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rdust Jul 20. 2023

협의이혼 신청서 앞에서 4

시어머니의 며느리를 향한 본게임 : 요구사항






시댁에 찾아가서 친정모욕을 듣고 온 그 날 이후로 시어머니는 본격적으로 나의 모든 것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사정해 보고 화도 내보고 달래도 보았지만, 매 주 시부모님을 뵙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엔 내가 손을 들었다.



어차피 남편에게 나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으니,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시부모님을 뵙는 일을 계속하는 거라고, 못 견디겠으면 그때 이혼해도 늦지 않다고 말이다.



마음을 그렇게 먹고 나니 좋은 점도 보였다.

남편은 시부모님만 뵙고 오면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우리 사이도 조금은 좋아질 것 같았다







"네 가슴 망가질까 봐 모유수유 안 하는 거니?"


둘째를 낳고 나서의 일이다.

첫아이와 둘째의 차이는 고작 20개월, 첫 아이가 두 돌도 되기 전에 둘째가 나왔기 때문에 둘째 모유수유하기가 어려웠는데, 특히 새벽수유를 할 때마다 전쟁이 일어났다.

둘째가 새벽 수유텀에 깨면 첫애가, 엄마 품에 있는 둘째를 보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악을 썼었다.

세상에나, 아직 두 돌도 안된 아기가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겠나..


결국, 첫아이는 생후 10개월을 했던 모유수유를

둘째는 두 달 만에 멈추게 되었다.

첫 아이 때도 그러했지만 둘째 때도 모유는 아이가 먹는 만큼의 두 배는 족히 나왔기에, 오히려 젖을 멈출 때 젖몸살이 너무도 심했다.


그날도 젖몸살로 돌덩이 같은 가슴을 쥐어 짜내어 모유팩에 모유를 옮겨 담고 있었다.

"까똑!"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남편과 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총 넷으로 구성된 단톡방에 아주 길게 시어머니가 글을 올리셨다.



그 내용은, 가슴 망가질까 봐 수유를 안하는거냐며

예부터 아이 엄마의 가슴은 밥통인 것을 요즘 애들은 가슴모양이 뭐 그리 중요한지 모르겠다며

아주 긴 긴 내용을 쓰신 것이다.



시어머니는 그 말이 "본인이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 것이다. 시어머니라서 할 수 있는 할 말이라 생각하기에 아들과 남편이 있는 단톡방에 그 글을 올릴 수가 있는 것인데, 항상 그랬다.

본인은 관심, 나에겐 간섭. 그것을 관심으로 못 받아들이는 내가 성격이 이상하게 꼬인 사람이고, 자존감이 낮아서 남편을 살뜰히 챙기는 거라고 시어머니는 생각하신다.



내가 사랑했고, 내가 선택한 사람을 챙기는 것이

자존감이 낮아서라는 생각을 하는 분이 바로 내 남편의 어머니이다.









강남으로의 이사 요구



우리 집은 강북에 있는 아파트였다.

아이 공부시킬 거 생각해서 강남으로 이사를 오라는 것인데, 강남으로 가면 구축으로 가야 맞는 상황이었고, 신축은 빚을 더 내서 움직이기가 사실상 어려웠다. 그런데도 남편과 시누이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손주들도 보내야 한다며 이사하는 게 옳다는 취지를 계속 주입시키려 하며, 이사를 종용하는 게 본인이 시어머니로서 할 말이고, 다 손주 잘 키우라는 관심인 것인데 못 받아들이는 내가 늘 이상한 며느리 었다.


남편에게 말해봤자, 엄마 나 돈 없어하니

며느리에게 말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늘 나만 들들 볶였다.



우리 부부는 빚을 내서 강남으로 이사할 계획도, 그렇다고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는데

도움을 주고 본격적으로 아들네 가정에 감 놔라, 배 놔라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요로감염은 천기저귀를 쓰지 않아서 걸린 것이다



우리 집엔 보조 주방이 없었다.

첫 아이 낳기 전에 천기저귀를 스무 개는 족히 보이는 정도로 사 오셔서는 세탁실에 세면대를 공사해서 여기서 천기저귀를 빨라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말하니 실소를 지었다.

또 헛소리 하신 거니 넘기라는 거였다.



그러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4개월 차에 아이가 요로감염에 걸렸다.



그날, 남편이 출장을 가서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와있었기에 , 그리고 다행히도 아산병원엔 소아전문응급실도 있는 곳이어서, 급하게 입원수속을 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본인 말을 안 듣고, 천기저귀를 안 쓰고 팸퍼스를 써서 아이가 요로감염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아산병원은 송파구에 있는 병원으로 친정이 송파구라 친정 집 근처에 있었고, 시댁은 손주를 송파구에 있는 아산병원에 입원시킨 게 불만이었다.

강남성모병원으로 갔어야 한다고 말이다.



시댁은 서초구에 살고 있었고, 송파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 또한 서초구 반포동에서 태어났고,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기 전까지, 내가 7살 때까진 그 반포에서 살아왔었다.



내가 태어나고 7살까지 살았던 곳은 반포 미도아파트이다. 아직도 재건축을 못하고 남아있는 그 미도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그 반포 미도아파트를 대출 없이 현금으로 구입했었다.



나의 신혼집도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송파구가 아니다. 송파구가 우리 능력으로는 들어가기 어려운 동네인데도 시댁은 그 송파구를 무시했다.

친정은 송파구에 있는 40평대 아파트를 자가로 대출 없이 현금으로 구입했고, 차도 현금으로만 구입하는 집안이었다. 할부나 대출은 은행 것이라고, 현금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내 것이라는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댁은 집도 차도 건물도 모두 대출을 끼고 사셨는데도, 친정이 송파구여서 무시당했다.



나의 아버지는 파텍필립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셨다.

나의 남편은 그 시계를 갖고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파텍필립을 6개 정도 소유하셨고 그중 두 개는 엄마가 생신선물로 준 것이었다.



살면서 친정의 경제력으로 무시당한 건 처음이었다.



물론 모르셨을 거다. 친정의 재산에 대출이 안 끼어 있을 것이라곤 말이다.





나는 80년대 후반 생이지만 어릴 적 팸퍼스를 사용했다. 국내에 파는 일회용 기저귀는 여린 딸 피부에 발진을 주었고, 아빠는 그 당시에 팸퍼스를 해외에서 직접 사다 날랐다.

나는 한국에 수입되지 않던 팸퍼스를 썼고, 아빠는 엄마에게 천기저귀 해방을 시켜주었다.

 








"자연분만을 해야 해. 네 시누이는 무통주사도 안 맞고 쌩으로 진통 다 겪으며 애 셋을 낳았어"



자연분만이 어디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첫 아이였기에 마치, 제왕절개를 하면 아이 엄마로 부적합한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나는 아이 둘 다 유도제 맞고 자연분만 했다.

유도분만을 했던 것인데, 그 유도제 맞는 것도 아이에게 영향 갈까 봐 노심초사하셨다. 친정에선 네 몸에 괜찮은 거냐고 걱정하셨는데 말이다. 그래놓고 딸로서 생각할 테니 친정과 연을 끊으라고?








김장대첩



친정에선 김장할 때마다 나의 역할은 수다메이커였다. 막내딸이다 보니 그저 옆에서 수다나 떨라는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김장은 내게 즐거운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김장 때 친정을 가지 말라 했다.

그러면서 선심 쓰듯 시댁에도 안 와도 되니, 친정

은 꼭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본인 아들에겐 시댁 김치를 먹여야 한다는 것인데, 시어머니 손맛은 좋은 편이지만 나는 친정김치가 더 입에 맞았다.


남편에게 말하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엄마가 또 헛소리 하신 거니 신경 쓰지 말라했다.

남편은 늘 그랬다. 본인처럼 엄마 잔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고. 그래놓고 매주 시댁만남은 이어가야 했다. 본인에게 효도는 시부모님 말을 잘 듣는 게 아니라, 아내를 대동하여 시댁과 밥을 먹는 것이었다.



남편 말만 듣고 친정김장날 김치를 가지러 남편과 함께 다녀왔는데, 시어머니는 본인 말을 무시했다고 노하여 또 내게 전화가 왔다.



이래라, 저래라, 나는 결혼과 동시에 줏대도 인격도 없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자조적이던 내 삶이 끊임없이 간섭과 침입으로 서서히 망가뜨려지고 있었다.



이전 08화 협의이혼 신청서 앞에서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