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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Jul 21. 2023

협의이혼 신청서 앞에서 5

남편은 전부인과 결혼식을 했던 성당에서 나와 혼배를 올리고 싶어했다






남편은 내게 전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던 곳에서 나와 혼배를 올리고 싶어 했다.

시댁식구들과 남편은 그곳에서 혼배를 올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에겐 결혼식장인 곳이, 그들에겐 주소지 관할 성당이였던 것 뿐이다. 그들에겐 당연한 곳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다 내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모르는 사람이라서 이해를 못 하는 거였고, 그들은 하느님을 못 만나본 나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나는 비종교인이다.

친정은 독실한 불교, 시댁은 독실한 천주교이다.




친정은 단 한 번도 불교를 믿으라고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분명 신앙이 있다는 것은 그 신앙이 주는 마음의 평안을 느껴서 일 텐데, 그 평안이 네게도 좋을 것이라고 강요도 아닌 권유마저 한 적이 없었다.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 친정의 마인드였다.




친정엄마는 무슨 날마다 한 군데 절도 아니고 전국에 있는 여러 절을 다니며 등을 올리고 다니셨다.

내가 수능 치던 날, 친정엄마는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천도재를 지내러 절에 공들이러 갔다가 시험이 끝날 무렵 나를 데리러 오셨다.




그래서일까, 남편이 천주교 신자로서 결혼 전부터 매주 미사를 다녀도 그것이 내게 강요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엄마 따라 절에 가서 놀다 오는 마음으로 결혼 전부터 남편의 미사를 매번 함께 나섰다.




시댁은 가족 모두가 천주교인이었고, 며느리에게 같은 종교를 믿는 것은 당연한 요구였다.

그들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모르는 며느리가 안타까워서 종교를 권유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강요가 아니었다. 그러나 7년째 지속해서 하는 권유는 강요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때는 시댁과의 첫 만남의 자리였다.

서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입을 맞춰놓았기에 그 어떤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세례는 꼭 받았으면 한다는 게 시댁의 의견이었고 첫 만남이기에 웃는 얼굴로 답을 대신했지만, 그날 분명히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세례를 꼭 받아야 하냐고 하니, 하면 좋지라는 식으로 넘어갔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종교는 본인의 선택이기에, 누가 믿으라고 없던 할렐루야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시댁도 남편도 임신했다는 이유로,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가 너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너무도 당연하게 세례를 요구하는 것에 있어서, 그 누구도 그것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게 언젠가 종교가 생긴다 해도 이런 식은 싫었기에 나의 존재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땐, 내가 너무 어렸고 또 미혼모가 될 자신도 없다는 이유로, 시댁포함하여 남편까지 원하는 일이니 멱살 잡혀 도살장에 질질 끌려가는 돼지처럼 세례가 목적인 교리반에 남편이 등록했고, 다니게 되었다.



나의 선택이 아닌 시댁과 남편의 강요로 교리반을 등록해서일까, 나는 임신 10주 차에 집 앞 성당 교리반에서 수업을 듣다가 속이 미식거리더니 신물을 토하고 블랙아웃을 경험했다.



그렇게 세례 받기는 중단되었고, 첫 아이를 출산했다. 남편은 혼배성사를 받자고 추진하였지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결혼식을 성당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매주 두 아이들과 함께 일요일 오전이면 남편과 다 같이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고 왔다. 집이 망해 이사를 온 곳에서도 꾸준히 말이다.



내가 매주 성당에 아이들은 데리고 남편과 함께 갔던 것은 7년째 매 주말마다 시부모님을 만나온 이유와 같았다. 남편은 성당 유아반에 아이들을 데리고 부부가 함께 가는 것을 좋아했기에 다녀오면 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렇게라도 남편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혼하고 싶었던 만큼, 행복하게 잘 살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잘 살아보려고 노력할수록 나의 노고를 인정받지 못할수록 이혼하고 싶었다








작년이었다.

우연히 시아버지 막냇동생의 딸이 결혼을 서울에서 한다고, 참석하라는 거였다.

아이 둘을 데리고 가려는데 가기 전부터 발이 안 떨어졌다. 남편이 돌싱이라 분명 전 부인에 관련된 얘기로 식장에서 나를 보고 수군거릴 테고 어떻게든 내 귀에 들어올 것만 같아서, 듣기 싫었던 게 더 크겠다.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기 때문일까, 우려했던 수군거림이 내 귀에 닿았지만 생각보다 타격감은 덜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 수군거리는 소리 중에 꽂히는 단어가 있었다.



"00이, 결혼식은 성당에서 하지 않았어?"



바로 내 남편의 이름이었다.

아이 둘을 잠깐 시누이에게 맡겨 둔 채로, 남편을 조용한 곳으로 이끌어 물어보았다.



"예전에 성당에서 결혼했었어?"


"어.."


"그 성당이 우리 집 앞에 있는 성당이야?"


"어.."



"나를 결혼 전부터 매주 데려가고 아이 둘 다 매주 데려갔던 그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었다고? 왜 말 안 했어! 나에게 말했어야지!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있게 했어야지! 어떻게 그걸 속이고 가족 모두 거길 다니게 해!"



정신을 잃고 날뛰고 싶은걸 간신히 참은 게 이 정도다. 만약 결혼식장이 아니었다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언제나 그랬듯 변명하기 시작했다.



"말했으면 안 갔을 거잖아. 그리고 성당은 주소지 관할이 있어서 옮길 수도 없고, 그래서 모르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어."



"시부모님도, 형님네도, 당신 친구들도 모두 하객으로 왔던 그곳을 어떻게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안 할 수가 있어! 심지어 첫째는 거기서 유아세례도 받았잖아... 나랑 혼배 올리겠다고 한 장소도 거기잖아.."



분노가 집어삼킬 듯이 밀려왔다.

그렇다, 이 사람은, 이 가족들은, 너의 그 친구들은

깡그리 다, 나만 모르면 된다고 생각했구나.




"너 지금 내가 한번 갔다 왔다고 이러는 거지! 내가 이혼남이라고 이러는 거잖아!"




"이혼남인 건 진즉에 알고 만났고, 애 둘낳고도 아직도 여전히 날 속이고 있었잖아... 끝까지 속이려 했잖아.."



남편은 분하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또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 본인이 어떤 의도였건 상대방을 기만한 결과가 되었으면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그리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변명을 해도 늦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는 대화법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화법이기에 그날도 상처받은 내 앞에서 본인 상처가 더 크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남편은 자기 기분 풀겠다고 술 마시러 나갔다. 내게 아이 둘만 남겨놓은 채.





그때부터였다.

작년, 작년부터 나는 매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던 성당을 다니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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