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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Jul 20. 2023

협의이혼 신청서 앞에서 3

시어머니는 임산부에게 친정과 연을 끊으라고 했다







남편은 친정과 연을 끊으란 시어머니의 말에,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라고 했다.

친정과 연을 끊으란 말, 문자 그대로 해석해 보아도 절대 다른 뜻이 있을 수가 없는데 남편은 엄마가 그럴 리가 없다고, 네가 잘못 받아들인 거라고 했다.


남편은 시어머니를 대변하는 충직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나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기에 남편이 아무렇지 않으면 나도 아무렇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 남편은 여느 때와 같이 지인들과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 고주망태가 되어 코 골며 잠을 자고 있었고, 새벽 3시에 나는 차를 끌고 나와 한강으로 향했다.



배가 제법 나온 임신 20주 차가 넘었던 나는

한 발, 한 발 한강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이내 물이 허벅지 위 쪽으로 타고 올라옴을 느꼈을 때, 다시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그날 죽지 않았다.

그리고 기왕 죽을 거라면 아이는 한번 낳아보고 죽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새벽에 나갔다 온 것을 몰랐다.

부부상담을 받으면서 아내가 임신 중 자살시도를 했던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남편은 충격받았다.







"며느리로는 못 받아들여도, 돌고 돌아온 내 딸이라 여길 테니, 친정과 연을 끊거라"




첫 아이 임신 20주가 넘어가던 때, 시어머니는 나를 시댁으로 호출하였다.

얼굴을 보고 할 이야기란 게 친정엄마를 욕하는 것이었다.


친정엄마는 전남 분이시고 시댁은 부산분이신데 지역감정이었던 걸까?

전남 출신 사람들이 얼마나 못 먹고 못 배운 사람들이 많은 줄 아냐며, 네가 어려서 잘 모르는 거라고 욕을 하기 시작하셨다. 마치 전남사람들 모두 못 먹고 못 배운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어머니는 친정엄마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만남이라고는 상견례 전 한 번과 가족끼리 혼인서약할 때 한 번, 단 두 번밖에 본 적이 없었기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불러다 놓고 하는 친정엄마에 대한 욕의 근거는 모두 억측이었다.



나는 그때 고작 아버지를 여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더 화가 치밀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나는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요즘 시대엔 사위가 처가살이를 한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 오셨다.

그 와중에 친정엄마를 만났는데, 딸 시집보내면서  친정엄마가 고개 숙이는 느낌의 행동을 하지 않아서, 이 장모라면 내 아들을 휘어잡겠구나라고 생각했고, 일어나지도 않은 처가살이의 두려움을 아들을 사랑해서란 이유로 또 내게 선을 넘었다.



친정에서 아무것도 안 해서 보내는 것이 분명 딸을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 분이었다.


결혼 전에 남편과 입을 맞췄었다.

서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아기 낳고 들어갈 곳이 많다고 말이다. 그리고 부모님 도움은 무엇이든 받지 말자고 말이다.

양가 부모님께 뜻을 분명히 전했는데도 시어머니는 다른 생각을 하고 계셨다.



또,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친정에서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고 상상하게 되었던 이유는, 내가 일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직장 경험도 사업 경험도 내겐 큰 성장을 주었지만 시어머니 눈에는 딸을 바깥으로 돌리는 이상한 친정엄마 밑에서 버림받듯 자라왔다고 보였다.


본인 딸은 한 번도 경제활동을 해 본 적이 없이 대학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보냈고, 본인 또한 같은 수순을 밟고 살고 있기에, 여자가 경제활동을 한 것이 친정에서 버림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는 분이 바로 내 남편의 어머니이다.


나의 직장생활은 통상 또래의 연봉보다 높았고, 나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이십 대에 사업을 한 나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을 한번 더 갱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내가 버림받은 자식으로 보였다.


"너는 착하고 밝은 아이니 내가, 내 딸로 너를 받아들이마. 며느리로는 못 받아들여도, 돌고 돌아온 내 딸이라 여길 테니, 친정과 연을 끊거라"


6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토시 하나 바뀌지 않은 문자 그대로의 이 말을 기억한다.

분명히 시어머니는 내게 선심 쓰듯, 불우한 이웃을 돕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사이비 종교 같은!'

어쩌면 그날부터였다.

내가 남편과 시댁의 종교에 알러지가 생긴 건.


그 순간 나는 펑펑 울었다

정말이지 이 결혼은 망한 것 같았다

아니, 망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이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던 이유는, 그때의 나는 착한 며느리병과 착한 아내병에 걸려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음에도, 나와 내 가족 전체를 모욕하던 그 순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다.

고작 할 수 있었던 것은 펑펑 우는 것, 단 한 가지였다.



당시 시누이가 결혼한 지 17년 차였는데 시누이 집은 시댁 바로 옆 아파트였다.

본인 딸은 걸어서 가는 거리에 있으면서 며느리에겐 결혼하자마자 친정과 연을 끊으란 말을 할 수 있는 분이었다. 모두 다 아들을 사랑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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