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살리기>
응급실에서 일한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 지났다.
생각보다 응급실은 내 체질이었고,
환자가 몰릴 땐 힘들긴 해도 설명 못 할 뿌듯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도 꽤 있었다.
그러나 일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
결코 내게 좋은 일만 일어났던 건 아니었다.
우선 내가 일하고 있는 ‘응급실’은
정신이 없고 박 터지는 곳이다.
흡사 재래시장과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붐빌 때는 한없이 붐비니까.
특히나 명절이나 휴일의 응급실은
상상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다.
우리도 언제나 빠르고 신속하게 처치해주고 싶지만
매 듀티마다 할당된 인력은 한계가 분명하고,
몰려 들어오는 환자들에 비해 손은 늘 부족하다.
각자 참아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아픔으로 인해
응급실까지 내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모두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고,
짜증과 불만이 섞인 화살은
대부분 의료진들에게 날아온다.
그리고 그 화살의 시위는
대개 Triage (환자분류소) 실에서부터
당겨지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들이 있는데,
본인 혹은 같이 데리고 온 누군가가 아프다고 해서
무작정 응급실로 뛰쳐 들어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응급실에 오면 먼저 원무과에 접수를 하고,
Triage실(환자분류소)에 가서 대기해야 한다.
옛날 같았으면 접수만 하고
바로 응급실로 들어오는 게 당연했겠지만,
2012년에 개발된
KTAS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를
전 병원의 응급실에 도입시키면서,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을
Triage실에서 우선적으로 분류하여
응급한 순서대로, 즉 군이 높은 순서대로
환자가 진료를 받게 됐다.
우선 새로운 환자가 접수되고 나면
Triage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나와
환자의 기본적인
V/S sign(혈압, 체온, 맥박, 호흡, 산소포화도 등)을
확인하고,
그 증상이 발현된 시간(on-set time)
또는 사고가 발생한 시간을 물어보고,

환자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투약 이력, 증상, 사고기전 등
여러 정보들을 신속히 물어본 뒤
분류한 군이 높은 순서대로(응급한 순서대로)
환자를 응급실에 넣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절차를 무시하거나,
잘 모르기 때문에
무작정 응급실 문부터 열어달라고 두드리거나
환자를 둘러업고 달려오곤 하지만
우리는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들로 환자와 보호자들과
자주 부딪히곤 하는데
환자분류를 하는 목적은 응급환자에게
더 빠르고 안전한 진료를 제공하기 위함이며
환자 분류를 통해 그에 따른 중증도가 높은 순으로 환자를 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므로
빨리 접수를 한다고 해서,
내가 느끼기에 내가 제일 아프다고 해서,
진료를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어느 평일의 데이 근무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새로 접수된 사람은 21살의 젊은 남자였고,
휠체어에 앉아 손에 구토 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보호자는 아버지로 보였으며
절차에 맞춰 환자를 파악하기 위해
Triage실로 들어가자마자
보호자는 이때를 기다린 것 마냥
나에게 따발총처럼 쏘아대기 시작했다.
" 아니, 지금 애가 아파서
이렇게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는데
좀 빨리빨리 해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네 죄송해요,
몇 가지만 간단하게 하고 들어갈게요.
환자분 열부터 좀 잴게요."
"아니, 잠시만.
열은 아까 접수하러 들어오면서 다 쟀어요.
근데 왜 또 잽니까??"
환자에게 체온계를 들고 다가서는 나를
보호자는 팔로 막더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네, 그렇지만 여기서 한번 더 재봐야 해요.
체온 말고도 혈압이나 맥박, 호흡도 재야 하고요."
"하~ 참나, 아 그럼 빨리 재 주소!!
애가 지금 아파 죽어 가는데 뭐야 이게?! 어?!!”
냅다 소리를 지르는 남자 보호자.
환자를 얼른 분류하고 넣어야 하는데,
보호자는 너무나 비협조적이었다.
족히 180은 될 것 같은 큰 키와
내게 다가서며 윽박지르는 보호자에게
나는 한마디 했다.
" 보호자분, 소리는 지르지 마시고요.”
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뭐?!!! 소리 지르지 마??!!!
내가 언제 소리 질렀다고 그래, 이 아가씨가?!!!"
라며 더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다가와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응급실 입구에 있던
보안 선생님이 나오셔서 보호자를 막아섰고,
나는 보호자에게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 보호자분, 지금 소리 지르고 계시잖아요
저도 빨리 환자분 진료 보도록 하고 싶어요.
이러시면 더 늦어집니다. 협조 좀 해주세요.
환자분, 혈압 좀 ㅈ…”
"아니 이 아가씨가 진짜???!!!!
내가 언제 소리를 질렀다고 그러냐고!!!!!
빨리 좀 해 빨리!!!! 이 씨발, 뭐 하는 거야 이게?!!”
"보호자분, 간호사분께 욕하고 소리 지르지 마세요! 자꾸 이러시면 진료 보는 거 더 늦어집니다!”
갑자기 내게 욕을 해대고 소리를 지르는 탓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너무 귀가 울리고 아팠다.
도대체 왜 내가 욕을 먹어야 되는 건지,
왜 내가 윽박지르는 걸 들어야 되는 건지
어이없고 화가 나고 속상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북받치는 감정을 눌러 담고 있었다.
그 사이 보안 선생님은 보호자를 몸으로 막아섰고,
나는 무시하고 환자에게 집중하려 했으나
위협적으로 씩씩대는 보호자는
자신을 막고 있는 보안 선생님의 손을 힘껏
쳐내며 또다시 Triage실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뭐???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씨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니 내 몸에 손대지 마, 손대지 말라고!!!!
코로나 옮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어?!!!”
그래,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