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등본 세탁

by 스미다

모처럼 오전 커피 약속이 잡혔다. 메뉴는 거의 항상 마시던 라테 한 잔. 커피를 시키고 의자를 꺼낸다. 집보다 폭신한 의자에 앉아 커피 추출기에서 원두 내리는 소리를 들으니, 아침의 체증이 내려갈 듯하다. 지인을 기다리며 먼저 나온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눈뜨고 목구멍으로 처음 삼키는 것이 카페인이란 생각에 잠시 죄책감이 몰려왔지만, 이것마저 없다면 무엇으로 긴 숨을 대체할까.

익숙한 얼굴을 마주 앉아 더 익숙한 일상을 또 전해 듣는다. 아이의 키가 알고 있던 것보다 몇 밀리미터 더 커진 것에 입을 모으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축하해준다. 브로콜리를 잘 먹는다는 소리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잊지 않고 전해줬다는 소식에, 내 세탁 바구니에 툭툭 쌓여 있듯 엉켜진 단점 중 개중 괜찮은 것을 집어 골라 말끔하게 털어낸다. 우리 아이의 가장 그럴듯한 소식을 별거 아닌 듯 무심함을 버무려 전하는 입매에 마음까지 가뿐하진 못하다. 그 말의 진위여부는 나만 알고 있을 테니깐.


손목에서 진동이 울린다. 이럴 용도는 아니였지만, 손목에 채워진 디지털 수갑은 무엇하나 지나치지 않고 확인하게 한다. 굳이 지금 알 필요가 없는 오늘의 미세먼지 상태, 내과 휴가 안내 알림, 나에게만 발송됐다는 쇼핑몰의 할인 쿠폰, 증권회사의 단독이라는 광고까지. 세세하고도 친절하게 알려오는 통에 자꾸만 손목을 젖혀 허탈함을 마주하게 했다.


남편의 문자다.

"밖이야?" 뭐지. 무슨 급한 일일까.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질문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지고 상대에게 양해를 구했다. "응,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시간 되면 은행 가서 달러나 바꿀까 했지." 그의 연이은 답장에 커피는 식어만 갔다. 머그잔은 아직 온기가 가득했지만, 그새 우유가 분리된 커피를 휘휘 돌리며 지인의 말소리에 한 박자 늦은 호응만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났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현관 도어락을 눌렀다. 세상을 향했던 친절한 입꼬리가 내려갔다. 난 왜 이토록 굳었을까.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 분명 화가 날 일이 없는데, 화낼 상대도 없고 이유도 없이 깜빡이지 않는 눈길을 바닥으로 처박았을까.



은행. 오전의 은행. 평일 오전의 은행.


일하는 사람이 쉽게 갈 수 없는 곳. 출입증을 목에 건 이가 오전 중에 특별히 가지 않을 곳.

핸드폰 하나면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에 오전에 은행을 찾아간다는 건 대출을 제외하곤 딱히 갈 일이 없었다. 갈 필요가 없었다. 갈 이유가 없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아빠는 항상 엄마에게 통장 정리를 시켰다. 공과금이 제때 나가고 있는지, 받아야 할 돈은 입금됐는지, 잔액은 얼마나 남았으며 다른 통장에 있는 돈을 송금해야 하는 건 아닌지. 아빠의 시간 속에서 통장 정리는 개운한 샤워였다. 눈에 보이는 성과였다. 마음이 믿을 수 있는 숫자였다.

엄마의 시간에서 통장 정리는 시장에 반찬거리를 사고, 약국에 들러 할머니와 아빠가 복용해야 할 약들을 대리 처방해 오는 길에 들러야 할 마지막 어떤 곳이었다. 당장 식탁에 올라갈 소금에 절인 고등어 두 손을 사고, 외국산 콩으로 만들었을 갓 나온 모두부를 사며, 중국산 참깨를 국산이라 속이며 고소함을 들이대는 빨간 뚜껑의 소주병을 사 오는 일이 우선이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에서 섭섭하시지 않을 만큼의 용돈을 시어머니 통장에 송금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 후에 공과금의 납부라든가, 보험 회사의 출금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9남매마냥 쪼르르 뒤따라왔다. 엄마와 아빠의 통장 정리는 이토록 달랐다.


남편이 내게 한 "달러나 바꿀까 했지"는 일하지 않는 내가 오전 시간에 동네 엄마들과 만나 커피 한잔하는 시간을 허공에 떠도는 먼지처럼 만들었다. 안다. 남편은 정말, 아무 연유 없이 그저 오늘의 달러 시세가 많이 올랐기에 출장에서 쓰고 남은 몇 장의 돈이라도 바꿔볼까 그냥 던진 말이라는 것을. 하등 내가 기분 나쁘게 받을 연유가 없다는 것을.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탯줄부터 배배 꼬인 상태로 태어난 인간일 테니깐. 무슨 말 한마디 무서워서 도통 하지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테니깐.


하지만 남편의 그 달러나 바꿀까 하는 말은 "요즘 달러 시세가 좀 괜찮나 봐. 집에 얼마 없지만 그거라도 바꿔볼까?"라는 그의 생각을 와전 시켜버렸다. "집에 있으면 은행 업무 좀 보는 게 어때?"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신경 좀 쓰지?" "오전에 하릴없이 또 아줌마들 만나 커피 마시고 있어?" 이런 뜻은 절대 아니였겠지만서도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탯줄은 아니었다고 쳐도 집안 공기에 눅눅히 배어있던 전형적인 바깥사람의 담배 연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눈 뜨고 보고, 귀 열고 들린 수없는 아빠의 목소리가 있었으니깐. 통장 정리 하라는 말에 애들이 돌아가며 정신 사납게 굴고,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애미야를 부르고 시할머니가 똥 싼 기저귀를 깔아뭉개 집 안 가득 구린내가 나는 통에 은행을 못 갔지만, 앞뒤 말 자르고 "아. 은행을 못 갔네." 한마디 했을 때 "대체 네가 집구석에서 하는 게 뭐냐. 맨날 아줌마들 만나 커피만 마실 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 좀 써라!"라고 소리친 아빠의 지분이 없다고는 못할 테니깐.


아빠의 지독한 권위에 지쳐 다른 남자의 등본 밑에 숨고 싶었던 내 지난 날의 선택은 자신을 떳떳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의 안락함 속에서도 나는 언제나 '들렸던 목소리, 보았던 얼굴'을 리플레이하며 그의 친절을 불법 세탁해 버렸다. 그 말이 그리 깨끗할 리 없어. 속지 말자. 말의 속뜻을 생각하자.

그가 아무리 자신의 결백을 들쳐 보여도, 수많은 방법으로 날 추켜세워도 난 아직 지난날의 나를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면 안 된다는, 남편에게 흠집을 잡혀서는 안 된다는 내재된 자아는 나를 자꾸만 채찍질하며 작아지게 했다. 그리곤 여전히, 언제나 그랬듯 갇혔다. 내가 만났던 첫 번째 세상 속에 나를 가뒀다. 언제쯤 나는 나를 벗어날 수 있을까.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