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준
무언가를 살 땐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옷을 살 땐 단순히 겉 포장이나 감성을 보는 것보다는 재료나 마감 등의 옷 자체의 질을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옷을 사면서 배운 나만의 기준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는 기준이 있을까? 중차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멈출지 나아갈지를 정할 때, 취할지 포기할지를 정할 때와 같은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삶의 숙제 속에 방향을 알려줄 나침반 같은 것 말이다.
최근에 꽤 뚜렷한 한 가지 기준이 생겼다. 바로 가족이다.
“가족들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어요. 고생한 가족들을 생각하면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해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죄스러웠어요.”
잦은 음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근 6년간 술을 끊은 집단원의 말이다. 술이 생활이 되면 술은 몸을 헤집어 놓는다. 술이 생활 자체가 되도록 몸을 바꾸어 놓는다. 술로 채워진 삶을 매섭게 몰아세운 집단원의 기준이 가족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도 작은 소용돌이가 일었다.
“다 그만두고 내려올까?”
‘가족을 생각하면 나만 포기하면 된다. 직장이야 다시 생기겠지. 나 없을 때 옆지기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 모두 여기에 있는데, 나 때문에 다들 염려하시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낳은 결론을 저녁에 누워 옆지기에게 말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처음은 아니었다. 과거에 했을 때보다 생각의 색이 선명해져 한층 의지가 더 묻어있었다.
“지아가 위쪽으로 올라가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 것들을 접할 기회는
위쪽이 많은 것 같아.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뭔가 배우고 싶을 때 여기 있을 때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잖아. “
옆지기는 나와 생각이 다소 달랐다. 나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기준이 달랐다. 따지자면 나는 옆지기를 옆지기는 우리의 미래를 더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하던 중 나는 내 색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홀로 지아를 키우는 옆지기의 무게를 짐작하다 세운 결정이었지만, 옆지기는 나와 자신 그리고 지아까지 포함한 모두를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걱정과 근심들을. 그리규 그날 저녁엔 꽤나 잠이 잘 왔다. 내린 결론은 뚜렷하진 않았지만 옆지기에게 마음을 나눈 덕분이라 생각한다. 공명할 수 있다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