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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Mar 11. 2021

09. 이름 없는배우

우리는 모 부대의 낡은 막사에서 잠만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곧장 남산 중턱에 있는 연습실로 향했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일정이 끝났다. 주말도 예외 없었다. 일반적인 군생활이었다면 일과시간이 끝난 후 개인정비를 하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우리는 큰 공연을 앞둔 배우들이었다. 또한 철창으로 둘러싼 부대가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 종일 갇혀있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연습이 길어질수록 몸은 지쳐갔지만 그래도 무대에서 최상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땀을 흘렸다. 연습을 하다 렌즈를 잃어버렸다. 그 핑계로 외출을 노려봤지만 불발되었다. 결국 허용된 구역 내 면회가 가능해졌다. 주말 점심시간에 아버지가 렌즈를 갖고 오기로 하셨다.  그날은 여우비가 내린 날이었다.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그날의 날씨는 매우 화장했지만 얄궂게 비가 내리고 지나갔다. 아버지의 어깨는 젖어 있었다. 그날따라 차도 없이 남산 중턱까지 걸어 올라오며 비를 맞은 것이다. 왜 우산도 없이 왔냐며, 뭐하러 힘들게 여기까지 걸어왔냐며 툴툴댔다. 아버지는 별 대꾸 없이 나에게 렌즈를 내밀었다. 그냥 가신다는 걸 붙잡아 어색하게 둘이 밥을 먹었다. 말없이 밥을 다 먹고 나니 정적이 흘렀다. 나도 이렇게 연습실로 들어가긴 싫어서 괜히 미적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내게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기자간담회와 연습실 공개 기사 사진들이었다. 그중 내가 나온 사진들을 저장했던 것이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나를 향한 플래시와 관심이 아니라는 이유로 뒤로 숨기 바빴는데. 움츠리고 숨기 바빴는데.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움이었구나. 부끄러웠다. 수 백, 수 천 개의 기사를 뒤지며 내가 나온 사진들을 찾았을 모습을 떠올리니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여기에 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꿈을 향한 첫걸음이라며 장 못 들었던 밤, 걱정에 내쉬던 한숨, 오디션부터 흘려온 땀, 친구들의 응원, 다 모두 나를 격려하고 있는데 정작 나만. 나만.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조금 더 진심을 담아 무대에 설 수 있게, 내 사람들은 물론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공연에 참여하는 수많은 배우들 중 이름이 있는 배우는 몇 없다. 앙상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배우들은 넓은 무대를 자신만의 존재감으로 채운다. 캐릭터의 이름이 없다고 해서 서사가 없는 건 아니다. 각자의 상황을 안고 약속한 연기로 무대 위에서 숨을 쉰다. 나 역시 이름 없는 많은 배우 중 하나였다. 나는 배를 조종하는 선원이었다가 전쟁을 피해 떠나는 피난민이었고 우리나라 군인이었다가 적군이 되어 죽기도 했다. 멀리 있는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눈빛으로 호흡으로 매 순간을 표현했다. 


그 날은 첫 공연까지 3일 정도 남은 연습 시간이었다. 보통 이 때는 런(run)을 돈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을 이어가며 실제 흐름을 몸에 익힌다. 두 주인공이 감정적으로 격하게 부딪치는 장면에서 총 연출 감독님은 갑자기 연습을 중단시켰다.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들 얼음이 된 상태로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서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거리시고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셨다. 


 “너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니?” 

몇 개월 동안 연습을 하며 직접 대화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저는 노쇠한 어머니를 보필하는 아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서는 이어서 내게 물으셨다. 

“적군이 어머니를 밀쳤을 때 너는 어떤 감정이 드니?”

공기가 순간적으로 무거워졌다. 그리고 모두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슬프고 화가 나고 대들고 싶을 것 같습니다.”

“한 번 해볼 수 있겠니?”

모두의 눈빛은 다시 한번 나에게 향했다. 쉽사리 말이 나오질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더 많은 단서를 내게 던지셨다. 


“넌 아직 덜 큰 어른이다. 남들보다 상황에 대한 인지는 늦을지 몰라도 어머니를 끔찍하게 위하는 효자야. 힘들고 지치는 피난길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고 있어. 그런데 적군의 수장이 어머니를 밀치며 함부로 대해. 시작해볼까?”

식은땀이 났다. 상황이 주어지자 머리는 더 복잡해지고 몸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심장은 뛰고 숨을 쉬지 못할 만큼 호흡은 가빠졌다. 나는 단번에 머릿속의 생각을 표현할 만큼 준비된 배우가 아니었고 영리한 배우가 아니었다. 잠깐 동안의 휴식이 주어졌다. 동료 배우들은 내게 이건 기회라며,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줬다. 


그래. 이건 분명한 기회이다.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 답은 없어. 그냥 느끼는 대로 하면 돼. 해보자. 한 발짝 나아가 보자.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떠듬거리며 연기를 이어갔다. 어쩌면 연기라기보다는 내 안에서 나를 지우는 연습이었다. 차분하게 내가 느끼는 것들을 꺼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감을 들키지 않게 감추면서 어머니를 지키려는 아들이 되었다. 


장면이 끝나고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울음을 삼키는 소리로 깨졌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건 내 연기에 대한 감동이 아니었다. 철저히 계산된 상황이 주는 슬픔이 있었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 속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결국 그 신은 통과가 되었고 나의 배역은 이름이 생겼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관객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본 공연에서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으로 기억되었다. 뿌듯했다. 뭔가 해냈다는 기분에 나 스스로가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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