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뼛거리며 도착한 그곳에는 나를 포함해 40명의 배우가 있었다. 30명의 스태프가 있었고 또한 30명의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그야말로 100여 명이 넘는 대인원이었다. 간략하게 브리핑을 진행했다. 본 공연은 국립극장 대극장을 비롯하여 전국 대형 극장에서 40회 이상 공연할 예정이며 향후 미국 무대 진출까지 큰 프로젝트였다. 딱 봐도 이번 공연 성패에 많은 부분이 달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대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흥분한 우리들의 얼굴에 잠시 결연함이 스쳤다. 우리의 신분은 배우이기 이전에 군인임을 명심하며 올바른 언행으로 품위 유지할 것을 미션으로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명의 중대장과 한 명의 소대장이 혈기왕성한 군인 배우들을 통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군번을 기준으로 분대장을 선출했지만 족보는 꼬일 대로 꼬여있었다. 후임이지만 학교 선배가 있는 경우도 있었고 입시 학원 선생님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여기가 일반 군대였다면 사회에서의 관계보다 군번으로 서열이 정리되었겠지만 여기는 특수했다. 때문에 중대장 지시 하에 나이를 기준으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그렇다 보니 소대장이나 중대장 역시 나이나 짬에 밀려 애매한 위치가 되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아마도 이때부터이지 않았을까. 내가 이 바닥에서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건. 이미 1년 넘게 군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어리둥절한 일이었지만 막내 기수가 아니라는 게 어디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딱 중간 나이였던 우리는 모든 궂은일을 떠맡았다. 형들은 자주 우리를 집합시켰고 동생들을 챙기지 않는다고 혼을 냈다. 군번으로 보면 까마득한 후임이, 아직 전역할 날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남은 사람이 형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갈궜다. 정말이지 여기는 그저 똑같은 정글이구나란 생각에 실망스럽기도 했다.
작은 배역이라도 얻기 위해서 경쟁은 필수였다. 누군가의 쟁취는 누군가의 상실이 되었다. 연출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배우로서 어필은 꼭 필요했다. 주연배우들 뒤에서 무대를 채우며 발바닥이 닳도록 뛰고 있는 앙상블 배우들에게 한 줄의 대사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니까. 점수로 줄을 세우는 시험 성적과는 별개로 연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잘하고 못한다를 판가름한다. 때로는 이유가 붙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느낌으로 정리된다. 스스로를 돌아볼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실체 없는 벽에 부딪치며 말 못 할 스트레스는 점점 커졌다.
어릴 적 마주한 대부분의 문제에는 답이 있었다. 시험을 보면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해답이 있었지만 어른이 될수록 답이 없는 문제를 마주칠 때가 많았다. 연기도 그러했다. 알 수 있는 답이 없었다. 난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데 그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좌절했다. 바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나의 노력이 관객에게 전달이 되고 스텝들이 알아줄 줄 알았다. 이 세상에 그런 판타지는 없었다. 한 줄의 대사를 얻기 위해 다른 친구들과 경쟁을 하면서도 대체 뭘 어떻게 잘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손을 뻗어 얻어낸 결과였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같이 꾼 꿈의 자리였다. 난 버텨야만 했다.
원래 부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나 내색할 수 없었다. 내가 원했고 내가 선택했고 내가 성취한 자리의 무대에서 낙오하고 벗어나고 도망치고 싶다는 말은 사치였다. 악착같이 웃는 표정을 지었고 행복한 것만, 행복한 것만 생각했다. 이렇게나 많은 인원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당대 톱스타이자 지금도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한 두 주연배우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그들은 프로였다. 그런 모습 때문에 그렇게나 많은 팬들이 늘 극장 앞에 붐볐던 거겠지.
당시 언론에서도 꽤나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기에 제작 발표회와 프레스콜도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최고의 스타이자 군인 신분이 된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국내외 언론이 연습실로 모였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런 생경한 분위기 속에서 다른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고 더 자신을 내보이려고 할 때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더 작게 움츠러들었다. 그 관심이 내 것이 아니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공연의 일부였고 관심 또한 나의 것이기도 했는데 왜 그렇게 스스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었는지 모르겠다. 철저하게 나를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조금은 내려놓고 그 순간을 즐겨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오만이었다. 나의 때가 올 것이라는 확신과 착각. 이 분위기에 취해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 가질 수 없는 것,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였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한 발짝 비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