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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덕 Dec 29. 2022

비행훈련과 예비군 훈련

1979년 10월 26일에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최규하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1980년 우리의 졸업 및 임관식에 참관하여 축하해 주었다.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한 나는 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대전에 있던 212 비행대대 훈련 과정에 입과했다. 장교였지만 훈련을 받는 훈련생이었기에 여전히 생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광주 사태’로 지칭하면서 이것이 북한 간첩의 소행이라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나는 비행 훈련에 집중하느라 여기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T-41 훈련기를 타기 전 우리 훈련 장교들은 많은 교육을 받았다. 영어로 된 지침서를 외우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처음 훈련기를 탔다. 자동차도 운전해 본 적이 없었기에 비행기가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신기한 기분은 잠시였다. 비행 교수의 지적과 호통에 정신이 없었다. 비행 훈련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구타 등 공포 분위기의 훈련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비행에 재능 있는 동기생들을 보니 부럽다 못해 낙담이 되었다. 

2개월 후인 어느 날 나를 지도하던 비행 지도 교수님이 나에게 조종사가 되는 것보다는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가 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보통 다른 학생들은 때려가면서 조종사가 되게 하는데, 나는 때려도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조종사의 꿈을 포기하려니 아쉬웠으나 며칠 후 나는 훈련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나는 비행 훈련에서 탈락한 몇몇 동기생들과 함께 예비군 훈련단에 배속되었다. 정식 특기를 배정받을 때까지 이곳에서 예비군 훈련을 담당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관 출신답게 맡은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노력했다. 비로소 장교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이 근무하던 동기생이 공군사관학교에서 국어과 교수 요원을 모집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서류 제출 마감일이 내일이라고 했다. 나는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하여 제출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 과목은 국어와 영어였다. 시험 당일 공군사관학교에서 나는 1년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 역시 국어과 교수가 되고자 신청하였다고 했다. 선배와 경쟁하게 되어 조금 부담이 되었으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합격통지를 받은 나는 서울로 올라갔다. 시험에서 선발된 사람들은 공군사관학교에서 민간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편입시험을 준비하게 하였다. 영어는 혼자 공부했으나 국문학에 대해서는 공군사관학교 국어과 신형기 교수로부터 배웠다. 교재는 장덕순 교수의 <<한국문학사>>였는데, 어렵지만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선배가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전에도 몇몇 선배들이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했는데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합격한다면,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는 20년 만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어서인지 나는 합격자 발표일까지 마음이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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