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활 범위가 넓어질수록 랑아의 행동 범위 역시 넓어졌다.
랑아는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 귀신같이 알아내고 나를 쫓아와 장난을 쳤다. 물론 랑아는 귀엽고 애교가 많았지만 나는 랑아가 언제 다시 과격한 모습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매일 집으로 돌아오기 전 반드시 화단의 꽃나무에 온몸을 비비고 잔디밭 위를 구른 다음에야 나는 현관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특히 바깥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온 날은 반드시 그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옷도 랑아가 물어 왔던 공처럼 이리저리 뜯겨 조각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돌아오면 너는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너와 같은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다만 네 얼굴을 마주하려면 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내 바짓단을 잡아당기며 펄쩍펄쩍 뛰는 랑아를 먼저 안아 올려야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커피를 마시거나 보드게임, 카드놀이 같은 것을 했다. 랑아는 집안을 돌아다니다 내가 너와 그렇게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면 유독 평소보다 더 힘차게 볼을 부비며 달라붙었다. ‘내게만’ 달라붙었다. 내가 계속해서 밀쳐내면 랑아는 그제야 구석으로 가서 털실 뭉치와 토끼 인형을 가지고 혼자 놀았다. 간혹 랑아는 토끼 인형을 내게 물어다 주기도 했는데 그걸 본 너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너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말하며 웃었다.
“내가 뭐랬어. 주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애라고 했지?”
랑아가 안아 달라는 듯 내 품을 파고들 때면 너는 가늘게 뜬 눈을 하고 입에는 미소를 건 채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만으로는 네 속마음을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직 네 입이 웃고 있다는 사실 하나에 의지해 내가 랑아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네가 매우 흡족해하는 것 같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왠지 모를 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종종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랑아의 장난을 모두 받아 주며 함께 놀아 주곤 했다. 랑아와 노는 일은 실로 엄청난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여느 때처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네가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를 맞아 주었을 때에도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보다는 ‘역시 피곤하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오전 내내 혼자 랑아를 감당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내가 묻자 너는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했다.
“말을 안 들어도 너무 안 들어. 우유 먹을래? 해도 싫다 그러고, 목욕할까? 해도 싫다 그러고, 밖에 나가서 좀 놀다 올까? 해도 싫다고 난리야. 다 싫대 다.”
그러다가도 랑아가 우리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푸르르 소리를 내면 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랑아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얘가 귀엽긴 귀엽단 말이야, 가끔씩 이렇게 애교도 떨어 주고. 낮에는 진짜 말 안 듣더니.”
너에게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랑아를 볼 수 있는 건 저녁나절이 전부였고, 그 때의 랑아는 너무나 얌전했으므로 나는 네 고단함의 정도가 얼마나 될지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네 피곤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자 집에 돌아온 다음 랑아를 돌보는 일은 모조리 내가 도맡아 하겠다고 나섰다. 랑아에게 우유를 먹이고 털을 빗어 주고 같이 장난도 쳐 주고 하면 시간은 금방 갔다. 나는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 네가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랐지만 어째서인지 너는 쉬기는커녕 어딘가 못 미더운 표정으로 내가 랑아를 보살피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뭔가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직감했지만 정작 그 실수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 뭐 잘못하고 있어? 라고 물어도 너는 고개를 살며시 저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서 더 헷갈렸다. 하루는 네 얼굴이 드러내는 못 미더움의 정도가 결국 최대치를 찍었고 그 다음날 아침 너는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해 주지 않았다. 랑아에게 우유를 먹일 때 목덜미를 감싸 안으면 안 되는 건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실수한 건 그것 외에는 딱히 없어 보였다. 그날 저녁 나는 여느 때처럼 집에 돌아와 랑아를 안고 너에게 향했다. 너는 식탁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직까지 네 얼굴에 나를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남아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달리 너는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왔어?”
그러나 네 얼굴은 평소 같지가 않았다. 볼에 난 가늘고 긴 상처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인지 묻는 내게 너는 별일 아니라며, 바보같이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생긴 상처라고 대답했다. 척 보기에도 별일이 아닌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네가 숨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 더 캐묻지 않고 랑아에게 우유를 먹인 후에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에 물을 받고 있는데 랑아가 나를 따라 욕실로 들어왔다. 순간 이상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그 냄새의 근원이 랑아일 것이라고 확신한 나는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얘 목욕 언제 시켰어?”
“데려오고 나서 아직 한 번도 안 시켰어.”
“뭐?”
“하도 안 한다고 버텨서.”
“그럼 내가 시킬게. 대충 물 뿌리고 씻기면 되지?”
나는 랑아를 안아 욕조에 집어넣었다. 동시에 네가 잠깐만! 하고 악을 쓰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욕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외쳤다.
“랑아 몸에 물 끼얹으면 안 돼!”
나는 욕조 안에서 물을 튀기며 놀고 있는 랑아를 돌아보았다.
“왜?”
너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나와 랑아를 바라보았다.
“너 괜찮아?”
“나? 괜찮은데. 왜?”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랑아는 선반에 놓인 샴푸 병을 밀어서 바깥으로 떨어뜨리며 놀고 있었다. 나는 네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랑아를 씻기기 시작했다. 내가 랑아를 모두 씻기고 나오자 너는 거실에서 조용히 나를 불렀다. 나를 옆에 앉혀 둔 채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네가 맨 처음 꺼낸 말은 이거였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너는 상처가 난 뺨을 내 쪽으로 돌려 보였다.
“아까 우유 먹이다가 긁혔거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어서 억지로라도 먹여 보려고 했는데 내가 안자마자 할퀴더라. 젖병은 입에 갖다 대지도 않았는데. 근데 네가 먹이니까 낑 소리 한 번 안 내고 잘 먹더라?”
괜찮냐는 말을 건네야 했었지만 왠지 그 말을 건네는 것조차 너를 괜찮지 않게 만드는 것 같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사자는 물 싫어해. 랑아는 특히 더해. 몸에 물 몇 방울만 튀어도 바로 기겁하면서 사람한테 달려들어. 저번에 목욕 한 번 시키려고 했다가 정말 죽을 뻔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멀쩡하네. 솔직히 좀 놀라워.”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랑 같이 있을 땐 그래. 뭘 하려고 해도 싫다고 하고, 못 하게 막아. 근데 너랑 있을 땐 안 그래.”
할 말이 없을 땐 침묵이 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수그렸다.
“내가 아니라 널 주인으로 생각하나 봐.”
“왜?”
“몰라. 이유가 있겠어?”
너의 대답은 부풀어 오르는 많은 뜻을 꾹꾹 눌러 한 단어에 담아낸 것이었다. 랑아가 너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아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내 담당이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 담당으로 확정되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모든 일을 제쳐두고 먼저 랑아의 털을 빗어 준 다음 우유를 먹여 주고 목욕을 시켜야 했다. 식탁에 혼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네는 네 모습에서 피곤함이 잔뜩 묻어나는 것만 같아 너를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지만 나는 나대로 내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었고 동시에 네가 나를 쳐다보는 눈이 나날이 가늘어져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랑아는 늘 해맑았다. 너와 함께 TV를 보다가 랑아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면 나는 의식적으로 랑아를 멀리했다. 너는 나와 한 공간에 있을 때는 랑아에게 손도 대지 않으려 했다. 불쌍한 랑아는 너와 나 어느 쪽으로부터도 쓰다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자 더 이상 소파로 기어오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2층의 내 방으로 올라가 잠들 준비를 할 때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미루어 보아 너는 내가 없을 때 랑아와 함께 노는 것 같았다. 주로 재롱을 떠는 건 너였고 귀찮아하는 건 랑아였다. 나는 네가 왜 그토록 랑아에게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네가 나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둔감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너의 과분한 사랑을 받는 랑아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다시 주말이 돌아왔다.
네가 바다에 가자며 랑아를 차에 태우려고 했을 때 랑아는 처음으로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는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고, 랑아는 바닥에 드러누워 털실 뭉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너는 자동차 열쇠를 흔들며 거실로 와서 랑아의 앞에 주저앉았다.
“랑아야, 우리 바다 갈까?”
네가 말하는 ‘우리’에는 내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실망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책에 열중하고 있었다. 주인공의 독백은 시답잖았고, 움직이고 싶지 않아 하는 랑아의 낑낑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구슬펐다. 왜? 바다 보러 가면 좋잖아. 너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 본 적 없지? 너는 조심스럽게 랑아를 안아 올리려고 했지만 랑아는 발톱으로 바닥을 벅벅 긁으며 일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손가락 하나 잘못 까딱하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이미 아는 사람의 조심스러움이 너에게서 느껴졌다.
“진짜 안 나갈 거야?”
체념한 듯 랑아를 바라보던 너는 내게 말했다.
“너도 같이 가자. 나와.”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네 뒤를 따랐다. 내가 바깥으로 나가는 걸 보고서야 랑아도 느릿한 걸음으로 집을 빠져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리고 있던 너는 예상했다는 듯 피식 김새는 소리를 내며 웃어 보이고 자동차의 뒷문을 열어 주었다. 랑아는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올라탔다. 나는 조수석에 탔다.
“얘 데리고 갈 수 있는 바다가 있어?”
너는 미리 봐 둔 곳이 있다며 해안가의 도로로 차를 몰았다. 저 멀리로 파란 바다의 한쪽 귀퉁이가 보이자 랑아는 창문을 벅벅 긁어 댔다.
내가 창문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람을 맞자 너는 내 어깨를 툭 치며 그러다 큰일 난다고 한마디 했다. 네가 그런 식으로라도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 못내 감격스러웠다. 차를 세운 너는 우리 차의 앞뒤에 사람이나 차가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후 뒷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앞좌석의 문은 열어 주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앞좌석의 문을 스스로 열 수 있었고 너도 내가 알아서 나오리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너와 랑아가 모두 떠난 차 안에 홀로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랑아마저도 조용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나는 랑아가 달려들면 온 힘을 다해 랑아의 앞발을 뿌리치기 시작했다. 내게 달라붙는 랑아를 보며 기분 나빠할 너를 나름대로 배려한다고 한 행동이었지만, 내가 랑아를 밀쳐내는 것을 본 너의 싸늘한 시선 때문에 더 이상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 감을 잡는 것은 예능프로그램에서 네가 웃을 타이밍이 언제인지 짚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너는 랑아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네가 랑아를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랑아는 내가 왜 너를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너와 나 사이엔 아직까지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여태껏 그 간극이 궁핍함과 부유함이라는 두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의 차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너와 나 사이의 간극은 궁핍함과 궁핍함이라는 두 단어 사이의 거리였다. 딱 그만큼이었다.
나는 너를 의식해서 일부러 랑아와 멀찌감치 떨어져 지냈다. 랑아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올 기색을 내비치면 나는 두말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너도 나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랑아에게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랑아가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토끼 인형뿐이었다. 랑아에게 우유를 먹이는 일도 다시 네가 맡게 되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네가 우유를 먹지 않는 랑아와 격한 씨름을 벌였을 때에도 나는 너를 도와주지 않았다. 랑아는 우유를 먹는 것은 고사하고 네게 안기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런 랑아를 어르고 윽박지르고 다시 달래기를 계속해서 반복한 끝에 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밥을 계속 먹었다. 내가 밥을 다 먹어 갈 즈음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너는 네 입은 입이고 랑아 입은 입도 아니냐며, 지금껏 랑아 밥도 안 주고 뭘 한 거냐고 나를 조용히 다그쳤다. 나는 도대체 너의 수많은 장단 중 어느 것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몰랐다. 그날 이후 너는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랑아에게 우유를 먹였다. 나는 네게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너와 나와 랑아가 이상하게 얽혀 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 셋 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 같다는 이야기. 그것은 네 사랑의 방향 하나만 바뀌면 모든 것이 평안해질 수 있다는 말을 예쁘게 포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를 좋아해 달라는 말은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내 말에 너는 생뚱맞은 부탁을 했다.
“내일부터는 저녁 먹고 나서 바로 2층에 올라가 있으면 안 될까?”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왜 그렇게 순순히 대화를 끝마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약속대로 곧장 2층의 내 방에 올라가 문을 닫았다. 한밤중에 나는 가래가 들끓는 듯한 소리에 잠을 깼다. 아래층에서 가래 끓는 소리와 더불어 자박자박 하는 발걸음 소리도 들렸다. 랑아가 집 안을 활보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소리를 자세히 들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건 짐승의 소리였다. 가축화된 사자 랑아에게서 날 수 있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소리의 주인공이 너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 나는 문에 뚫린 구멍이 몹시 거슬렸다. 첫날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은 채 다시 잠에 들려고 노력하며 숨죽여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자 나는 어젯밤 그 소리를 낸 것이 랑아가 틀림없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랑아는 소파에 무수히 많은 발톱 자국을 남기고 바닥을 벅벅 긁으며 놀고 있었다. 나는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네가 아침을 먹으라고 불러도, 거실에서 같이 TV를 보자고 해도, 랑아가 심심하다는 듯 낑낑거리며 울어도 나는 계속 방에 남아 있을 요량이었다. 그러는 편이 너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너는 아침을 먹으라고도, 같이 TV를 보자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문에 뚫린 구멍 너머로 들려오는 랑아의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음악 삼아 침대에 누워 책을 보았다. 주인공의 독백은 여전히 시답잖았지만 책은 나름의 긴박감을 유지하며 거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래층에서 너와 랑아가 무엇을 하던지 개의치 않고 오로지 책의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늦은 오후 갑작스레 울려 퍼진 네 비명소리엔 방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급히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너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푸르르 소리를 내며 욕실에서 나오는 랑아가 보였고 나는 혹시나 싶어 조심스레 욕실 문을 열었다. 너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어찌할 생각도 못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네 하얀 뺨에는 불그죽죽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무척 두껍고 깊게 패인 상처였다.
그리고 그날 밤 너는 내게 무척이나 차분하고 기품 있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방 빼.
처음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걸 웃으며 받아치지 못했다. 정말? 사자 하나 때문에?
의도치 않게 헛나간 나의 말이 불씨가 되어 우리의 싸움은 시작이 되었고 점차 격해졌다. 나는 그깟 사자가 뭐라고 너를 이렇게까지나 예민하게 만드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그동안 참아 왔던 말을 내뱉었고 너는 네 뺨에 있는 세 가닥의 상처가 보이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나는 힘주어 말했다.
“난 랑아 싫어. 네가 좋아하고 또 네가 키우는 동물이기도 하니까 아무 내색 안 하는 거지.”
너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아 나는 황급히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너는 방 빼라는 건 그냥 해 본 소리였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집에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너는 나와 마주치는 것이 불편했는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어딜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나가 버렸다. 랑아와 단둘이 집에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나는 바로 화단으로 나가 꽃나무에 온몸을 미친 듯이 비볐다. 랑아가 나를 따라 마당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나는 랑아를 안고 네 방 안으로 들어간 다음 침대에 랑아를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랑아는 내려놓아도 내려놓아도 자꾸만 다시 안기려 하며 여느 때와 달리 격하게 달려들었다. 랑아가 마구 앞발을 휘젓는 통에 얼굴에 상처를 입은 나는 있는 힘껏 랑아를 내팽개치고 그대로 방을 나와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나 자신도 2층의 방에 가두었다.
아래층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하는 소리에 맞추어 심장이 뛰었고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누군가 내 대정맥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려웠다. 쿵, 쿵, 쿵, 쿵. 처음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리던 그 소리는 점점 무질서하게 변했고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열두 번째 소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 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방바닥을 굴러다니던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 들고 마구 풀어헤쳐 문에 뚫린 구멍 사이로 쑤셔 넣었다. 랑아가 혼자 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것이 틀림없었다. 모든 것이 고요한 가운데 아래층에서는 자박자박 하는 발소리만이 들려왔다. 나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고 내 정신은 언제 돌아올지 모를 네게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다. 랑아는 소리 없이 집안을 돌아다니다 마침내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2층에는 내 방 말고도 두 개의 방이 더 있었다. 첫 번째 방에 들어갔다 나온 랑아는 푸르르 소리를 내며 온몸을 떨었다. 두 번째 방에도 역시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랑아는 내가 있는 방의 문을 밀었다. 밀었는데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랑아의 심기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문을 타고 등으로 떨림이 전해졌다. 나는 낡아빠진 자명종을 오른손에 꼭 쥐고 눈을 감았다. 소리는 처음엔 쾅, 쾅, 쾅, 쾅, 이었고 그 다음에는 쾅쾅, 쾅, 쾅, 쾅, 불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이윽고 랑아의 발톱이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랑아는 문을 미친 듯이 긁어 대더니 다시 문을 들이받았다. 쾅. 그게 끝이었다. 랑아는 더 이상 방문을 두드리지도 않았고 바닥을 벅벅 긁지도 않았다. 바깥은 잠잠해졌다. 나는 공포에 떨며 의자를 세워 방문 앞을 막아 놓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너의 비명소리에 나는 문을 열었다. 너는 얌전히 누워 있는 랑아를 끌어안은 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소리를 질렀다. 랑아가 혼자 놀다 다친 게 틀림없는데, 얘가 얼마나 아팠으면 2층에 있는 네 방까지 찾아갔겠냐고, 그런데 문 한 번 열어 주지도 않고 잠이나 자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중얼거리며 너는 울었다. 랑아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너는 아무리 흔들고 때리고 깨워 봐도 랑아가 눈을 뜨지 않는다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너와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인 수의사가 우리 집으로 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외상 하나 없이 말짱한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랑아의 상태는 예상 외로 심각했다. 그녀는 랑아가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벽 같은 곳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는 바람에 내부출혈이 일어난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랑아가 뭘 하고 있었죠?”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라고 대답했다. 너는 옆에서 랑아가 쓰러져 있던 곳이 내 방 앞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럼 방문에 부딪친 게 맞네요.”
그녀는 랑아의 발톱과 턱을 어루만지더니 대뜸 말했다.
“집에 술 같은 게 있나요?”
너는 진열장 안에 와인이 대여섯 병쯤 있다고, 하지만 장식용이기 때문에 코르크를 따지 않은 새 와인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재차 물었다.
“손이 닿을 만한 곳에 있었나요? 그러니까 제 말은, 랑아가요.”
“아뇨. 진열장은 잠겨 있었는데.”
“이상하네요. 아무래도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몸 상태도 그렇고 방문에 머리를 박았다는 것도 좀 그렇고. 아무리 새끼고 집에서만 자란다고 해도 사자는 사자잖아요? 누가 일부러 갖다 박지 않는 이상 자기 혼자, 그것도 이렇게 세게 부딪칠 수는 없는 건데.”
그녀는 랑아가 곧 깨어날지도 모르지만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너와 나는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다. 그녀는 혹시나 랑아가 다시 깨어나면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던 그녀가 화단 앞에 멈추어 섰다. 내가 늘 미친 듯이 몸을 비벼 대곤 했던 바로 그 꽃나무 화단이었다.
“뭔가 했더니, 이거였네요.”
꽃나무의 이파리를 따서 냄새를 맡더니 그녀가 네게 물었다.
“이게 뭔지 아세요?”
“개다래나무 아니에요? 고양이들이 좋아한대서 심었는데.”
“맞아요, 고양이들이 이 나무에서 나는 향을 좋아하죠.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는 게 아니라 냄새에 완전히 취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거죠. 고양이뿐만 아니라 모든 고양이 과 동물한테 일종의 환각제처럼 작용한다고 보시면 돼요. 랑아가 취한 게 이것 때문이었네요.”
너는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그녀가 돌아간 후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랑아는 네 방 침대에 누워 있었고 너와 나는 번갈아 가며 랑아의 상태를 살폈다. 랑아는 초저녁에 아주 잠깐 눈을 떴지만 다시 스르르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의식을 잃었다. 랑아가 깨어났었던 그 찰나의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더 이상 랑아는 예전처럼 달려들지 않았다. 너는 랑아가 예전에 너를 대했듯이 지금 나를 대하는 것을 보고 랑아 옆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지, 너한테 그 냄새가 났었던 거지. 너는 낮게 중얼거렸고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단의 꽃나무에 몸을 비비라는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대안이랍시고 내놓았던 건 너였다. 너도 그걸 기억하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너는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랑아는 얼마 못 가 죽음을 맞이했다. 랑아가 세상을 떠난 것은 새벽녘 즈음이었지만 우리는 랑아가 누워 있는 침대 머리맡에 엎드려 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랑아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하기야 변화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아침에 우리가 깨어났을 때 랑아는 전과 변함없이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걸 육안으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너는 마당 한구석에 랑아를 묻어 주고 싶어 했다. 너를 도와 마당의 흙을 파내고 랑아를 묻으면서 나는 너에 대한 내 마음도 그대로 묻어 버려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동안 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하게 지냈다. 어느새 너와 나 사이의 간극은 고요함과 고요함 사이의 깊이가 되어 있었다. 수면의 고요함과 심연의 고요함 사이를 작은 해초처럼 떠다니며 우리는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괜히 평소에는 보지도 않았던 토크쇼를 틀어 놓고 깔깔대며 웃었고, 그 다음엔 열 편을 연속 방송하는 미국 드라마로 채널을 돌렸고, 드라마가 모두 끝난 후엔 해저의 신비를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러나 해저의 신비를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가 끝난 후 동물의 신비를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가 연속 방송되자 우리는 TV를 껐다.
그날 저녁 나는 머리맡에 있던 자명종을 침대 밑으로 옮겼다. 잠에 막 들려고 하는데 문이 열리고 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나갈 각오를 하고 있었고 방에서 내 짐을 빼는 모습도 머릿속으로 수십 번을 그려 본 나는 네가 들어오자마자 내일 아침 바로 떠날 테니 오늘밤까지만 신세 지게 해 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한참을 망설이고 있을 때, 너는 또 다시 무척이나 차분하고 기품 있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의외의 말이었다.
“우리 이제 같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