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르던 사자의 이름은 (1)

by 그린


마당에서 웬 짐승이 뒹굴고 있었다. 그 짐승은 사자였다. 먼젓번 고양이보다 훨씬 더 누런 털을 가진 새끼 사자였다.


“설마 자란 거야, 고양이가?”


“아니, 설마.”


너는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테니 일단 기다려 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너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란히 함께 졸업했지만 안타깝게도 대학교는 함께 졸업하지 못한 이십 년지기 친구였다.

너는 우리가 같은 대학교를 가지 못한 이유가 서로의 등수 차이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우리가 같은 대학교를 가지 못한 이유가 부모님 통장 잔고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등수건 통장 잔고이건 모든 면에서 네가 나보다 늘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이십 년째 변함이 없었다. 네가 나보다 우위에 있었던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꾸준히 널 좋아해 왔고 너는 꾸준히 날 밀어내기 바빴다. 너는 밝고 예의바르며 올곧은데다가 아홉 살씩이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겹받침을 쓸 줄 몰랐던 내게 매번 받아쓰기 공책을 보여 줄 정도로 심성이 고운 아이였다. 나는 그래서 너를 좋아했다. 그러나 너는 내 좋아함에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는 이유로 나를 받아 주지 않았다. 내가 짝사랑의 고단함을 핑계로 괜히 너에게 징징거릴 때면 너는 이렇게 묻곤 했다.


“내가 왜 좋은데?”


그럼 나는 으레 이렇게 답하곤 했다.


“넌 밝고 예의바르고 착하니까.”


“그럼 내가 음침하고 예의도 없는데다 못돼먹기까지 했으면 안 좋아했겠네?”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해, 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너는 아무런 이유 없이도 너를 사랑해 줄 존재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왜 좋은데? 라는 너의 질문에 실실 웃으며 그냥, 그냥 다 좋아, 라고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는 완두콩 한 알을 집을 수 있을 정도의 틈을 남기고 손가락을 오므려 내 눈앞에 들이대곤 했다. 내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요만큼, 아니 요만큼의 반도 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너와 나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물론 어찌저찌 잘하면 뛰어넘을 수야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어림잡아 인생의 절반을 넘게 똑 떼어 투자해야 할 것만 같은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간극이란 궁핍함과 부유함이라는 두 단어가 주는 어감의 차이였다. 궁핍함에도 여러 단계가 있겠지만 나는 굳이 말하자면 편의점에서 3분 카레를 산 다음 거기다 물을 왕창 붓고 끓여 그걸로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고, 요즘 들어 수중에 돈이 너무 없다 싶으면 조금 더 남겼다가 다음날 아침까지도 그걸로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궁핍함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반면 너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어린 딸이 머나먼 타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넓은 잔디밭이 앞뒤로 딸린 2층짜리 단독주택을 선뜻 내어줄 수 있는 정도의 재력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살고 있었다. 너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필리핀으로 떠나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자기소개서에 인쇄된 출신 대학과 지원 동기라는 까만 글자 사이의 여백에서 허덕이던 나는 닥치는 대로 이곳저곳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다가 자기소개서에 넣을 한 줄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학연수를 준비했다. 괜찮은 곳이 어디 없을까 찾아보던 차에 문득 필리핀에 있는 네가 생각이 났다. 설사 네가 나를 받아 주지 않겠다고 할지라도 나는 네게 빌붙을 생각이었다.


“빈 방 있어?”


나는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네게 물었다. 너는 네 부모님이 너에게 그러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뜻 집을 내주겠다고 했다. 다만 네 부모님은 집 전체를 내주셨지만 너는 2층의 구석진 방 한 칸만을 내주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나는 너 하나만을 믿고 필리핀으로 가는 저가항공사 비행기의 좁은 이코노미 석에 몸을 실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의 초입쯤 될 것 같은 동네에 너의 집이 있었다. 거의 다 온 것 같다는 내 전화를 받자마자 너는 누런 털에 갈색 얼룩이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껴안은 채 대문 앞으로 나와 나를 맞아 주었다. 삼 년 만에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었는데도 너는 바로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짜 오랜만이다, 어째 넌 키가 더 큰 거 같다? 신이 난 너는 혼자 대화를 이어 갔고 나는 그런 널 웃으며 바라보기만 했다. 고양이가 너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며 나를 잔뜩 경계하는 것이 느껴져서 네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너는 나를 앞세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대문 너머로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의 크기에 버금가는 넓은 잔디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잔디밭은 너와 생면부지인 사람이 봐도 네가 부모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내게 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네가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하는 것들은 주로 고양이와 관련된 물건이었다. 네 집은 마당에 놓인 캣타워, 손수 만들었다는 고양이 전용 그네와 같이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화단에 빽빽하게 들어찬 키 작은 꽃나무들도 고양이가 그 향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심은 것이라고 했다. 네가 고양이와 함께 산 지 꽤 오래되었으리라 생각했지만 너는 그 고양이가 옆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인데 이번에 그 집이 해외여행을 가게 되어 일주일 정도만 맡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는 2층의 맨 끝에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구석진 방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는 달리 그 방은 천장에 창문이 나 있어 햇빛이 잘 드는 꽤 괜찮은 방이었다. 다만 먼지와 거미줄이 치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나는 일주일 머물 고양이한테도 저렇게 잘 대해 주면서 내가 두 달 동안 머물 방은 왜 청소 한 번 제대로 해 놓지 않았냐고 네게 투덜댔다. 그 날 저녁 천장부터 바닥까지 방을 떠다니는 모든 부유물을 손수 치워 낸 후에야 나는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나는 다음날 유학원에서 운영하는 영어 합숙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고양이는 네 발 언저리에 쭈그리고 앉아 내가 대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것 때문에 나는 한낱 고양이에게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는 것만 같은 찝찝한 기분을 느꼈다.


이 주간의 캠프가 끝나 다시 너의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그 고양이가 이제 원래 집으로 돌아갔겠지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기뻤다. 저번처럼 나는 거의 다 와 갈 즈음 네게 전화를 걸었고, 너는 대문 앞까지 나를 마중 나와 주었다. 너의 품에 마땅히 안겨 있어야 할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고 혹시나 옆집 사람들의 여행이 길어져서 고양이의 체류 기간 역시 길어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싹 씻어 내린 나는 기분 좋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잔디밭 위를 뒹굴던 짐승과 나는 첫 대면을 하게 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은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면서 동물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고, 그러다가 마침 아는 분이 키우는 사자가 새끼를 낳았는데 맡아 줄 사람이 없어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분이 이전에 너무나도 많은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빚을 갚을 차례가 된 것 같아 새끼 사자를 받아 왔다는 것이 네가 설명한 ‘내가 새끼 사자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경위였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라고 내가 묻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법에 안 걸려? 어떻게 사자를.......”


“괜찮아.”


“난 안 괜찮아.”


나는 짐승과 한 집에서 살 생각으로 이곳에 온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는 언제든지 내게 방 빼! 라고 외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네가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그대로였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전망이었다. 네가 언제부터 이렇게 동물을 키우는 것에 집착했고, 왜 하필 많고 많은 동물 중에 사자를 선택한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너는 당연하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동물이 뭐가 어때서? 이 넓은 집에 나 혼자 사는데 내가 무섭겠어, 안 무섭겠어?”


“이제 나랑 같이 살 거잖아.”


“넌 두 달 있으면 갈 거잖아. 그리고 동물이 너보다는 훨씬 낫거든?”


동물은 주인이 어떤 사람이던 간에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 주인보다 더 잘생기고 돈 잘 벌고 잘나가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해서 동물이 주인 바꾸는 거 봤냐,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사자를 데리고 살아야겠다, 대략 이런 내용의 길고 긴 열변을 토하면서 너는 완두콩 한 알을 집을 수 있을 정도의 틈을 남기고 손가락을 오므려 내 눈앞에 들이대었다.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야, 나는 엄연히 이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 아니야?”


“너 돈 한 푼도 안 내잖아.”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두 달 동안 너랑 같이 살 건데, 난 조금도 배려 못 해줘? 아무리 새끼라도 사자는 사자잖아.”


“쟤 사람 안 물어.”


물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 맹수와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네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너는 여차하면 나더러 나가라고 할 기세였다. 나는 전략을 바꾸어 사자를 우리에 가둬 놓고 기르는 것으로 타협안을 마련하려 했다. 그러나 네 반응은 차가웠다.


“가둬 놓긴 뭘 가둬 놔, 쟨 사육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랑 같이 사는 거야.”


“그러니까 사자랑 왜 같이 사냐고.”


돌연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놀랐다. 잠시 후 너는 새끼 사자를 안아 든 채 식탁 밑에서 나왔다. 사자와 눈을 마주하는 건 내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를 바짝 견제하던 고양이와 달리 사자는 허공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정말 괜찮아. 얘 진짜 순한 애야. 야생성이라곤 조금도 없어. 얘 엄마도 날 때부터 순했다고 그랬으니까 얘도 그럴 거야.”


너는 손을 모아 사자의 턱을 쓰다듬었다. 사자의 목 깊은 곳에서부터 으릉으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이름은 랑아야. 얘, 쟤, 이렇게 부르지 말고 이름 불러줘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