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스에게선 계속 서신이 왔다. 그녀는 그녀가 말했던 대로 ‘그러고 싶기 때문에’ 우리의 일을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시해서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대체 우리의 무엇이 그녀의 구미를 그토록 당기게 했는지는 모르나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유디스의 호의는 우리가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큰 행운이니 이 행운을 단단히 잡고 놓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유디스는 편지에 우리의 지도자가 지금 살레도, 라울스도 아닌 다른 초주연합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적어 놓았다. 그녀의 행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곧 돌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기다려 보라고도 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는 우리의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 몹시도 궁금했지만 그녀에 관해 손에 쥔 형용사 비슷한 것이라곤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그녀는 유디스처럼 시원시원한 성격의 호인일까? 아니면 국가는 뒤로한 채 세계일주를 즐기는 무아몽중의 한량에 가까울까? 그러나 그녀가 국가를 내팽개쳤다고 말하기엔 살레의 ‘증발’은 너무도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져 오고 있었다. 물론 이젠 단 한 번도 잘못 집행된 적이 없었다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어려움이 있겠지만. 아, 사실 모르겠다. 딱 한 번 실수로 집행되지 않은 ‘증발’이 바로 새미의 죽음이었던 건지, 아니면 애초에 새미의 죽음은 ‘증발’을 동반하지 않는 죽음으로 분류된 건지. 야경국가의 입장에서 새미의 결말은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것일까.
이 이야기를 해리에게 하자 해리는 다시금 이런 반응을 보였다. “국가가 소나를 막았어야 할까?”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막았어야 한다고, 당신들 때문에 새미가 죽지 않았느냐고 외치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을 뿐이다. 정작 죽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새미였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해리에게 물었다. “국가가 새미를 막았어야 할까?”
답을 듣고자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답이 있는 질문 같지도 않았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고로 가 하루종일 그곳에 머무는 것은 이제 내 정해진 일과가 되었다. 이제 창고의 문을 열어젖혀도 안에서는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누군가 강제한 것이 아닌데도 나는 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구석으로 가서, 정해진 자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것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새까만 픽셀로 가득 메워진 새미의 모니터를. 다른 모든 모니터에 띄워진 뇌가 들숨과 날숨을 취하듯 색을 수시로 바꾸어 가며 이리저리 움직일 때, 새미의 모니터에서는 조금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폭풍 이전에는 죽음을 아주 긴 잠에 비유한 사람도 있었다던데. 모르긴 몰라도 퍽이나 낭만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죽음과 잠 사이에는 딱 고요히 움직이는 노란 픽셀의 파도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꺼져 있는 까만 화면만큼의 간극이 있는데. 둘은 닮은 구석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해리는 매일 자신의 퇴근길에 창고에 들러 나를 데리러 왔다. 보랏빛으로 여울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해리와 둘이서 가로등 밝혀진 거리를 걸으면, 아주 찰나이긴 하지만 삶이 꼭 이전과 똑같은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옷이고 뭐고 다 내던져 버린 다음 저 바다로 뛰어들어 몸을 담그고 싶다고 말하는 새미를 볼 때의 느낌이, 갓 구운 빵을 한 쪽씩 나누어 먹으며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온기를 느끼곤 했던 그때 그 거실에서의 느낌이 지금 이 순간과 제법 닮아 있다는 그런 착각. 해리와 헤어지고 홀로 아무도 없는 집의 대문을 밀어서 열면 낮은 금속 마찰 소리와 함께 그 착각이 깨져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곤 했다.
어제까지는 그랬다. 오늘은 그 착각이 평소보다 훨씬 빨리 깨졌다. 금속 마찰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평온한 착각은 언제고 산산이 부서져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집의 초록색 대문이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흩뿌려 놓은 듯한 붉은 물감. 원래 우리 집 대문이 초록색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마구잡이로 뿌려져 줄줄 흘러내리는 물감. 얼핏 핏자국을 연상케도 하는 그런 물감. 그건 너무도 선명한 증오의 빛깔이었다. 그 길로 나는 해리네 집으로 달려가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유디스에게 편지를 썼다.
당분간 라울스에 머물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지도자가 올 때까지 저를 숨겨 주세요.
다행스럽게도 유디스의 호의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모양이었고, 나와 해리는 짐을 챙겨 곧장 라울스로 떠났다. 경비행기에서 내리는 그 순간이 그토록 안심될 수가 없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유디스는 이전처럼 우리에게 호화로운 호텔의 객실을 내어주고, 마치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을 얻어 자기로 한 소녀처럼 들떠서 내 방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마 우리의 방문을 무료한 일상에 생긴 재미있는 이벤트쯤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유디스가 물었다.
최대한 사감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마치자 유디스는 한껏 동정 어린 눈빛을 하고서 나를 보았다. 그녀 특유의 단조로우면서 듣기 좋은 적당한 저음이 방 안을 울렸다.
“그렇구나. 하긴 정확히 나를 해치려고 하는 사람 한 명과 같이 있는 것보다, 기회가 되면 누구든 해치려고 하는 불특정한 사람 여러 명과 이따금씩 부딪히는 게 낫지. 그렇지?
방금 한 말은 농담이야. 네 표정이 너무 굳어 있어서. 심리학에서도 그런 개념이 있잖아, 언제 집에 불이 날지 모르고 언제 범죄의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데 우리가 멀쩡히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 마음에 그걸 억누르는 장치가 설정되어 있어서라고 말야. 정확히 뭐였더라, 신경전달물질이었나, 아니면 불안을 담당하는 뇌 구조의 일부였나? 그런 과학적인 이름이 아니었던 것도 같은데 자세히는 기억 안 나. 뭐지?
아무튼 걱정하지 마. 이곳에서 너를 해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말을 남기고 유디스는 몸을 돌려 사뿐히 문을 닫고 나갔다. 불안을 억누르는 마음의 장치라, 기억나지 않았다. 그 학문은 폭풍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유디스는 어떻게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유디스의 방문을 마지막으로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호텔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탓이다. 방에 난 거대한 통유리 창문으로 라울스의 도심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꼭 저명한 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만큼 멋진 도시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라울스가 독재국가라는 것을 깜빡 잊게 되곤 했다. 그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디스토피아’가 이렇게나 멋지다니.
제시간이 되면 객실 앞에 식사가 놓인 카트가 준비되었다. 가끔 해리나 유디스가 짧은 쪽지를 함께 넣어 두기도 했다. 대부분은 안부를 묻는 가벼운 인사말이었지만, 라울스에 도착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 밤 식사와 함께 들어온 쪽지는 가볍지 않았다.
사흘 뒤 살레의 지도자가 라울스의 정부 청사를 방문한다고 해, 준비해 둬. 유디스 A.
나의 뇌는 그날 밤새도록 수면 상태에 들지 못한 채 불을 밝혀서는 안 되는 픽셀만을 줄곧 밝혔다.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엇을 물어보아야 할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뭘까. 사실 ‘어째서 새미를 막지 않았나요’라던가 ‘어째서 소나를 막지 않았나요’ 등의 답이 없는 질문보다 훨씬 더 궁금해서 꼭 묻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 버린 차였다. 새미가 죽기 전에 그 애의 뇌는 어땠어요, 많이 힘들어했나요? 그 애의 머릿속에 세로토닌은 메말라 버렸던가요? 나라의 제재를 받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 그 애의 놀라운 전두엽이, 정말 변연계를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던가요? 그 애의 뇌를 이루는 모든 픽셀이 안에서부터 푹푹 썩어서 종국에는 그렇게 까만 화면이 되어 버린 건가요?
그날 나는 온통 까만 화면 안에 얌전히 누워 있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시간은 금방 흘렀다. 여전히 나의 뇌는 불을 밝혀서는 안 되는 픽셀을 밝히고 있는데, 우리의 지도자가 라울스를 찾는 날이 밝아 버렸다.
유디스는 정오가 되기 전까지 자신의 집무실로 오라는 마지막 쪽지를 남겼다.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채비를 하고 호텔 입구를 나섰다. 해리는 늘 그랬듯 먼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사를 향해 걸어가며 우리는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도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무슨 질문을 할 것이냐는 해리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왜 막지 않았는지 물어볼 거야.”
그리고 나는 덧붙였다. “딱히 답을 듣고 싶어서는 아니고, 그냥 한 번쯤은 탓해 보고 싶어서. 너는?”
“나는 할 말이 없어.” 해리는 멋쩍게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겠거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우리가 여태껏 이상적인 나라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
만남을 앞두고 긴장한 모양인지 해리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나를 먼저 층계 위로 올려보내고는 사라졌다.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 발을 들였던 순간을 떠올리며 계단을 한 칸씩 밟고 올랐다. 숲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더 좋은 곳이든, 더 나쁜 곳이든, 아무튼 어떤 방향으로든 이끌어 주는 안내판 역할을 할 것만 같던 국가를 막상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숲이 국가였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애초에 숲에서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늪에 빠진 걸지도.
오만 가지 잡생각이 떠오르는 와중에 흐리멍덩한 머릿속을 누군가의 낭랑한 목소리가 꿰뚫고 들어왔다.
“그쪽엔 난간이 없어요, 조심하세요.”
과연 2층에서 3층으로 넘어가는 층계참에는 난간이 없었다. 나는 곧장 몸을 반대편으로 기울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1층에서부터 줄곧 나와 같은 방향으로 계단을 뒤따라 올라오던 여자가 보였다. 가벼운 정장 차림의 그녀는 이곳에서 수습 직원으로 일하는 대학생 같기도 했고 젊은 서기관 같기도 했다. 한 손에는 서류 더미를, 다른 한 손에는 음료수를 들고 있었는데 언제 쏟을지 몰라 아슬아슬해 보였다.
“들어 드릴까요?”
“아, 그래 주시면 고맙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밝게 웃었다. 나는 그녀의 음료수를 받아들고 앞장서서 걸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3층이요.”
이전에 보았던 3층의 풍경이 뇌리에 스쳤다. 거대한 복도, 그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목조 장식이 달린 거대한 문. 3층에는 문이 하나뿐이다.
“유디스 님의 집무실로 가시나요?”
내가 묻자 그녀가 답했다.
“네.”
나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혹시 살레의 국민을 만나러 가시나요?”
“살레의 국민이요?”
시험지를 받아들자마자 생전 처음 보는 단어를 발견한 학생의 얼굴을 하고서,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까딱였다.
“유디스 님의 집무실에 살레의 국민이 오시나요?”
“네. 살레의 지도자와 회담을 가진다고-.”
그러자 그녀가 손을 뻗어 내 귀 뒤를 만졌다. 그녀의 손길 아래로 칩이 내 귓등을 콕 찔렀다.
이윽고 그녀는 환히 웃었다.
“너, 내 국민이구나.”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왜 막지 않았어요?”
목적어가 없는 질문이었는데도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답했다.
“그건 막을 수 없었어.”
유디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우리의 지도자는 살레 국민을 여기서 본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하고 장난스럽게 내뱉었다. 유디스는 마찬가지로 웃으며 나와 해리, 지도자에게 각각 자리를 하나씩 내주었다.
“내 귀빈들이니 라울스의 귀빈이나 마찬가지야. 외교 절차를 밟는다 생각하고 응대해 줘.”
지도자는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그래, 그러지 뭐. 뭐가 알고 싶어?”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악의도 거리낌도 없었다. 순전히 궁금함만이 존재하는 목소리. 정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알고 싶다는 목소리.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내 쪽이었다.
“새미가 죽은 건 제가 알고 있는 그대로가 맞나요?”
“네가 알고 있는 게 뭔데?”
“소나가 새미의 부탁을 받고 총을 쏘아서 새미가 죽었어요.”
“맞아.”
“왜 막지 않았어요?”
“아까도 물어봤고, 아까도 대답한 질문이네. 이미 답을 못 들을 걸 알고 있고.”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우리가 새미를 막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원칙적으로 자살이 범죄라서 막아야 한다면 새미는 진작에 사라졌어야 마땅해. 모든 뇌의 지도가 유죄와 무죄 사이 어느 한쪽에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건 아니야. 뇌는 생물학의 울타리 안에서 마음대로 발화하면 그만이지만 결국 그 뇌에 어떤 명찰을 달지를 정하는 건 도덕인걸? 굳이 따지자면 누군가 삶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그의 전구에 초록 불이 들어오는 건 맞아,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는 해도. 하지만 넌 그걸 묻는 게 아닌 것 같네.”
나도 모르는 사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상반신을 숙여 내게 얼굴을 보다 가까이 들이밀며 나와 눈을 맞춘 것을 보면.
“새미의 일은 미안해. 유감이야. 새미의 죽음에 얼마든지 국가를 탓해도 좋아. 가까운 이의 우울증을 알아차리지 못한 너 자신만을 책망하기가 힘들면. 그때 날 욕해.”
그리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다시 몸을 일으켜 기대어 앉았다.
“또 궁금한 건?”
이번에는 해리가 입을 열었다. “소나를 처벌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인가요? 어느 한쪽에 완벽히 딱 맞지 않는 경우라서요?”
그녀는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음, 맞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런 사례는 분류가 좀 귀찮아. 나 이전의 정권이라도 그랬을 거야.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어서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럴 때 터져 버렸네. 물론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 우리는 사고는 막지 못해. 일종의 사고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그럼 소나가 앞으로 제게 해를 끼치게 되어도 살레는 이를 막지 않나요?” 내가 물었다.
“소나가 네게 해를 끼친다고?” 그녀의 눈이 아까 보았던 것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생전 처음 보는 단어를 발견한 예의 그 눈빛.
“네. 소나가 저희 집 대문에 물감을 뿌렸을 때도 소나를 막지 않으셨잖아요.”
“소나가 너희 집 대문에 물감을 뿌렸다고?” 그녀는 나보다도 더 놀라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소나는 그것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라는 자각 없이 물감을 뿌린 걸까. 그래서 살레의 낡은 판옵티콘은 소나의 의지를 감지해내지 못한 걸까? 아니, 어쩌면 물감을 뿌린 사람이 소나가 아니었나?
그러나 잠시 동안의 정적을 끝낸 그녀의 답변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몰랐어. 나는 평소엔 시스템을 거의 꺼 두고 지내거든.”
네?
이 하나의 음절을 소리내어 말했는지, 눈으로만 외쳤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녀는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다. 정정할게, 나는 평소에 모니터링을 거의 하지 않아.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죠?” 해리가 다급히 물었고,
“난 어지간해서는 뇌 모니터를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그러니 경고 신호가 울리건 말건 나는 알 길이 없어.”
그녀가 평온히 답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증발을 완벽히 집행하셨잖아요. 유진도 그렇고, 불을 지르겠다고 한 남자도 그렇고. 혹시 모니터링을 전담하는 다른 부서가 있는 건 아닌가요?” 나는 멍해진 머리와 달리 또렷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빠르게 내뱉었다.
“시스템은 오직 나만 볼 수 있어. 난 아주 가끔 내킬 때 확인해. 그때 켠 것도 거의 오 년만이었을 거야. 불을 지르겠다고 한 남자는 운이 좋았지, 오랜만에 접속하자마자 그 사람 뇌가 끓어오르는 게 한눈에 보이더라니까. 그런데 방금 뭐라고 했지?”
“지금까지 증발을 완벽히 집행하셨다고,”
그녀는 내 말을 잘랐다. “아니, 그 다음에. 누구라고 했지?”
“유진이요. 분명 유진도 증발했잖아요.”
그러자 그녀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 그건 누구인지 모르겠네. 혹시 뭔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가 집행이 두려워서 지레 겁먹고 미리 도망친 건 아닐까? 다음날이 되기 전에 말이야.”
거짓말 좀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유진은 증발해 버렸고, 증발한 유진 때문에 새미는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고, 끝내 그의 동생에게 손을 빌려 죽음을 맞았다.
“분명 방금 제게는 마음껏 국가를 탓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그 명분이라도 남겨 주셔야죠.”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자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생각을 못 했네. 하지만 다른 말을 지어낼 재주가 없어서 있는 그대로를 전해야만 했는걸. 시스템을 아무도 모니터링하지 않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그다지 문제될 것도 없어, 내 임기 전부터도 그래 왔거든.”
실례지만 집권하신 지 얼마나 지나셨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해리가 물었다. 그녀는 잠시 허공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하더니 어렵지 않게 답했다.
“올해로 십삼 년째네. 내 전임자도 임기 마지막 십 년 동안 거의 모니터링을 안 했다고 들었어.”
아, 나는 살레의 안온함이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실은 그마저도 착각이었던 것이다. 십삼 년, 그리고 그 전 십 년. 합하면 이십삼 년. 나는 나지막이 이십삼이라는 숫자를 입 밖으로 굴려 보았다.
“그래. 이십삼 년간 살레의 평화를 지켜 온 건 너희들의 믿음이었다고.”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전용기 앞까지 그녀를 따라나갔다.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녀에게 나는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보고 싶어요.”
“뭔데?”
“왜 그러셨어요? 모니터링 말이에요. 야경국가에서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직무인데도요.”
“글쎄?” 그녀는 잠시 라울스의 정부 청사 쪽을 힐끗 보더니 매력적으로 웃으며 답했다.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럼 앞으로도 모니터링은 하지 않으시겠네요.”
그녀는 대답 대신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뒤돌아서 전용기에 올랐다. 결국 정말 묻고 싶었던 그 질문은 꺼내지 못했다. 내가 그 창고의 문을 조금만 빨리 열어 보았더라면 달라졌을까? 새미의 픽셀이 검은색으로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그 모든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방금 전까지 내 앞에서 살아 숨쉬던 국가는 이제 다시 손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이전의 모습이 되었다.
남은 건 우리뿐이었다. 결국 진실도 우리의 몫이 되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용기가 어느 초주연합의 방향인지 알 수 없는 하늘길로 멀리 사라지자, 유디스는 친구를 대하듯 우리의 등을 툭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고는 가 버렸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내일까지 거취를 정해, 원한다면 앞으로 쭉 라울스에 머물러도 좋고. 단 반드시 내일까지 말해야 해.
유디스의 호의는 내일이 지나면 사그라들 예정이었다.
호텔 객실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살레에서 나올 때 들고 온 것이 얼마 없었기에 다시 챙겨야 할 것도 얼마 없었다. 늦은 밤, 해리는 나를 찾아와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이곳에 남으려고.”
나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해리를 보았다.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도 해리는 어렵사리 덧붙였다. “적어도 유디스가 살아 있는 한은 나름대로 유토피아겠지.”
해리는 나를 마주보았다. “너는?”
돌아갈 거야, 새라?
무거운 적막을 이고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곳에 남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럼 다른 초주연합으로 갈 생각이야?” 해리가 물었다.
“아니.”
해리가 근심 어린 얼굴로 나지막이 물었다.
“새라, 네게 남은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었어. 너는 방금 두 가지 선택지를 없애겠다고 말했고.”
나는 해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에는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였다.
나는 해리가 모르는 한 가지 선택지를 더 알고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이 순간 살레의 그 창고 문을 열어젖히면 맑고 예쁜 초록 불이 밝혀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