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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ug 17. 2021

원더우먼이 될 수 없는 이유

 ‘테트리스(TETRIS)’라는 90년대 한참 유행했던 게임이 있다. 5개의 사각형으로 된 도형의 조합을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아서 꽉 채원 진 줄을 사라지게 하는 게임이다. 위쪽 부분까지 블록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는 유독 게임에는 젬병이었다. 테트리스 역시 호기심도 재미도 선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블록이 한 번 잘못 쌓이면 당황해서 그냥 게임을 포기해버리니 실력이 늘어날 일이 없었다. ‘뭐 굳이 잘할 필요 없잖아.’라며 웃으며 넘겼지만, 그깟 게임의 블록 하나 잘못 쌓았다고 이내 포기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싶다는 소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 완벽한 일 처리, 완벽한 육아, 완벽한 관계...... 우리는 완벽을 꿈꾼다.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자신의 이상적 기준일 뿐 실제로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소를 완벽하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방 구석구석 먼지 하나 없이 완벽하게 청소를 끝냈다. 자신은 완벽하다고 만족하고 있었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은 선반 위 먼지를 발견했다. 이 청소는 완벽한 것일까? 그저 자신의 기준에 맞는 평가일 뿐 남들 생각은 다를 수 있기에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기준이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더 깊은 완벽의 수렁으로 빠져 좌절감까지 생기게 만든다.      


 부모의 관심을 얻기 위해 성적을 올리는 학생은 전교 1등을 해도 행여 1등을 놓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불안하다. 워킹맘은 육아와 가사 노동에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한다. 워킹맘은 말 그대로 일하는 엄마를 말하는 것이지 슈퍼우먼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일과 육아 모두를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는 부담감은 오히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실상 당연하지 않다. 기준도 없고 끝도 없는 완벽함에 눈먼 자들이 자기 비난과 자기혐오를 일삼는다.     

 



 영화 ‘사랑의 레시피’의 주인공 케이트는 완벽주의자를 꿈꾸는 워커홀릭이다. 레스토랑 쉐프인 케이트는 이른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오로지 일과 삶의 원칙만을 생각하며 한 치의 오차 없이 생활한다. 원칙과 완벽을 추구하는 케이트가 남에게 관대할 리 없다. 주방에서나 일상에서 케이트는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상대였다. 

 빡빡한 원칙 속에 살던 케이트의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두 사람을 만나고부터다.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맡게 된 조카 조와 새로 레스토랑에 들어온 부주방장 닉이다. 케이트는 조카 조를 잘 돌보고 싶지만 잘하고 싶다는 완벽한 원칙만 있을 뿐 실상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한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완벽하지 않아도 조와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방에서는 닉이 자유로움과 즉흥성으로도 얼마든지 즐기며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게 엉망이 될 것이라는 케이트의 두려움은 그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인생에도 레시피가 있다면 그대로 적용하며 살아낼 수 있겠지만 삶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인생 레시피가 만들어질 뿐이다. 인생에서 원칙과 완벽만을 추구하는 것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삶은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 유연해야 하며 기대하지도 않았던 행복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원하던 일이 어긋날 때, 갑작스러운 이별, 그토록 오랜 시간 준비했던 시험에 불합격했을 때, 심지어 테트리스의 블록 하나가 맞춰지지 않았을 때도 그것이 삶의 ‘전부’인 양 호들갑을 떨고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우리를 지금 절망하게 하고 완벽함에 금을 가게 한 그것은 삶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완벽하다 생각되는 것은 완벽하지도 않을뿐더러 기준도 막연한 경우가 많다.      




 일과 육아와 가사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워킹맘 도연은 자신이 꿈꾸는 삶과 거리가 먼 현실에 늘 괴롭다.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하고 싶고 아이도 잘 키워내고 싶다. 집 안은 엄마의 손길이 닿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도록 항상 깔끔하길 원한다. 하지만 버겁다. 회사 일이 내 맘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론 아이 하원 시간에 늦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정신없이 바쁜 도연이 완벽이라 생각하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집은 모델 하우스에서나 가능하다. 몸도 마음도 지쳐가지만 그래도 놓아서는 안 될 일들이란 압박감에 오늘도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 자신의 완벽함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고 자족한다. 


 진짜 도연이 추구하는 완벽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도연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준도 없는 완벽을 쫓는 경우를 흔히 만난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완벽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보고서를 어떻게 쓰고 성과를 몇 % 내고, 몇 년 안에 승진해야 마음에 드는 완벽인지 모호하게라도 정해 놓은 기준은 없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청소의 기준조차도 완벽함의 기준이라는 것이 저마다 다르다. 완벽해지고 싶어도 완벽할 수 없는 이유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그래야만 해’라는 당위와 묶이면 강제와 의무로 변질하여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지금 하는 것이 하기 싫다고 느끼면서도 해야만 한다는 당위로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상당 부분은 실상 당연하지 않다. 때로는 놓아주어야 한다. 그것은 일을 안 하거나 육아를 포기하거나 청소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포기가 아니라 유연하게 내려놓기를 하자는 말이다. 기준을 낮춰서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기분을 만끽해 보는 것이다. 


 높게만 쌓는 탑은 금세 무너질 듯 위태롭다. 헌신적인 엄마로 자상한 아내로 착한 며느리로 살면서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게 완벽이라 착각하고 정작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모래 위에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탑을 그저 위로만 쌓아 올리는 것과 같다.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지만 실상 나 하나 없다고 조금 소홀하고 잠시 멈춘다고 해서 세상이 정지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의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한 것이 오직 당신 탓만은 아니며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 무릎에 상처를 입은 것 역시 당신 잘못이 아니다. 모든 것이 나와 연관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원더우먼이나 아이언 맨이 아니다. 따지고 모면 그들도 완벽하지 못하다. 때론 실수하고 넘어지기도 하며 다치기도 한다. 자타공인 영웅들조차 완벽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 홀로 ‘완벽주의자’로 살기를 자처하는 것은 스스로 상처입히는 지름길이다.     

 당신은 절대로 원더우먼이 될 수 없다. 완벽하지 않기에 당신의 인생이 의미 있는 것이고 소박한 선물에도 감동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만으로도 행복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커버 이미지: DC코믹스 영화'원더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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