 배 밑으로 천천히 팔을 넣었다. 뜨겁고 북슬북슬한 동물 가죽 특유의 느낌이 팔뚝에 전해졌다. 랑아가 자꾸만 내게 앞발을 휘둘렀고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장난치는 거야, 네가 좋은가 봐.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네가 말했다. 과연 바로 코앞에서 본 랑아의 발톱은 짧고 하얀 솜털이 돋아나 있는 영락없는 어린 동물의 것이었다. 돌연 랑아가 내 옷 속을 파고들며 냄새를 맡으려고 하자 나는 그 자리에서 실신할 뻔했다. 랑아는 꽤나 무거웠다. 내가 젖병을 입에 물려주자 랑아는 힘차게 우유를 빨며 온몸을 버둥거렸다. 너는 나와 랑아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와 번갈아 눈을 맞추었다. 랑아는 잠시도 앞발을 가만히 두지 않고 계속해서 내게 안기려고 했다. 나는 온몸의 긴장을 풀지 않고 경직된 자세로 랑아에게 우유를 먹였다. 너는 보호자로서의 임무를 다했다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봐, 내가 뭐랬어. 다음부터 우유는 네가 먹이면 되겠다.”
랑아는 요 근래 보기 드문 무척이나 잔망스러운 사자였다. 내가 사자인 랑아를 두려워한 것과 마찬가지로 랑아도 사람인 나를 두려워한 모양이었다. 내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자 랑아는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도 2층의 구석진 방에만 한정되어 있던 생활의 범위를 서서히 넓혀갈 수 있었다. 나는 너와 함께 아래층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식탁 밑에 랑아가 웅크리고 있어도 발을 의자 위로 올리지 않게 되었고,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랑아는 내 뒤를 쫓아다녔다.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나는 너에게 산책을 나가자고 졸랐지만 너는 랑아를 혼자 집에 남겨 둘 수 없고, 랑아를 데리고 나가면 그 즉시 경찰에 끌려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수많은 이웃들 중 단 한 명도 네가 사자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너의 집과 옆집을 가로막은 담장은 그 간격조차 일정하지 않은 허술한 나무 울타리에 불과했지만 신기하게도 옆집의 그 어느 누구건 울타리 너머로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울타리 너머에 뭐가 있든지 간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너는 네게 고양이를 맡기고 여행을 떠났던 그 집 외에는 일절 이웃과 왕래를 하지 않았고, 랑아는 늘 마당을 하릴없이 배회했지만 결코 대문 바깥으로는 나간 적이 없었다. 너와 랑아가 함께하는 최대 규모의 야외 활동은 다름 아닌 공놀이였다. 주로 네가 공을 던지고 랑아가 받는 것이었는데 가끔씩 랑아는 공을 받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 것으로 반항을 시도하기도 했다. 공놀이의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키는 주인에게 화가 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랑아는 공놀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주워 와, 응, 주워, 주우라니까, 아니 그거 말고, 잡아, 옳지, 잡으라고!
네 목소리는 시간에 비례하여 점점 커져 갔다. 너는 내게 랑아가 기본적인 공놀이의 개념조차 모른다며 투정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랑아 대신 내가 너의 공놀이 상대로 나서게 되었다. 너는 랑아에게 말했다.
“보고 배워.”
나는 랑아가 보고 잘 배울 수 있도록 네가 던지는 공을 받아 천천히 다시 넘겨주었다. 이렇게, 하는, 거야, 알았어? 너는 공을 한 번 던질 때마다 그 호흡에 맞추어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랑아는 공에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너무 힘을 주어 던지는 바람에 공이 멀리 날아가 울타리 사이에 걸리자 랑아는 갑자기 마구 흥분하며 공을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으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공을 이빨로 물어뜯어 울타리에서 빼낸 랑아는 조각난 공의 일부를 입에 물고 내게 돌아왔다. 그 모습은 앞으로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 반드시 화단에 들어가 몸에 풀 향기가 밸 때까지 온몸을 격정적으로 나뭇잎에 비비고 난 다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강박관념을 내게 심어 주었다. 그 후로 나는 랑아와 공놀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지치지도 않고 꾸준히 랑아를 데리고 함께 공놀이를 했다. 공놀이를 제외하면 네가 하는 일은 예능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소파에 누워 있는 것이 다였다. 주말 내내 너와 함께 TV를 본 결과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어느 지점에서 웃어야 할지는 대충 감을 잡게 되었다. 나는 네가 웃을 법한 부분이 나오면 먼저 웃음을 터뜨리며 저 사람 진짜 웃긴다, 그치? 라고 능청스럽게 말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너와 함께 박수를 쳐 가며 깔깔대고 웃고 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 그건 랑아였다. 랑아는 수시로 내 몸에 기어오르려고 했다. 몸을 이리저리 피하면 자기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필사적으로 안기려 들었다. 기어코 무릎 위로 올라오는 데 성공한 랑아는 내 옷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더니 기분 좋은 듯 가르랑거리며 내게 앞발을 붕붕 휘둘렀다. 새끼 사자의 흔한 장난이었지만 내게는 좀 위협적이었다. 볼을 부비는 랑아를 보고 너는 말했다.
“나한테도 이렇게까지는 안 하는데. 널 진짜 좋아하나 봐, 신기하네.”
네 말에는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