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여행
겨울이 되면 엄마는 콩비지찌개를 한솥 끓이셨다. 하루 전 불려놓은 콩을 믹서기에 곱게 갈아 돼지고기, 배추 등을 듬뿍 넣고 끓인다. 하얗고 뽀얀 자태를 내며 완성된 비지찌개는 파,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어 만든 양념장 한 스푼을 올려 먹는다. 밥에다 비지찌개를 떠서 올리고 그 위에 양념장 그리고 슥슥 비벼 한입 쏙.
강원도 강릉의 어느 음식점에서 콩비지찌개를 만났다. 큰 뚝배기에 비지가 넘쳐날 듯한 비주얼로 한가득 담겨 나온 모습이 시선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한 숟가락 떠먹어보는데 감탄을 넘어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바로 그 시절 겨울마다 엄마가 끓여주시던 비지찌개가 생각났던 것이다. 씻은 신김치를 넣었는데도 흡사 우리 집 비지찌개와 맛이 비슷했다.
콩비지찌개를 한 솥 가득 끓여놓으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엄마도 우리도 모든 식구들이 며칠 푸짐하게 먹는다. 우리가 시집 장가를 다 가고 난 후에도 매년 겨울마다 비지찌개를 나누어 주셨다. 비지는 콩을 갈아 만든 것으로 단백질이 풍부하다. 비지찌개와 밥 한 그릇을 먹으면 든든함 그 자체다. 그리고 밥도둑이다.
언젠가 시장에서 비지를 발견하고 한 봉지 사와 김치를 넣고 끓여봤는데 콩을 갈아서 한 게 아니라서 그런지 엄마의 맛에는 못 미쳤다.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씹히는 맛이 별로였다.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한 솥 끓여내셨던 것처럼 전날 콩을 불리는 수고로움을 더해 한 솥 끓여 봐야겠다. 그래서 언니네, 동생네, 형님네 다 나누어 먹어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도시락 반찬 중 엄마가 자주 싸 주셨던 것 중 하나가 계란말이다. 엄마의 계란말이는 영양폭탄이었다. 계란을 넉넉히 푼 물에 당근, 양파, 대파 등을 듬뿍 넣어 통통하게 말아낸다. 시간과 정성 그리고 영양이 듬뿍 담긴 계란말이는 엄마의 사랑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계란말이는 학교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물론 앞 뒤로 같이 먹는 친구이거나 함께 먹는 멤버들이 있었지만 그 친구들이 맛있다며 잘 먹어주었다. 친구들은 소시지나 햄, 마른반찬 등을 싸가지고 왔는데 나는 오히려 친구들 반찬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서로서로 바꿔 먹은 셈이 된 거였다.
나도 한 번씩 계란말이를 한다. 그런데 마음이 급할 땐 계란만 풀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형님 찬스로 이틀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형님 드시라고 계란을 말았다. 당근과 대파를 곱게 썰어 넣고 했다. 식기 전에 맛보시라고 조그만 접시에 말이 두 개를 담아 드렸더니 맛있다고 하셨다. 다른 날보다 신경 써서 간을 맞추고 정성을 다해 말았더니 맛과 모양이 좋았다. 엄마의 따뜻함과 정성, 사랑이 담긴 계란말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기와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번에 조카들이나 친정 식구들이 오면 이대로 맛과 모양을 내서 해 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로 시어머님을 모시고 있지만 평일 내도록 고생한다며 주말엔 무조건 와서 봐 주신다는 형님 덕분에 토, 일은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 덕에 새해 첫날 급하게 정해진 여행 또한 순조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뒷날 아침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드실 수 있게 준비해 놓고 나오는 마음 또한 따뜻해져서 좋았다. 뭇국, 야채 계란말이, 애호박 버섯볶음을 했다. 맛나게 드실 형님 모습을 상상하며 집을 나섰다.
엄마의 콩비지찌개와 야채 듬뿍 계란말이는 제가 이어가도록 할게요. 엄마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생각지 않은 새해 여행을 강릉에서 보내게 되었다. 강릉 여행을 하면서 맛보게 된 비지찌개 덕분에 기억을 끄집어내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부산에서 시작해 포항 울진을 지나 삼척, 평창, 강릉까지 이어졌다. 별 보러 가기 위해 선택한 여행지 강릉 안반데기(밤 12시가 되어 도착). 휘영청 밝은 달님 덕분에 쏟아지는 별들을 구경할 순 없었다.
추암 촛대바위, 별 보러 가기 전 맛집에서 식사, 자정 넘어 별 보러 안반데기,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새벽녘 멸치국수, 아침부터 웨이팅을 해야 했던 장칼국수 덕분에 맞은편 강릉시립 중앙 도서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담한 분위기가 정감이 가고 좋았다.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만든 장칼국수 한 그릇을 하고 인근 경포해변을 들렀다. 경포해수욕장은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함께 왔었다. 가까워서 일행들에게 가보자고 했는데 선택이 아주 좋았다. 스케일이 남다른 광활한 바다는 삼킬 듯이 달려들었다. 넘실대는 파도가 압권이었다. 끝도 없는 백사장은 심플해서 좋았다. 바다 맞은편 도로 쪽 호수도 참 인상 깊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혼자 다시 한번 강릉을 찾아도 좋을 것 같았다. 여행에서 만난 콩비지 찌개 덕분에 옛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덤으로 이번 동해안 여행 또한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다음은 마지막 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