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lter-in-Place order, 쿼런틴으로 전 사회 마비
"우리 회사도 2020년 3월 16일부로 전면 재택근무에 들어갑니다."
중국에 일부 공장을 두고 있던 있던 우리 회사는 202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1월 24일부터 시작된 중국 춘절 연휴를 기점으로 중국 전역에 코로나가 확산되었고, 그로 인해 공장 직원 중 상당수가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루빨리 중국의 여행 제한조치가 풀려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기만을 기다렸을 뿐 이곳, 미국까지 그 영향이 미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뿐 아니라 세계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고, 사상초유의 팬데믹 사태로 이어진다. 결국 그해 3월 11일 WHO는 전 세계 COVID-19 팬데믹을 선언한다.
"이러다가 우리도 1918년 스페인 독감 때처럼 마스크를 쓰고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제품의 납기 일정을 조정한다는 고객 콜을 끝내고 알리가 껄껄 웃으며 말한다. 이때까지도 설마 이런 일이 현실화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우스개 소리로 주고받던 대화였다.
하지만 이는 바로 우리에게 현실이 됐다. 미국 내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리콘밸리가 속해있는 산타클라라 카운티는 그해 3월 16일을 기점으로 전면 락다운에 들어갔다. 총 6개의 카운티를 포함하고 있는 베이에리어 전역에 걸쳐 발효된 이번 조치를 일명 "셸터 인 플레이스(shelter-in-place)" 명령이라고 했다. 이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발 빠르게 코로나 사태에 대응한 것이었다.
이날부로 베이에리어에 사는 어느 누구도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됐다. 이는 국가가 내리는 가장 강력한 수준의 명령이었다.
3일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 같은 락다운 조치를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확대한다. 일명 ‘스테이 앳 홈(Stay-at-home) 명령’을 발효한 것.
'자유'의 상징인 미국 땅에서 전 국민이 모두 집안에 감금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비대면 원격 근무 시대 시작
이 같은 국가 차원의 전면 락다운 조치가 내려지자 각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위한 각종 지원을 서둘러 마련한다. 덕분에 이 무렵 zoom 등 비디오 회의 시장이 급속히 성장했고, 비대면 근무 기간 동안 직원들의 이탈 방지 및 사기진작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및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
우리 회사도 갑작스러운 전면 락다운을 앞두고 분주해졌다. 각자 맡고 있는 고객들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리모트 근무에 필요한 각종 준비를 했다. 마치 전시 체계에 돌입한 듯 전 직원이 비장하게 주변 정리를 하고 팀원들과 기약 없는 작별을 했다.
"Please everyone be safe and healthy during this difficult time!"
30대 중반의 CEO 대니얼은 이번 사태로 인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직원들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전한다.
어느 누구도 매일 아침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더 컸던 순간이었다.
실리콘밸리에 내려진 전 주민의 자가 격리(quarantine) 명령은 구글, 메타, 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대형 테크 기업들은 물론, 우리 회사 같은 중소기업들조차도 리모트 근무체제 즉, 재택근무(work from home)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나 되는 힘이 필요했던 시기
"너무 다행이다. 무사히 도착했네?"
늦은 밤, SFO 공항은 한산했고 보안은 전보다 한층 살벌해 보였다. 주차장 진입이 안되어 게이트 앞에 임시로 차를 대고 있자니 시큐리티가 얼른 뛰어와 차를 빼라고 성화다. 보통 때 같으면 이곳에 차를 세우기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했지만 오늘은 내차만 한대 달랑 서있다.
마침 자기 몸집보다 큰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딸아이가 보인다. 마치 전쟁에서 살아 돌이온 용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가 점차 심상치 않아 지자 결국 미국 전역의 모든 학교에는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긴 대학생 딸아이는 공항 폐쇄 전에 다행히 집으로 오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행여 이산가족이 될까 두려웠던 마음이 이제야 푹 놓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든 것이 뒤죽박죽 했지만 온 가족이 다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사재기와 품귀현상
쿼런틴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자주 찾는 동네 슈퍼마켓 Trader Joe‘s에 들렸다.
이런... 모든 물건이 동이 났는지 오후 5시밖에 안 됐는데 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침에는 마켓 오픈시간 전부터 대기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돌아왔다고들 하던데...
사람들의 사재기 열풍이 대단하다.
여기가 선진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주변 대형 마켓들의 선반이 모두 텅 비었다. 물, 계란, 휴지 등 생활필수품과 손소독제를 비롯한 각종 청소 용품들은 품귀현상이 일어났다. 급기야는 가정당 계란 1판, 물 1박스, 휴지 1개씩만 구매를 허용한다는 사인이 붙었다. 스팸 등 인기 있는 저장식품은 재입고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솔직히 쿼런틴이 시작되기 전부터 KN95 마스크는 이미 동이 나 그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했다. 또 유명브랜드 손세정제는 '명품백보다 구하기 힘들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귀했다.
이것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 미국, 그것도 모든 테크 기업이 모여있는 실리콘밸리의 현주소다.
결국 음식점, 쇼핑몰, 백화점 등 리테일은 물론, 항공, 숙박 등 모든 산업이 마비됐다. 역사책에 기록될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베이에리어 어딜 가나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다.
주식은 바닥이고 경기전망은 온통 잿빛이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던 2008년과 많이 닮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가 더해진 최악의 시기, 이 무렵 서로의 인사말은 "Stay safe!"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