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시간] - 세트 디자이너가 꿈인 김도엽 님
연극 에세이의 새로운 인터뷰 코너, '나만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시간'입니다.
'낭만을 태웠습니다'은 연극 활동 일지와 경험을 알리는 브런치북인만큼 저마다 '연극'이라는 의미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각자의 속도와 나만의 이야기로 찾는 시간 속에 당신은 몰입의 대상을 발견하셨나요?
그 몰입 덕분에 행복한 감정을 얻었다면 그것은 추억, 꿈, 낭만, 취미 등의 단어를 가지고 더욱 하루를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연극은 기, 승, 전, 결로 이루어진 희곡의 시작점에서 탄생됩니다. 인생도 글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문학이기에, 좋은 희곡이라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대로 구상이 될 수 있냐에 대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연극의 무대, 오늘은 '무대'로 연극의 의미를 만들어볼까요?
[나만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시간]의 첫 번째 - 무대 편
1. 안녕하세요. 도엽 님.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어쩌다 취미로 계속 연극을 한 김도엽입니다. 주로 무대디자인 작업이나 시각적인 작업에서 일을 도맡아 작업하고 있습니다. 점점 작업하다 보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져서 다양한 곳에 손대고 있습니다.
2. 도엽 님의 꿈이 세트 디자이너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세트 디자이너로 꿈을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 전공은 실내건축학과입니다. 실내를 다루는 분야다 보니 정말 다양하게 나뉘어요. 넓게는 인테리어부터 조명, 가구이고 좁게는 벽 마감 가구의 천 재질까지도요. 그러다 보니 저학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전공에 대해 걱정과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그러던 중 첫 연극 공연에서 한 선배가 “너는 실내건축학과니까 무대 하자”라는 말을 꺼냈고 저는 무대로 투입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힘들다가도 희곡을 통해 가상의 공간을 상상하고, 실제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세트 디자인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3. 열정적으로 몰입을 경험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간략한 소개와 그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 주세요. (* 연극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콘셉트가 전시회인 연극 소품을 제작하면서 계속 밤도 새우고 시각, 소품, 무대 등 여러 포지션에서 일하니까 쉽게 짜증이 올라왔어요. 미술 작품 같은 소품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감정이 불안정하고 뭘 해야 할지도 쉽게 방향이 안 잡혔어요. 그래서 좋아했던 연극의 대사를 지금 상황에 대입하여 내뱉었고, 혼자 각목 프레임에 붓을 휘갈겼습니다. 참았던 숨을 내쉬면서 바라보는데 마음에 들기 시작하면서 여태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또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몰입했던 순간 중 하나예요.
4. 연극 활동을 하면서 본 전공의 영향이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또 연극을 하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실 실내건축학과라고 해서 선배가 저를 무대 팀에 넣게 되면서 시작했다고 했지만, 학과로부터 도움받은 것은 캐드나 3D툴 사용 정도인 것 같아요.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은 ‘입시 미술의 경험들’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레퍼런스 자료를 수집하거나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유명한 연극뿐만 아니라 학내 공연을 하는 학생들의 연극을 더 많이 보고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같이 일하는 팀원들은 고생이었지만, 만들어보고 싶은 것을 무작정 만들어 보는 게 제일 좋았어요.
5. 연극을 정의하면 ‘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본에 따라 관객에게 연기를 보이는 예술’, ‘다른 사람에게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말이나 행동’을 뜻하는데요. 연극 공연을 준비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 볼게요. 그때의 도엽 님에게 연극은 어떤 존재일까요?
머릿속에 크게 생각하지 않았을 때는 연극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 속에서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지 않는 건지 저는 몰랐을 것입니다. 연극을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과거에 제가 어떻게 답했을지 순수하게 말하기 어렵네요. 아마 그때의 제가 인터뷰를 한다면 “연극이요? 그냥 연기…?”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1. 대학교에 수많은 동아리가 있어요. 연극 동아리 역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해보고 싶은 사람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연극 동아리에 지원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친구 따라 궁금해서 신청했다는 소소한 이유도 좋습니다.
저는 좀 갑자기 했던 사람이라 볼 수도 있고, 용기를 갖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요. 원래 연극을 좋아하거나 해보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보통 1학기 때 동아리 모집을 했었는데, 그때는 오히려 밴드부나 풍물패에 들어가려 했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문득 공연예술의 종합은 연극 아닌가? 인 생각을 들어서 모집을 안 하는 시기였는데도 당시 극 회장 선배님께 대뜸 연락했어요. 동아리 들어가고 싶다고, 면접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드린 게 생각이 나네요.
2. 드라마 극예술연구회에서 첫 연극과 맡은 역할은 무엇일까요?
제 첫 공연은 '필로우 맨'입니다. 필로우 맨에서 무대보를 처음 맡았습니다. 지금 보면 참 우여곡절이 많았던 공연이었어요. 갑작스레 공연단에 들어와서 그냥 시키는 대로 못질을 하고 덧마루를 나르는 일을 방학 동안 하다 보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상황 파악이 안 됐어요. 그렇게 막상 공연이 시작하고 팸플릿을 보는데, 기획팀에서 실수로 팸플릿에 공연진 몇 명을 누락시키게 되면서 제 이름도 빠져있더라고요. 그때 약간 김샜다 정도였어요. 좌절은 아니었는데, 저는 그 공연을 보며 아무 상관없는 느낌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 동아리를 나가진 않았지만 제대로 활동을 하진 않았어요. 제 첫 공연은 제법 싱거웠습니다.
3. 연극 공연을 준비하면서 도엽 님만의 기록하는 방법이 있으신가요?
소심하게 연극 사진을 찍고 갤러리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유가 되면 아이패드에 카메라를 틀고 몰래 동아리 방에서 새벽에 영상 일기를 남겨요.
4. 가장 좋아하는 공연이 있으신가요? 연극을 보게 된 상황이나 이유와 같은 비하인드가 궁금해요.
뮤지컬 빨래입니다. 20대 초반에 서울로 올라와서 낯선 환경, 낯선 집에서 살면서 서울에 적응하는 동안 일하는 곳에서 치이고 우여곡절 힘든 일들이 참 많았어요. 그날도 똑같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TV를 봤죠. 뮤지컬 빨래 일부 넘버를 부르며 무대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는 홀려서 머릿속에 떠나가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주말 무작정 남는 2층 구석 자리에서 빨래 뮤지컬을 봤어요. 서울 상경으로 고된 주인공들의 이야기나 서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마치 제 상황 같아서 눈물이 났고, 넘버들이 저를 위로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달동네 배경이 아름답게 비쳐서 공연이 끝나고도 눈물을 흘리며 무대를 바라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5. 연극 외에 일상의 도엽 님도 궁금해요. 도엽 님의 취미가 있으신가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시나요?
제가 했을 때 즐거운 행동이 취미가 된다면 이거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저는 생각보다 누굴 위해 무언가 만드는 것을 굉장히 즐기더라고요. 아! 누군가를 위해 ’몰래‘ 선물하는 거요. 선물을 받는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뻐하거나 놀라는 감정들을 상상하고, 그 상상이 그대로 일치할 때와 동시에 선물을 주는 기쁨이 저를 엄청 즐겁게 해요.
1. 연극 공연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 무대에 대한 구상은 전반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나요?
우선 장면의 전환이 많은지 보게 돼요. 전환이 많으면 표현할 것도 많고, 동선이나 소품의 위치들을 신경 쓸 게 많아서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면 무대 표현에 대한 큰 틀이 잡혀요. 이때부터 대본을 한 두어 번 반복해서 읽고, 무대를 표현할 수 있는 요소들과 소품들을 분리해서 형광펜으로 표시해요. 여유가 되면 장면에 대한 분위기나 인물의 감정들도 생각해 보고, 혼자 '이때 이런 연출하면 재밌겠다.' 생각도 하면서 의상이나 조명도 혼자 생각해 봐요. 대본 분석이 끝이 나면, 무대 스케치를 해봅니다. 이후 피드백을 받거나 함께 회의하면서, 최종적인 무대에 점점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2. 무대 제작하면서 듣는 노래,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추천받는 편이에요. 같이 하는 사람이 즐겁도록 상대가 원하는 노래를 함께 들어요.
노래를 추천한다면, 최근에 제가 엄청나게 빠진 노래예요.
하루의 시작 곡이 되어 줄 이츠의 '내일이 오면'입니다.
https://youtu.be/fYLAuQ1gchs?si=XxToDD8W_QakTqXP
3. 교류 대학 가셔서도 극회 활동을 하셨는데, 참여하셨던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연극 제목과 연극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아무래도 아직 끝난 지 한 달도 안 된 공연 ’ 21세기 인간공식’ 일 겁니다. 공연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보다는 제가 극작과 무대 디자인 참여로 진행한 공연이라 더 애틋하게 느껴져서, 아직 저도 어떻게 이 공연을 떠나보내야 하나 생각이 들어요.
21세기 인간공식은 따돌림과 소외감으로 인해 혐오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왕따 범평과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처럼 느껴져 본인이 혐오스러운 렌탈친구 은애가 만나, 서로 각기 다른 인간관계 속에서 둘 사이 '혐오와 혐오는 사랑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벼운 수학 공식에 빗대어 해답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중요한 단어는 사랑이지만, 중요한 부분은 관계라고 생각이 드네요. 연극처럼 인간관계를 혐오와 사랑으로 나눌 수 없을뿐더러 사람이란 게 감정의 실질적인 수가 존재하지 않아 표현과 구분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순간에 '우리는 서로에게 어떠한 존재이어야 할까?'가 핵심인 것 같습니다.
4. 연극 공연을 쉬지 않고 활동하고 계세요. 휴식 기간 없이 활동하면 지치는 날도 많았을 것 같아요. 계속 연극을 하게 되는 원동력이 있을까요?
사람들이 좋아서 힘들어도 계속하게 돼요. 공연이 끝나면 허탈함과 아쉬움은 크게 없어요. 오히려 공연 준비했던 기간들에 비해 연극은 짧은 시간으로 현실감이 없어서 끝났다고 받아들이지 못해요. 그러다 공연이 다 끝나고 다른 공연들을 보게 되면 제 가슴에서 뭔가 벅차오르더라고요. 아, 다시 공연해야겠다. 혹은 이때 이런 연출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 더 잘해보려고 하게 돼요.
1. '나의 롤모델'은?
롤모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교과서적인 답일 수도 있지만, 제 부모님?
전 제가 부모님보다 금전적으로나 생활적인 면으로도 더 잘 살 것 같은 생각이 잘 들지 않아요. 그래서 부모님을 좀 이겨보고 싶네요.
2. 만약 연극을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도엽 님은 무엇을 하고 대학 생활을 보냈을 것 같나요?
아마 가구를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연극을 하지 않았다면, 제 꿈도 글도 없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계속 만들었을 것 같아요. 어떠한 형태로든 제 생각을 표출하는 일은 하고 있었을 겁니다.
3. 연극과 뮤지컬이 영화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혹여 앞의 이유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연극은 정해진 러닝타임 내에 모든 이야기가 완결되어야 하니 고도의 압축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연출과 배우들 간의 철저한 약속에서 벌어지는 해방감은 무대에서 이루어집니다. 환경적인 여건이 되지 않아서 연극, 뮤지컬과 같은 무대 공연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무대 공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현장감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4. 연극은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면 좋을까요?
제 생각에 연극은 다양한 문화생활 중 하나이며, 인문학에 관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연극이더라도 현재 시대와 정서가 비슷하고 잘 맞는 극들이 참 많습니다. 별생각이 없다가도 그런 극들을 보고 나면 지금 일어나는 일, 상황들에 대한 생각들을 자연스레 투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제 나름의 생각들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