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무심한 세계를 향한 렌즈:분쟁지역의 침묵 속 희망

고향을 등진 불가피한 선택: 바다를 건넌 난민들 (4)

by 해리 Mar 19. 2025

우리 그룹의 200여 명을 위한 네 척의 고무보트 중 우리가 두 번째로 출발했다. 뒤에 남겨진 두 척 주변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감돌았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조금이라도 빨리 여정을 시작하고 싶으면서도, 돌아오지 못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아직 출발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안도로 다가오는 그 모순. 


멀리 오마르가 타고 출발했던 첫 번째 보트의 뒤를 따라가던 우리였다. 그런데 출발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배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실루엣이 선명해질 무렵, 우리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들이 짐을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들의 모터가 작동을 멈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무게 때문에 그럴 수 있으니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짐을 포기하는 것을 제안했던 모양이고, 그리 황급히 짐들을 보트 밖으로 던졌던 것이다. 


표정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자, 그들의 얼굴에 스민 황망함과 공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두 팔을 하늘로 올리고 기도하던 이들, 우리에게 부러움과 구원을 동시에 갈구하는 눈빛들. 그 찰나, 우리 모두는 아마도 속으로 도덕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어려움에 처한 저들을 우리가 도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탈 뻔했던 바로 그 보트였다. 바젤과 루나가 늦어지는 바람에 오마르의 제안을 거절했던 그 찰나의 선택이 운명을 농락하는 듯했다. 잠시 오마르와 눈이 마주쳤다. 당혹감으로 가득 찬 그 눈빛 속에서 우리는 말없는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윤리적인 책임감은 이내 냉혹한 현실 앞에 묻혀버렸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의 조타수인 무하메드는 그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마치 그런 사치스러운 감정에 빠지지 말라는 듯, 그는 냉정하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위기에 처한 그 보트를 지나쳐 전속력으로 앞을 향했다.


우리는 최대출력으로 꽤 오랜 시간 바다를 가르며 달렸다. 끊임없이 높게 솟구치는 파도, 빠른 속도를 유지할수록 진동폭이 커진 배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우리를 공중에 들어 올렸다가 바닥으로 내려치기를 반복했다. 그 패턴이 오래 지속되자 결국 몇몇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해안가에서 희미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던 레스보스를 처음 봤을 때는 최악의 경우 수영으로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지금 눈앞의 격렬한 조류는 가장 숙련된 수영선수도 넘을 수 없는 벽이었을 테다. 


파도가 계속해서 배 안으로 넘쳐 들어왔다. 바닥에 앉아 있던 이들은 이미 허리까지 물에 잠겼다. 저들 밑에 깔려 있던 내 배낭과 그 안에 비록 방수 파우치에 넣어두긴 했지만 장비들이 무사할지 잠시 걱정됐지만, 곧 장비가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손과 신발을 이용해서 필사적으로 물을 퍼내려 했지만, 들어오는 물의 양에 비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 속도라면 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침몰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무하메드에게 줄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배가 뒤집히거나 침몰할 거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레스보스 해안에 빨리 도착하는 것에만 집착한 듯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엔진이 멈췄다.


단순한 과열인지, 아니면 거의 물에 잠길 정도로 출렁이던 모터에 물이 들어가 고장 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무하메드가 연료를 더 넣는다고 탱크 뚜껑을 여는 순간,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연료통에 물이 쏟아져 들어간 것이었다. 탱크 안 휘발유 또한 쏟아져 나와 가뜩이나 구토를 하던 이들이 그 냄새에 더 괴로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너무나 가까이 왔다. 해안으로부터 불과 2-3km 지점이었다. 무하메드는 뒤늦게 속도를 줄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내게 주언을 구했다. 나라고 해결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레스보스 섬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고, 살아서 도착할 가능성이 크게 느껴졌다.


이 정도 거리라면 배를 밀면 어떨까? 수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물에 뛰어들어 보트를 미는 건 어떨지 제안했다. 곧바로 6-7명의 용감한 지원자들이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나름 최선을 다해 보트를 밀어보려 했지만, 수십 명이 여전히 타고 있는 보트의 무게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파도에 계속 잠겼다 나오는 그들이 저체온증에 걸릴까 염려되어 다시 보트로 불러들였다. 


처음에는 레스보스 북서부 해안을 향해 가던 우리 배는 조류에 의해 점차 동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우리가 섬을 지나쳐 에게 해의 더 넓은 바다로 떠내려가지 않기만을 바랐다. 최악의 경우 모두 물에 뛰어들어 해안을 향해 함께 수영할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제안했다. 거의 대부분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으니 서로 도우며 간다면 어떻게 그럭저럭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조류의 방향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금 더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동쪽으로 계속 밀려가면서도 아주 조금씩 해안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제야 브로커가 말했던 ‘오렌지색’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레스보스의 북부 해안을 따라 이어진 오렌지 띠는 다름 아닌 이전에 그곳을 거쳐간 수많은 난민들이 버리고 간 구명조끼들의 바다였다.


추후에 본 통계에 따르면, 그 해 한에만 백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우리와 같은 경로로 유럽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 숫자가 절정에 달했던 9월에는 하루 2,000명 이상의 난민들이 우리가 간신히 도착한 레스보스의 북부 해안을 통해 유럽의 첫 관문인 그리스에 발을 디뎠다.


아마도 살면서 그러한 광경은 다시는 보지 못할 듯싶다. 

어떤 통계나 숫자보다 소름 끼치게 직접적인 “난민 위기”의 표현이었다. 끊임없이 쌓인 구명조끼들을 보며 느꼈던 오싹함과 뭉클함은 너무나 강렬했다. 난민들에게 이 여정이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절박함과 서러움이 온몸으로 느껴져 눈물이 났다. 감정에 잠시 휩싸여 구명조끼로 뒤덮인 해안을 바라보며 파도에 몸을 맡겼던 우리는 어느새 섬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눈빛에서 비로소 “살았다!”라는 안도와 희망이 가득한 눈빛을 보며 나 또한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격렬하게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닿은 곳은 더 극적일 수 없었다. 섬의 동북부 끝, 언덕 위에 등대가 서 있는 바위투성이 해안이었다. 평평한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보트에서 내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의 바다 여정이었지만, 그저 육지에 다시 발을 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사람들은 두 팔을 하늘로 뻗어 “알라 악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연신 외치며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미소와 눈물을 나눴다.


불확실성의 끝에서 생존했다는 원초적 희열은 사람들이 살면서 평생 쌓아온 문화적 경계와 편견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그전에도, 그 후로도 단 한 번도 무슬림 여성이 먼저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 경험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날의 특별함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젖은 몸으로 벌벌 떨며 배낭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는 한 남성을 보며, 그 한 모금의 연기가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질지 상상했다.


그날 같은 해안에서 출발한 7척의 보트 중 오직 우리 배만이 레스보스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앞서 오전에 떠났던 아프간인들을 실은 세 척은 출발과 거의 동시에 터키 해안경비대에 붙잡혀 이스탄불로 송환되었고, 오마르가 탔던 우리 그룹의 첫 배와 우리 뒤에 남겨진 두 척도 레스보스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후에 오마르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적어도 그날 그들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니. 


등대가 있는 언덕에서 해가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몇 척의 배가 더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다른 브로커를 통해 여정을 준비한 난민들일 것이다.


해가 저물고 온몸이 젖어 이미 쌀쌀했던 9월 초의 저녁, 우리는 잠시 느꼈던 희열감을 접어두고 계속 나아가야 함을 알고 있었다. 큰 한 단계를 넘겼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얄라!” 


앞으로 계속해서 듣게 될 문구. 지칠 때마다 서로를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가자는 그 한마디.

하나둘씩 짐을 챙겨 들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무심한 세계를 향한 렌즈:분쟁지역의 침묵 속 희망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