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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담 Mar 03. 2024

애모(愛慕)


식탁에 놓인 의자는 원래 네 개였다

그중 세 개의 의자는 짓눌리고, 긁히며

이곳저곳에서 피를 토했지만

오직 한 개의 의자만이 처음 모습 그대로이다


오늘도 피 터진 의자 위에 앉아

의자의 상처를 벌리던 그는

처음으로 자신 앞에서 눈물을 떨구는

그녀를 마주한다


눈물은 콧등과 주름을 타고 흘러

그녀 앞에 놓인 콩나물국을 적시고

앙 다문 입에서 울음 섞인 진실이 터져 나와

그에게 상처 입힐까

그녀는 하이얀 밥을 욱여넣는다


진실은 그녀의 입에서 목으로

목에서 심장으로 떨어지며

몸 이곳저곳에 깊고 뜨거운 상처를 남겼음에도

그녀는 침묵한다


그녀의 과거였던 이에 대한

그의 사랑이 침몰하는 것보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여리고 어린 사랑이

사랑의 모순과 마주할까 두려워

그녀는 침묵한다


오지 않는 이를 묵묵히 기다리던

빈 의자 위로 먼지가 내려앉는다


그녀 어깨 위로 먼지가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녀는 서서히 침몰한다



작가의 말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지금은 버리고 없는 그 시절 대리석 식탁에 앉아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그날의 메뉴는 콩나물국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4개의 의자 중 하나는 비워둔 채 국에 밥을 말아먹으려는데 엄마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혼을 한다고 말하였다.


별다른 사유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나중에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데리러 왔던 아버지였던 사람의 차에서 분홍색 구두를 발견했다. 우리 집에선 본 적도 없는 구두였고, 엄마는 구두를 신지도 않았다.

나는 그날 엄마가 왜 우리에게 아무 설명을 안 해줬는지 알게 되었다.

아직 사랑이라는 걸 잘 모르던 내가 아버지라는 사람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 사랑을 하지도 못한 채 세상을 믿지 못하며 살아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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