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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미리내 Oct 30. 2020

수동의 마력

feat. 20년 , 20만 킬로 

새벽 수영을 다니기 위해 급하게 운전면허가 필요했다.

물면허의 막차에 올라타기 위해 유툽으로 기능을 배우고( 이 물면허 후기는 나중을 기약한다) 3일 도로연수 후 면허를 취득한 긴박한 일주일을 보낸 후 , 공식적으로 도로 위 1종 면허 취득자가 되었다.


우리 집 차는(이라고 쓰고 엄마 차라고 읽는다) 2002년 태풍 루사로 가을 전국이 물난리가 난 해 끄트머리에 장만한 스틱 승용차다.  아파트 1층 입구까지 빗물이 들이차던 태풍을 피해 샀다고 좋아했으나, 다음 해 출고 반년만에 태풍 매미에 앞 범퍼가 산사태로 묻히는 사건을 겪었고, 다행히  20년, 20만 키로 이상을 무사고로 잘 버텨준 충직한 녀석이다.



이제는 트럭도 오토로 출시되는, 오히려 스틱을 옵션으로 넣어야 할 정도로 희귀 템이 된 시대다. 대리운전을 부를라치면 스틱 차량임을 필히 알려야 하고, 붐비는 식당에 차 열쇠를 맡기고 식사하기에도 편치 않고 왼쪽 발을 끊임없이 까딱 거리며 변속을 해야 해서 장거리 운전엔 발등이 뽀개질 것 같이 피곤하지만 , 그럼에도 조금 더 운전할 맛이 나는 수동만의 매력이 있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 변속을 할 때  착 맞아 들어가는 손맛. 이 손맛을 알기까지 한참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20년 이상 한 사람의 손길을 받은 수동차는 예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 오로지 목숨을 구해준 친구만 등을 허락한 야생마와 같다. 클러치를 밟고 떼는 미묘한 시간차,  발을 떼는 강도와 기어 변속의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여지없이 시동을 꺼버리고 드러누워 버리는 까탈스러움. 면허를 딴 후 처음 차를 몰던 두 달 동안(그 후로도 사실 자주 그랬다) 멈췄다 출발해야 하는 순간이면 으레 시동을 꺼트려먹어  숫제 미리 비상등을 켜놓고 출발을 시도했다. (-초보운전 후진 주의- 차 뒤창에 손글씨는 필수였다.)



각도가 5도 이상 되는 경사에 차가 멈추는 순간, 체감상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압박감을 느끼며 내 심박수는 심부전을 향해 치달렸다.( 이때 얻은 쫄보명이 요즘도 간간히 튀어나온다.) 평지에 소급하는 경사지만, 수평을 벗어난 평지에서 멈췄다 재출발을 할 때면 차가 뒤로 조금 밀리는데 사이드로 살펴본 뒤차의 간격은 항상 깻잎만큼의 차이를 두고 날 채근하는 듯 보여 항상 보험회사 번호를 되뇌며 풀 액셀을 밟게 된다.



시속 20km까지는 1단, 40km 까지는 2당, 60km까지 3단, 80km까지 4단  이후 5단.

수동의 변속 타이밍이다. 1단에서 2단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단순한 조작이지만, 2단에서 3단으로의 이동이 문제다. 일단 2단에서 직선 위로 올리며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중립을 거쳐 포크의 두 번째 날을 향해 상단 오른쪽 위로 올려야 한다.



이후 4단은 직선 아래, 그리고 5단은 2단에서 3단으로의 변속 과정과 같은 방식을 쓴다. 이로써 포크 날의 세 번째 날까지 다 사용하다 속도를 줄일 타이밍이 되면  브레이크 전에 일단 다시 4단으로 감속을 해야 하는데 이때 자칫하면 기어를 통으로 바꿔먹을 사고를 치기 딱 좋은 순간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5단에서 직진 아래로 이동하면 후진기어의 자리다. 실제로 딱 한번... 5단에서 4단으로 이동하다 후진기어를 잘못 넣었는데 말 그대로 톱니바퀴 갈리는 소리를 경험한다. 변속기 가격을 생각하면 마치 뼈가 갈리는 소리랄까..... (엄마 미안해... 요새 기어가 이상하댔지.. 그거 내가 그랬어)



여하튼 2단에서 3단은 도로에 나온 이상  무조건 거쳐야 하는 자리라 손에 익기도 하고 자주 사용해서 손만 대면 스윽,, 기어가 알아서 움직이는 부드러움이 느껴지는데, 4단에서 5단은 고속도로가 아닌 한 시내주행에서는 잘 사용할 수 없어 뻑뻑하고 손이 이끄는 대로 정직하게 기어가 들어가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시내 대부분 지역은 제한속도 50km이다. 운전보다 보행을 더 많이 하는 입장에서 슈마허처럼 내달리는 차를 볼 때마다  모나코에서 F1에 나가서 국위선양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이러고 계시니 재능 낭비다 싶어 참 동정이 인다. 맞다.. 명백히 비꼬는 거다.) 



 클러치 역시  정성을 들여 끝까지 꾸욱 밟아줘야 부드럽게 기어가 들어간다. 이 꾸욱 밟는 게 생각보다 지키기 어려운 일이라  내가 운전한 후 엄마가 운전을 하면 차가 잠시 태업을 하는 사태를 맞는다. 마치 엉망인 사람에게 자기를 맡긴 투정을 하듯 툴툴대는 모양새니 가끔은 차에게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다. 마치 고자질하는 얄미운 형제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예민하지만 운전의 멋을 알려준 우리 집 차가 노년에 접어들어 골골대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아직 차를 바꿀 정도의 큰 수리는 없었지만 에어컨을 고치고, 배터리를 교체하고, 무슨 퓨즈가 닳았다고 하고,, 오늘도 잠시 정비소에 다녀왔다. 간간히 수리를 하며 계속 쓸 수 있는 기한이 길어야 이삼 년 인 듯 싶어 안타까움과 조바심이 생긴다. 새 차에 대한 로망과 수동을 더 이상 몰 수 없다는 아쉬움 사이에서 아쉬움이 더 큰 지분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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