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아이가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한다고 살을 빼야겠다고 말한다. 얼굴에 살이 포동포동 올라 내 눈에는 귀엽기만 한데, 녀석은 남들과는 또래와는 체형을 꽤나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벌써부터 다이어트라니... 어쩌면 다이어트는 평생 숙제 같은 거다.
다이어트, 단순한 미용을 넘어선 건강의 문제
옷이 얇아지는 계절이 오면 살을 빼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다. 그동안 두꺼운 옷을 방패 삼아 먹은 음식들을 탓하며 다이어트를 다짐한다. 주기적으로 하는 다이어트 결심이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깨닫는 것은, 다이어트가 단순히 '날씬해지기 위해 하는 미용 활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상 체중을 벗어나면 건강검진 경고 문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마련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을 벗어나고, 당뇨는 경계에 다다르며, 혈압도 올라간다. 적정 체중 유지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 질환과 직결된다.
그러나 다이어트는 단순히 적게 먹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영양 균형을 무시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요요 현상으로 살이 더 찌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11년 차 내과 의사이자 생활습관의학 전문의로서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는 환자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 급하게 가면 오래갈 수 없다.
"배는 부르게, 칼로리는 적게" 먹는 비밀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배고픔을 참는 다이어트는 장기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 굶는 다이어트에 인체는 칼로리 제한에 적응하면서 기초대사량을 낮추고, 더 적은 에너지로 버티는 방향으로 변한다. 무작정 적게 먹고 굶는 것보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포만감을 주되 칼로리는 적은 음식, 이것이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의 과학적 비결이다.
다이어트 성공의 핵심은 '에너지 밀도'에 있다. 에너지 밀도란, 음식의 단위 무게 또는 부피당 에너지의 양을 말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같은 양(부피)을 먹더라도 칼로리가 낮은 식품을 선택하는 식사법이다.
다이어트에는 저에너지 밀도 음식가 정답
에너지 밀도가 낮은 음식들로는 수분과 섬유질이 많고 지방이 적은 과일과 채소가 대표적이다. 소화관을 통해 음식의 움직임을 늦추고 오래도록 포만감을 유지할 수 있는 섬유질을 많이 포함한 정제되지 않은 곡물과 지방의 함량이 적인 단백질 음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양배추, 브로콜리, 양파와 같은 채소, 오트밀, 귀리, 현미와 같은 통곡물, 계란, 오징어, 새우와 같은 고단백 식품이다. 이런 저에너지 밀도 음식은 같은 양을 먹어도 칼로리는 적게 섭취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유리하다.
다이어트에 최악, 고에너지 밀도 음식
반면 고에너지 밀도 음식은 조금만 먹어도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이다. 지방과 당분이 많다. 영양가는 별로 없고 배는 부르지 않지만 칼로리는 높아 살이 찌기 쉽다. 초콜릿, 감자칩, 케이크, 튀김류가 여기에 해당된다.
의사로서 이론적으로는 명확한데, 실제 임상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저에너지 밀도 음식들은 맛없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고에너지 음식은 생각만 해도 식욕이 당기는 맛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다이어트 건강식은 왜 맛이 없을까?
"그런 음식들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은 거 알지만 맛없어서 못 먹겠어요."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저에너지밀도 식단을 권유하면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볼멘소리였다.
배부르고 맛있는 다이어트, 양배추 오꼬노미야끼
양배추를 손질하면서 문득 양배추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 오꼬노미야끼가 떠올랐다. 오꼬노미야끼의 주재료는 좋아하는 것을 구워 먹는다는 일본식 부침개로 주재료는 양배추이다. 양배추는 100 그램당 25Kcal에 불과하고 92%가 대표적인 저에너지 밀도 음식이다. 게다가 식이섬유가 풍부해 포만감도 오래 유지된다. 또한 양배추에 함유된 파이토케미컬은 항산화, 항염증 효과까지 있어 만성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정제된 밀가루 대신 통곡물인 오트밀을 사용했다. 오트밀은 혈당 지수도 낮고, 식이섬유도 풍부해 다이어트 음식으로 제격이다. 의학 저널에서 읽은 연구에 따르면, 오트밀에 함유된 베타글루칸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는 포만감 호르몬인 콜레시스토키닌(CCK)의 분비를 촉진해 식욕 조절에도 도움이 된다.
포화지방이 많은 고기 대신 문어나 해산물을 사용하면 쫄깃한 식감도 살리고 맛을 다채롭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레시피는 이렇다:
재료 (2인분)
양배추 100g (곱게 채 썬 것)
양파 50g (길게 채 썬 것)
대파 50g (송송 썬 것)
오트밀 3-4큰술
달걀 2~3개
문어 100g (삶아서 자른 것)
아보카도 오일 약간
소금 약간
가쓰오부시, 쪽파 (토핑용)
만드는 방법:
1. 채소들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준비한다.
2. 큰 볼에 모든 재료를 넣고 잘 섞는다.
3. 팬을 중불로 예열하고 기름을 약간 두른다.
4. 섞은 재료를 팬에 올려 동그랗게 모양을 잡는다.
5. 양면을 노릇하게 구워 완성한다.
6. 가쓰오부시와 쪽파를 올려 마무리한다.
다이어트, 즐거운 평생 숙제로
건강 식재료를 섞어 부쳐주기만 했는데도 맛은 놀랍도록 맛있었다. 노릇 바삭하게 구워진 표면과 촉촉한 속, 양배추와 양파의 은은한 단맛, 오트밀의 구수함, 문어의 쫄깃함이 어우러져 풍미가 깊었다. 가쓰오부시의 감칠맛(감칠맛의 주성분인 글루탐산은 포만감 신호 전달에도 도움이 된다)은 건강식 재료가 가질 수 있는 밋밋함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마지막으로 쪽파의 알싸함이 기름진 느끼함을 잡아줬다.
앞서 설명한 레시피대로 구우면 2판 정도가 나온다. 혼자도 2판을 모두 다 먹어도 450Kcal 정도밖에 안 나온다. 일반 오꼬노미야끼의 절반 수준이다. 저칼로리 고영양가 양배추 오꼬노미야끼는 식이 섬유와 단백질이 풍부할 뿐 아니라 맛까지 훌륭해 다이어트 식단으로 처방하기에 완벽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입맛 까다로운 딸아이도 한 입 먹어보더니, 생각보다 맛있다고 해주었다.
딸아이와 함께 양배추 오꼬노미야끼를 굽는다. 의사로서 이론을 설명하는 대신, 먹기 싫은 건강식만 권유하는 대신,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쩌면 입에 쓴 음식이 몸에는 좋다는 건 우리가 만들어낸 편견일지도 모른다. 건강한 재료의 조합으로도 충분히 맛있게 먹는 법이 있다는 걸, 양배추 오꼬노미야끼가 증명하고 있다.
생활습관의학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지속 가능한 건강한 습관을 만드는 학문이다. 즐겁지 않으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다이어트가 평생 숙제라면 즐겁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 평생 숙제 다이어트는 굶는 게 아니라 즐겁게 '잘'먹어야 한다.
포동포동한 살이 오른 딸아이의 뺨에 얼굴을 대본다. 다이어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음식을 즐기는 건강한 관계라는 것을 언젠가 아이도 알게 되겠지. 함께 만들었던 오꼬노미야끼를 떠올리며 다이어트가 즐거웠다고, 다이어트와 맛있는 음식이 공존할 수 있음을 기억 주길 바란다.
배부르고 맛있는 다이어트 양배추 오꼬노미야끼 다양한 변형
문어 대신 새우나 닭가슴살을 사용해 본다.
간식으로 즐기고 싶다면 작은 사이즈로 미니 오꼬노미야끼를 만들어본다.
양배추를 더 곱게 썰수록 식감이 부드러워진다.
토핑으로 저지방 요거트, 아보카도 마요네즈를 약간 더해도 좋다.
오늘 내용을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저를 계속 글 쓰게 합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 작가 소개 : 닥터 키드니
내과 전문의 & 워킹맘이다. SNS에서 내과 의사의 건강한 잔소리 채널을 운영하며 건강에 대해 잔소리한다. 저서로는 에세이 <봉직 의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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