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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미 Oct 09. 2023

#12. 우리의 삶이 끝나갈 때

<간호사 살리기>




어김없이 바쁘던 응급실에서의 이브닝 근무 때였다.


외래가 끝난 저녁시간대라

환자들은 자연스레 응급실로 몰려들었고,


정신없이 근무하다 보니

저녁밥은 여느 때처럼 거른 채

출근과 동시에 텀블러에 미리 타 놓았던

아이스커피로 목만 잠시 축이고 있던 순간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귀에 날카롭게 박혀대는 응급실 전화 벨소리가 울렸고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받은 차지 선생님은

옆에 있던 펜을 들어

종이에 무언가 급히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차지 선생님은 크게 소리쳤다.




"CPR이요!!!! 60대 남자, 자동차 TA!! "





오늘도 올 것이 왔구나.



CPR이라는 소리를 들은 이브닝 멤버들은

전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마시고 있던 커피를 내팽개치고

E-cart를 준비하러 달려갔다.




대부분 CPR 전화가 오면 빠르면 1-2분,

늦어도 5-10분 이내에 구급차가 도착한다.

그렇기에 신속하게 CPR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고

맡은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다들 모여 CPR 준비를 마무리해 갈 때쯤,

가까이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이내 구급차가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CPR 환자를 싣고

응급실 입구 문턱을 밟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CPR 기록은 시작된다.




" 19시 32분, CPR 도착이요!!"




자동차 TA로 실려 들어온 이 60대 남자.

사고 경위는 심장마비로 인한

자동차 단독 TA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차는 에어백이 터져 가드레일을

단독으로 들이받은 채 서 있었고,

지나가던 행인들이 발견하여 119에 신고했다고.

그렇다, 음주운전도 아닌

심장마비로 인해 발생된 교통사고였다.




과장님은 환자에게 intubation을 시행하고

인턴 선생님은 ambu를 짜고,

누군가는 환자의 옷을 자르고

누군가는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할 라인을 잡고,

또 누군가는 가슴압박을 수행하는 등



우리는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환자의 보호자들은 이미 연락이 된 상태라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인계를 들었는데,



환자는 여전히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





" 아빠.. 아빠!!!!"




곧이어 환자의 가족들로 보이는 보호자들이 도착했다.

과장님은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며

환자의 과거력과 현병력을 수집해 갔고,

우리는 계속해서 CPR을 이어나갔다.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리려 노력했던 우리였지만.

그 환자는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과장님의 사망 선언과 동시에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병원으로 달려왔던

가족들은 전부 환자 위로 엎드러져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면 어떡해.. 나는 어떻게 살라고..!!

ㅇㅇ아빠, 일어나 봐.. 눈 좀 떠봐, 제발!!!"




환자의 아내로 보이는 보호자는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치며 울부짖었다.




내 또래 나잇대로 보이는 보호자들 또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쏟으며 환자를 바라봤고,

가족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만이 응급실을 가득 메웠다.




그때였다.

보호자들 중 장녀로 보이는 한 명이

환자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슬프지만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따뜻한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 아빠, 아빠 내 말 들리지?? 나 아빠 딸 ㅇㅇ야.

아빠.. 나 아빠랑 벌써 이렇게 헤어지기 싫은데..

헤어져야 된다니까 나 진짜 너무너무 슬퍼.



그래도 아빠,

아빠가 우리 아빠여서 우리는 너무 고맙고 행복했어.

아빠도 우리 만나서,

우리가 아빠 자식들이라서 행복했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빠,

다음생에도 우리 아빠로 꼭 태어나줘.

꼭 약속해 줘, 아빠. 우리가 정말 많이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사랑해 아빠.



아빠는 이 세상에서 제일 최고로 멋진 아빠였어.

이젠 아프지 말고 하늘에서 푹 쉬어.

엄마랑 동생들은 내가 잘 챙길게.

나중에 우리 다 같이 만나자.

하늘에서도 우리 잊지 마. 우리도 아빠 안 잊을게.

너무너무 사랑해 아빠."






그 마지막 인사를 듣는 동안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며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사실, 응급실에 일하면서

수많은 생명을 살려냈던

기적 같은 순간들도 많았으나,

수많은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바라봐야 했던

안타까운 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죽음에 깊게 슬퍼하진 않았다.

너무나 많은 죽음을 보면서

자연스레 무뎌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딸의 마지막 인사는

내 뇌리에 오래도록 박힐 만큼의 충격이었다.



딸이 눈물을 머금고

애써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건네던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죽음이 주는 허망함과 익숙함에

메말라버린 내 마음을

순식간에 밀물처럼 덮쳐왔다.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보호자들이 환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환자에게 사용했던 물품들을 빼서 정리하고,

얼굴과 몸 곳곳에 묻은 피들을 닦고

깨끗한 반시트를 가져와 덮었다.




두 눈이 감긴 채, 곤히 잠든 것처럼

누워있는 환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분은 참 따뜻하고 멋진 가장이자 아버지셨구나.'




그렇게 환자와 보호자들과의 시간이 끝이 나고,

환자는 절차에 따라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다들 고생 많으셨다며 우리에게도

감사 인사를 남기고 가셨다.







정신없던 그날의 이브닝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삶이 끝나갈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될까.





적어도 누군가에게만큼은,

나와의 인연에 있어 무척이나 행복하고 고마웠다는

따뜻한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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