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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미 Jan 03. 2022

#7. 나도 우리 집 귀한 딸이에요.

<간호사 살리기>






처음이었다.

간호사 일을 하면서 위협감을 느껴봤던 적은.







‘아, 이러다 정말 내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아온다면?’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함몰되는 정도로 끝나려나?’







그 잠깐의 시간 동안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만큼이나 순간적으로 두려웠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이 눈빛이,

분노가 차서 씩씩거리는 모습이,

고르지 못한 숨의 형태들과

내 귀에 쑤셔 박아대는 날카로운 목소리들이,

내게는 총체적인 하나의 위협으로 느껴졌다.







이미 말다툼은 이내 몸싸움으로

번지기만을 기다리듯 불을 뿜어대고 있었고,

난 Triage실을 박차고 나와

응급실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내가 조금 전까지 겪었던

그 상황들은 정말 다른 차원의 세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안도감을 되찾은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고,

너무 무서웠던 탓에 눈물이 났다.










“선생님.. 저.. 저 Triage 못하겠어요.. 흑..

보호자가.. 보호자가 막 저한테 소리 지르고 욕하고..”









울면서 못하겠다는 내 모습을 본 응급실 과장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은 전부 다 놀라셔서는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왜?!

밖에 보호자가 뭐라 했는데?!”








동그란 토끼눈을 뜨며 나에게 다가와 물어보셨다.







그리고 다른 남자 서브 차지 선생님께선






“내가 나가볼 테니까 너는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고 들어가 있어. 내가 상대하고 올게”









라는 짧은 말을 남기시곤 Triage실로 향하셨다.










아이처럼 엉엉 우는 나를 데리고

간호사실 안으로 데려가신 차지 선생님께서는

들썩거리는 내 어깨를 안고

휴지를 건네주며 물으셨다.







“ 어떻게 된 상황인지 말할 수 있겠어?

보호자가 뭐라고 했는데??”








나는 앞전의 상황들을 훌쩍이며 간략하게 설명하고,

너무 무서워서 금방이라도

한 대 맞을 거 같아서 도망쳐 들어와 버렸다고 말했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럴 땐 지금처럼 가차 없이 안으로 들어와.

우리가 같이 상대할 테니까.

얼마나 놀랬을까..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도대체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놀라게 했길래

이렇게 우냐고 애가.”










차지 선생님께서 대신 역정을 내시는 중에

누군가 똑똑, 하고 간호사실 방문을 두드렸다.








“ 혹시, 승미야 좀 괜찮니? 잠깐만 들어가도 될까?”








아까 나를 대신해 달려 나가셨던

서브 차지 선생님이셨다.







“다른 게 아니고~ 아까 그 보호자가

너한테 사과를 좀 하고 싶다고 하네.

나와서 사과받을 수 있겠어?

너무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갑자기 사과라니. 꽤 당황스러웠다.







“내가 보호자 하고 이야기 좀 했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네? 괜찮겠어?”







그랬다. 나를 위해 대신 보호자에게 한소리 하고

오신 서브 차지 선생님 덕에

그 보호자가 사과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내키지 않는 사과였음에도,

그 선생님께 너무 감사해서 나가보기로 결정하고

응급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이 열리고, 그 앞에는 아까 그 보호자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 아 아가씨, 아니 뭐 그게 아니고~

내가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아니 나도 뭐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다 보니까

말이 좀 세게 나왔네~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요.

아니~ 근데 뭐 아가씨가 막 그렇게까지 우니까

어? 꼭 내가 무슨 죄인이라도 된 것 같잖아 ~”







글쎄. 이런 것도 사과라면 사과겠지만

적어도 당사자인 내 입장에선

전혀 사과의 진정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내 앞에서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농담 따먹기 하는 것처럼 사과를 건네는

저 사람의 태도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끼눈을 하고

나를 노려보던 사람이

생글생글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웃는다는 게 너무 싫었다.

 







나는 더 이상의 말도 섞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저 얼굴을 맞대고 쳐다보는 것조차 하기 싫었던 터라

고개만 휘휘 저으며 됐다고 짧게 얘기하곤

응급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키도 크고 덩치 좋은 남자 서브 차지 선생님께서

내가 우는 걸 보곤 Triage실로 달려 나가

보호자에게 가서 한 마디 했다고 한다.






보호자분이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간호사가 응급실 안에 들어와서 저렇게 우냐고,

좋게 얘기하면 되지 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서

애를 울리냐고 따졌다고 한다.






그걸 들은 보호자는 자기는 그런 적 없다며

처음엔 발뺌을 했지만

다 됐고 당신 때문에 그 간호사는

울고 겁먹어서 일도 못하는 중이니까

당장 그 간호사한테 사과하라고 따진 덕분에

결국 그 보호자가 알겠다고 사과하겠다며

응급실 앞까지 찾아온 것이었다고.




 





사과를 하게 된 배경을 들은 나는

한편으론 그 선생님이 너무너무 고마웠고

한편으론 내가 힘도 없고 덩치도 작은 여자라서

더 만만하게 본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속상해도 어쩌겠나.

다행히 한 대도 맞지 않았고,

사과 같지 않은 사과라도

받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던 것 같다.









이후 나는 마음을 금방 추스르고

다시 내 할 일을 했고,

그 환자와 보호자는 열이 나는 관계로

격리 방에 들어가서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게 됐지만

선생님들은 내가 그 방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다른 막내 선생님을 보내 주사를 놓게 했다.  







수액을 맞고 환자와 보호자는

응급실에서 귀가를 했고,

나는 끝까지 격리방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렇게 환자 또는 보호자와 싸우게 되는 일은

정말 비일비재하다.

물론 이제 나도 Triage를 한 지 좀 됐다 보니

저렇게 우는 일은 다행히 그 이후로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이젠 나도 환자나 보호자가 소리를 지르고

협조가 전혀 되지 않으면

왜 소리를 치냐며 같이 내지르기도 한다.



서로 좋게 좋게 말을 해서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대뜸 화를 내고 시비를 걸다

결국 끝은 욕설과 폭력이 난무해서

경찰이 출동하고 한바탕 난리가 나는 경우도 꽤 많다.









사람이 아플 땐 얼마나 날카롭고 예민하게

변할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이해는 한다.

나 또한 아플 때 누가 건드려도

짜증 나고 신경질이 나니까.  






하지만 화를 많이 내고 소리를 많이 지른다고 해서

진료를 빨리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본인의 상태가 누구보다 더

위중하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주관적이나,

Triage에서 KTAS 군을 부여하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좀 더 응급한 환자를 선별해 내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부디 많은 사람들이 알고 기억하여

이해해 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귀한 집의 아들과 딸들이듯이,


응급실에서 일하는 모든 의료진들 또한

귀한 집의 아들과 딸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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