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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상 Jan 16. 2021

11. 나만 행복한 건 행복이 아니다

다 같이 빛나는 시간이 되길


잠깐 동안 여행을 떠났던 사람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전역까지 나에게 남은 시간은 한 달 그리고 며칠뿐. 부대로 돌아오니 처음 보는 후임이 1/3, 어정쩡한 사이의 후임이 1/3. 그리고 이미 공고한 관계가 형성된 친구들이 1/3이었다. 오자마자 열외 되었던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 행군부터 참여했는데 간부들을 포함해 쏟아지는 관심에 유명세를 좀 치렀다. 뮤지컬 부대 생활은 어땠고 연예인들은 실물이 어땠으며 무슨 대화를 나눴고 따위의 이야기들이었다.


비록 스스로는 작은 역할이라 생각했지만 부대 내에서는 뮤지컬 오디션에 붙어 서울에 다녀온 스타였다. 이제는 꿈에서 깨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매일 구박만 받던 동기들은 이제 분대장 완장을 차고 중대 내 최고참이 되어 있었다. 내 마음은 아직 그게 아닌데 잘 헤어질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가끔 우리는 놓아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알면서도 더 꼭 쥐는 경우가 있다. 2년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별 것도 아닌 일로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혼을 냈다. 마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생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쓸데없는 걱정에 괜한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임이 그랬듯 그들 없이도 우리는 남은 자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지키며 잘 지내왔다. 그리고 우리가 없더라도 시간을 갈 것이고 그들은 그들끼리의 방식대로 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누군가에게는 차고 넘칠 만큼 과할 수도 있다는 점. 과거의 내가 그렇게 배웠고 당했기 때문에 되갚아줘야 한다는 미운 마음을 갖지 않도록 동기들을 설득했다. 우리가 함께 보낼 이 마지막 장면들을 화내고 혼내고 걱정하며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더 즐거운 장면들을 많이 만들자고 말이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선하고 옳은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6개월이라는 부재가 주는 공백을 나는 무엇으로든 채우고 싶었고 판을 크게 뒤엎기보다는 사소한 부분부터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동기들을 자주 소집했다. 그리고 우리끼리 쏘다녔다. 어차피 말년에 생활관에 있어봤자 아이들이 불편해한다. 일과시간에도 일과가 끝난 정비 시간에도 여기저기 우리끼리 다녔다. 그리고 소외받는 친구들을 살폈다. 군대도 똑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그 안에서 무리가 갈린다. 스무 살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적어도 나는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빛나는 별이 가슴속에 있다고 믿었기에 그런 믿음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었다. 사소한 실수 또는 오해로 낙인이 찍혀버린 이미지가 있다면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실수와 오해를 절대 자책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심을 기울였다. 얼마 남지 않은 군생활 동안 내가 나에게 내린 미션이었다.




하나라는 것은 각자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었을 때 이뤄진다고 믿는다. 무조건적인 단합에 대한 강요는 반발을 일으키고 그 안에서 개인은 지쳐간다. 그러나 개개인의 특별함을 인정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이 빛나는 혹은 빛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순간 그 단체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다. 누구보다 빛나야 할 시기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갇혀있다. 이 시간을 원망하고 분노하며 보내게 된다면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나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은 어두운 장면들로 기억이 될 것이다.


살아간다는 게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왕이면 좋은 기억들로 채우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무겁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장면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더 웃고 즐거웠으면 했다. 매 순간 여러 가지 이벤트로 아이들과 함께 웃는 시간들을 많이 만들었다. 학교에서 그렇게나 적응하지 못했던 내가 조금씩 광대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야간 경계 근무를 나가기 위해 미리 옷을 챙겨 입고서는 행정반 사무실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복귀 후 처음 보는 1/3 무리 중 하나였던 까마득한 후임이 하나 있었는데 학교 선생님 출신이라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았다. 생활관이 달라서 말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나를 넌지시 부르더니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 병장님. 병장님이 돌아오고 중대 분위기가 달라져서 참 감사합니다. 경직되고 무섭기만 했던 분위기가 마치 봄이 온 것처럼 따뜻하고 가끔은 즐겁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


순간적으로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머쓱하게 짧은 머리를 긁적였다.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어색하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내가 어색해져서 도망치듯 나와 근무를 서기 위해 깜깜한 길을 걷고 있는데 웃음이 피식 나왔다.



11. 나만 행복한 건 행복이 아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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