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설거지

by 지니


옛날에 지어진 우리 집은 부엌이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특히나 겨울의 부엌은 많이 추웠다. 며칠 전 집에서 맨손으로 찬물 설거지를 잠시 했는데 손이 아려왔다. 그 순간 예전 우리 집의 겨울철 부엌이 소환되었다. 부엌에 수도꼭지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찬물과 더운물이 나왔고(임의로 나중에 설치가 된) 하나는 찬물만 나왔다. 더운물이 나오는 수도는 어찌 된 판인지 물이 쫄쫄쫄 나왔다. 겨울이 되어 설거지를 할 때면 더운물로는 속 시원하게 할 수가 없었다. 식구가 많았기에 빠른 설거지를 해야 할 때면 그 옆의 수도에서 나오는 얼음장 같은 물로 매번 해야 했던 것이다. 하다 보면 손이 시려(고무장갑을 꼈음에도) 옆의 수도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물줄기의 물에 손을 녹여가면서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우리들이 돌아가면서 엄마를 도와 설거지를 하기도 했지만 그 많은 설거지를 대부분 엄마가 다 하셨으니... 며칠 전 잠시 잠깐의 찬물 설거지를 하면서 얼마나 손이 시렸으면 그 시절이 떠올랐을까.




엄마 고생하신 건 그냥 말로만으로 다 읊을 수가 없다. 그런 엄마인 줄 알았기에 그래도 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드렸었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 고생하시는 게 내 눈에는 왜 그리도 선하게 보였던지 집안일에 허덕이는 엄마를 볼 때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설거지 거리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 다른 애들은 벌써 어디 놀러 가고 없는데 나는 그걸 굳이 해야만 했다. 아, 이런 운명적 인생을 타고난 사람인가? 난? 이란 생각이 갑자기 든다. 작은 체구에 가녀리고 가냘픈 엄마가 그 많은 식구들을 위해 자신을 태우며 희생했던걸 생각하면 눈물 없이 이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엄마의 그 희생을 닮아 그런지 나 또한 그 전처를 밟고 사는 것 같아 마음이 살짝 아려온다. 강인하고 또 강인했던 엄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묵묵히 그 외롭고도 힘든 길을 걸어갔던 엄마였기에 늘 애처롭고 보호해드리고 싶었다. 엄마 두 글자만 떠올려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느새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손수건을 가져오길 잘했다. 어느새 코도 훌쩍이는 상태가 된다.




그 강인했던 엄마가 계셨기에 우리들이 이렇게 건재하게 잘 살고 있다. 엄마의 희생과 사랑 덕분에 말이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최후는 당뇨라는 병을 남겼다. 당뇨가 생기면 이곳저곳 몸 곳곳에 합병증이 생긴다. 그래서 당뇨가 무섭다. 당뇨는 평생 친구처럼 함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는 당뇨를 그렇게 생각하셨어야 했는데 그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무슨 병이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는데 엄마는 이미 11 명이라는 대가족을 책임져 나오셨고 노인 세 분까지 모셨으니 그리고 쓰러진 할머니를 3년간 병수발을 들었으니 말이다. 그 세월을 헤쳐 나오다 보니 이미 번 아웃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알게 모르게 가슴에 한도 맺혔을 것이고 그 한을 풀고 가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가셨다는 게 우리들 가슴속에 영영 대못으로 박혀있다. 많이 편찮으셨던 시기에 엄마를 돌봐드리러 매일 엄마집으로 갔을 때 엄마는 나를 붙들고 이런저런 가슴에 박힌 이야기들을 하셨었다. 그런데 그걸 끝까지 들어드리지 못한 게 정말로 한이 되었다. 그냥 들어드리기만 했으면 되었을 텐데...


그렇게 한을 다 풀지 못한 채 엄마의 삶이 끝나버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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