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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Mar 08. 2021

마란타 레우코네우라와 사바아사나

©️EZ(AVEC STUDIO)


기도하는 식물이 있다. 진짜 기도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밤이 되면 모든 잎이 하늘로 솟는다. 그 모습을 보면 손바닥을 마주 대는 합장이 떠오른다. 요가에서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하는 그 합장. 나마스테नमस्ते. 산스크리트어로 인도와 네팔에서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나마스테를 주고받을 때 손은 가슴 앞에서 합장한다. 마란타도 밤마다 기도하는 것처럼 합장한다. 마음에 드는 잎끼리 마주 보는 것인지 때마다 다른 것인지 관찰력이 부족해 모른다.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마란타 레우코네우라 Maranta Leuconeura를 처음 본 건 1년 전 식물을 대량으로 모아놓고 판매하는 사이트에서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다양해서 선택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겨우 장바구니에 몇 개를 욱여넣었다. 그중 마란타가 있었다. 3,500원. 잎이 네 장 달린 작은 화분으로 왔다. 밤이 되면 기도한다는 말에 홀려 샀는데 어두워지자 하나의 잎도 빼놓지 않고 얼굴을 숨겨버렸다. 반신반의했던 기도하는 식물 덕분에 매일 아침과 밤마다 번갈아 가며 들여다보고, 잎을 닦고, 사진을 찍고, 돌려보고, 자랑도 하고, 새잎이 나면 두 발을 구르기도 했다. 그 사이트를 매일같이 들락날락했던 건 잘 자던 밤이 길고 낯설어졌을 때였다. 한동안 잠잠했던 꿈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괴롭혔다. 무슨 일이든 의미부터 찾아야 직성이 풀려서 악몽을 꾸는 이유를 찾아다녔다. 해몽은 기본이고 풍수지리에 맞는 잠자리의 위치도 다시 찾아봤다.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자야 일이 잘 풀린다나. 북쪽은 악몽에 쥐약이고, 화장실 쪽, 문 쪽은 피해야 한다나. 머리 방향도 바꿔보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사주, 타로, 별자리까지. 이것저것 다 합해서 봐도 이유는 한쪽을 가리켰다. 내가 문제였다. 그때는 내 마음이 문제라고 인정하기보다 상황을 탓하고 싶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많다 하고 싶었다. 설명하기 제일 쉬운 방법이니까.

매일 아침 마란타가 합장을 푸는 시간에 나는 합장을 한다. 짧게는 10분, 마음이 동하면 50분까지. 요가 선생님의 동작에 따라 팔을 벌리고, 다리를 접고, 허리를 늘렸다가 척추 사이의 공기를 느꼈다가 (아직 못 느낀다) 나의 들숨으로 몸속을 관찰한다.(아직이다) 그리고 나마스테. 가슴 앞에서 합장. 선생님은 이걸 수련이라 표현하고, 매번 칭찬해 준다. 매트 위에 앉는 걸 허락한 자신을 스스로 칭찬해 주라고. 처음에는 적개심이 들었다. 팔만 하늘로 들어도 잘하고 있다고, 힘들면 조금 구부려도 괜찮다고 하는데 괜한 반발에 부들부들 떨며 주제에 안 맞게 쭉 피고 버텼다. 언제나 멍청한 짓은 하고 나서 깨닫는다. 함께 한 지 2년이 되어가는 마란타는 죽지 않고 풍성하게 잘 자란다. 너무 많이 자라 모든 잎이 합장할 수 없는 지경이다. 지난겨울에는 분갈이를 하다가 아름다운 두 촉을 부러뜨리는 사고도 쳤지만, 나눠 심은 새끼들도 잘 적응했다. 새잎에 호들갑이었던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속으로 기뻐한다. 무심한 듯 잎을 매만진다. 주말에는 분무도 해주고 하엽은 보이면 바로 잘라준다. 지금까지 꽃대는 두 번 올라왔었는데 언젠가 마음이 맞으면 또 보여주겠지 하며 기다린다. 요가 선생님의 과한 칭찬이 적개심을 만들었던 것처럼 마란타도 그럴까 봐 야박한 쪽을 택했다.

합장하는 마란타를 찬양하고, 식물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요가에서 좋아하는 동작은 사바아사나 Savasana다. 사바 sava의 뜻은 송장이다. 송장 자세. 대칭으로 바로 누운 자세다. 대부분 수련의 마무리 단계에서 한다. 쉬운 자세라고 생각하지만, 터득하기 힘든 자세라고 한다. 아침 잠결에 요가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사바아사나를 하다가 잠이 드는 경우도 있다. 몸의 모든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잠들면 안 된다고 한다.

“잠들지 않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마란타가 합장을 하는 진짜 이유는 스스로 습도 조절을 하기 위해서다. 열대 우림의 큰 나무 아래에 서식하는 종이기 때문에 공중 습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줘도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아는지 스스로 폈다, 접었다 게으름 없이 움직인다. 마란타도 나도 생존을 위해 합장을 한다. 잘 자라는 식물을 보며 고비를 넘겼고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움직인다. 잠들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사진 정은지 (AVEC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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