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이를 꿈꾸는 그대에게, 아홉번째 이야기
브런치에서 책을 내준다고 해서 어떻게든 열 편은 써보려고 버둥거렸으나 한달에 한번 글을 쓰기도 버거운채로 가을이 지나갔다. 일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새로운 일거리가 계속해서 쓰나미처럼 밀려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90년생 신규직원이 우리과에 발령받아 첫출근을 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많이 부족하니 어여삐 여겨달라고 한다. 국세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축하해야할 일이나 어쩐지 안쓰러움이 먼저 밀려온다. 저 친구는 국세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처우는 어떤지 알고 이 곳에 발을 디뎠을까.
오늘은 '국세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부디 공무원을 꿈꾸는 그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세무서 환경은 보시다시피 80년대 수준이다. )
공무원의 급여는 직급과 호봉에 따라 기본급이 정해진다. 9급 1호봉은 2015년 현재 1,282,800원. 여기에 정액급식비와 직급보조비, 가족수당, 시간외수당 등이 추가된다. 1월과 7월에는 기본급의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정근수당, 설날과 추석에는 명절휴가비가 지급된다. 수당이 없는 달에 9급 신규는 대략 150만 원 내외의 세전급여를 받고, 초과근무를 많이 하면 180만 원 가량 받을 수 있다. 넉넉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 한몸 건사하기에 부족한 월급은 아닐뿐더러 호봉이 올라가면 형편이 점점 나아진다.
게다가 출장여비와 부과징수비 항목 등의 수당이 약간씩 지급되어 월급 계좌와 별도로 수령하여 쌈짓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내 담당구역에 인쇄업체가 많은데 개업한지 몇 십년 된 업체조차도 직원 월급이 150만 원을 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9급 신규직원의 월급은 노동강도에 비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으로 정년보장과 공무원 연금을 꼽을 수 있는데 요즘 입사하는 직원들에게는 딴나라 얘기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2010년에 개정된 내용을 보면 급여산정 기준보수가 기준소득 월액(수당, 성과상여금 등을 제외한 기본급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인데다가 연금지급 개시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연장되었고 유족연금도 70%에서 60%로 인하되었다. 즉, 2010년 이후에 입사하는 공무원은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물론 용돈수준의 국민연금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요즘 연금받고 계시는 퇴직공무원들과는 차원이 다른 연금이 될 듯하다. 그나마도 많다며 현정부는 기필코 개혁을 하겠다고 하니 연금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그외에 복지포인트가 1년에 50여만 원 상당(물론 직급마다 다르다) 지급된다. 이중 절반 가량은 단체보험가입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문화, 레저, 건강 등등의 항목에 사용하고 청구하면 된다. 아무래도 단체보험이다보니 가성비가 괜찮다.
사기업과 비교해볼때 국세공무원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2년마다 있는 인사이동을 꼽을 수 있다. 꼴통같은 팀장을 만나거나 4차원 동료와 함께 일하게 되더라도 2년만 견디면 다른 세무서로 이동할 수 있으니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준다. (인사이동 기간이 3년으로 개정되었다는 썰이 있으나 아직 구체적 지침이 시달되지는 않았다.)
동일 지방청 내에서 3개 세무서를 지원하면 최대한 희망사항을 반영해서 발령을 낸다. 가족이 다른 지역에 떨어져 살고 있다든지 뭔가 고충사항이 있으면 다른 지역 세무서로도 갈 수 있으니 이론상으로는 전국을 유랑하며 근무를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세무서간 거리가 먼 중부청의 경우 인사이동때마다 집을 옮기기도 어렵고 출퇴근 거리가 멀어져 애로사항을 겪기도 한다. 게다가 본청이 세종시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상당수의 본청 직원들이 3대가 덕을 쌓아야만 가능하다는 주말 부부 신세가 되었다. 여튼 주기적인 인사이동은 회사생활에 활력을 주기도 하고 가족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공무원 복무규정을 살펴보면 휴가에는 연가, 병가, 공가, 특별휴가가 있다. 연가는 재직기간별로 다른데 신규직원은 발령받은지 3개월이 지나면 연가 3일이 생기고 1년이 지나면 9일이 된다. 이후 매년 2-3일씩 늘어서 재직기간이 6년 이상이 되면 21일의 연가를 사용할 수 있다. 전년도에 병가를 내지 않았다면 보너스 1일이 추가되어 1년에 최장 22일의 연가가 주어진다.
그러나 연가일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가를 마음껏 쓸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매달 연가를 1일씩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고, 1년에 최소 11일 이상 연가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조직 성과평가 항목에 두고 있어서 연가를 쓰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물론 관리자가 직원들이 연가 쓰는 것을 싫어하면 좀 눈치가 보일 수 있거니와 연가를 길게 다녀오는 동안 급한 일들을 나대신 처리해야 할 동료직원들에게 미안할 수도 있다.
주어진 연가를 다 사용하지 않으면 연말에 연가보상비를 받게 되는데 직급이 높으면 연가보상비가 꽤나 쏠쏠해서 그런지 윗분들은 왠만해선 연가를 안쓰려고 하신다. 이 또한 월급계좌와 별도로 수령해서 쌈짓돈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혹시 배우자가 공무원이라면 이 정도 쌈짓돈은 모른척 해주는 아량을 베풀어주시길 바란다. 후배들에게 술한잔 커피 한잔 정도는 사줄 수 있어야 가오가 살지 않겠는가. )
공무원이어서 가장 좋은 점은 당당하게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같다. 만8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여성공무원은 3년, 남성공무원은 1년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애매한 시점에 육아휴직을 쓰는 바람에 승진이 좀 늦어질 수는 있겠으나 육아휴직을 쓴다고 책상을 빼는 일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요즘은 남자 직원들도 육아휴직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 외에도 본인이 자비로 해외유학을 가게 되면 3년 이내(2년 연장 가능), 외국에서 근무하거나 유학하는 배우자를 동반하게 된 때 3년 이내(2년 연장 가능) 휴직할 수 있고 장기간 요양을 요하는 부모, 배우자, 자녀, 배우자의 부모의 간호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1년 이내(총 3년) 휴직이 가능하다. 사기업에서는 꿈도 못꿀 일이다.
공식적인 업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이렇게 근무하는 부서는 민원봉사실 밖에 없는 것 같다. 세무서마다 부서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야근이 잦은 편이고, 특히 세무서 개인납세과는 업무시간 중에 민원전화도 많이 오고 민원인도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업무처리를 할 여유가 없어서 오후 6시 이후에 전화가 끊길 무렵부터 밀린 일들을 처리할 수가 있다. 다행히도 전산이 밤 10시에는 끊기기 때문에 10시에는 집에 갈 수 있다.(국세청은 별도의 폐쇄 전산망을 사용한다.)
일이 많은 때에는 토요일에도 출근해서 일을 하고, 전산테스트처럼 전 직원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할 일이 있을 때에는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ㅠㅠ)
본부나 지방청은 세무서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오전 8시 이전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나날이 대부분인데다가 국회 시즌이나 국정감사 시즌에는 종종 사무실에서 밤을 새기도 한다.
9시 출근 6시 퇴근의 대명사인줄 알았던 공무원의 실상이 알고보면 이러하다.
국세청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소위 압정형 구조로 인한 인사 적체이다. 국세공무원 2만 명 중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9급부터 6급까지의 인원이 18,500여 명으로 92% 이상을 차지하고 5급부터 청장님까지 관리자 인원이 1,500명 남짓이다. 정부 조직 중에서 승진이 늦기로 악명높은데, 다른 부처에서는 근속승진을 하면 뭔가 문제가 있거나 사고를 친게 아닌가 하는데 국세청에서는 상당수가 근속승진을 하게 된다.
(피라미드형만 되어도 좋겠다.)
9급에서 8급 승진할 때 최소 승진 연한은 1년 6개월이지만 세무서에서는 실제로 관운을 타고 나면 2년 정도, 그렇지 않으면 6년만에 근속승진을 한다.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하는데 보통 10년 이상 걸리므로 9급으로 입사한 직원이 5급 과장님이 되기까지 30년이 훌쩍 넘는다.
사실 6급이나 9급이나 개미같이 일하는 건 똑같으니 승진 따위에 초연하여 독야청청 살 수도 있겠으나 함께 어울리던 동기들이 너도 나도 승진해서 저만치 앞에 있으면 대개는 배가 아프기 마련이다. 승진을 하면 월급이 매달 20여만 원 정도 뛴다는 점과 기분이 좋아지는 것 말고는 별게 없는데 너도 나도 승진 레이스를 뛰다보니 어느덧 나도 그 숨막히는 레이스에 동참하게 된다.
국세공무원의 장점 중 하나로 '세무전문가'를 꼽을 수 있다. 예전에는 사무관으로 몇 년 이상 근무하면 세무사 자격증이 자동으로 나왔는데 위헌 판결이 나서 요즘 사무관들은 혜택이 없다. 대신 국세공무원으로 10년 이상 근무하면 세무사 시험 1차 시험을 면제받고 20년 이상 근무하면 2차 시험 세법학 과목을 면제받는다. 그래서 10년차 이상 되시는 중년의 남자 직원분들은 세무사 시험 공부를 많이 하신다. 갑갑한 공무원 조직에서 실적으로 쪼이고 민원인에 시달리느니 세무사로 일해서 집에 그정도 봉급 못갖다주겠냐는 마음이시란다. 1년에 700명씩 새로운 세무사가 배출되고 퇴직하시는 서장님 등등도 개업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그쪽 업계 경쟁이 치열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실무를 10년 이상 한 공무원 출신이 경력과 인맥 측면에서 일반 합격생보다는 유리하다고 하겠다.
세무사 자격이 없더라도 오랫동안 근무하신 분들은 세무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거나 일반 회사 경리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국제조세나 조사국 쪽으로 근무 경력이 있으면 세무법인이나 회계법인에서 억대 연봉의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고도 하니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퇴직 이후 전문성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고 하겠다.
월급도 못받고 먼지 풀풀 날리는 지하실에서 여성복 디자이너로 일했던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 국세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매우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뜻하지 않게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지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는 이 앞에 쓴 글들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다행히도 적성에 잘 맞았고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좋은 직업인지는 잘 모르겠다. 과도한 업무량과 진상 민원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고, 실적으로 매우 쪼임받는 나날이 많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국세공무원이라는 일이 항상 좋을 수만도 없고 항상 나쁘지만도 않은 것 같다. 혼이 쏙빠지도록 스트레스 받는 날도 지나가고 성과가 좋아서 신나는 날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국세공무원으로서의 내 인생도 차곡차곡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