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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슥슥 Jun 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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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 경산역 가나요? “

“네.”


집에서 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며 질문한다.  차를 가지고 다니다 보면 버스 노선은 다른 세상이야기가 된다.


네이버 지도를 통해 대중교통 경로를 알아보았지만, 버스를 오르며 기어이 기사님께 확인 질문까지 던지게 된다. 어느 순간 습관이 된 것 같다.


확인하지 않으면 마치 기사님이 버스 노선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갈 것 같다. 혹은 같은 번호를 지니고 있지만 노선이 경산역 방면이 아닌 새로운 버스가 생겼을 것 같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가정(assumption)들이라 쓰면서도 헛웃음이 난다. 내 이런 가정들 속에는 한 가지의 큰 걱정 ‘기차 놓치면 정말 큰일 난다!’이 숨어있다.


큰 일을 앞두고는 확인하는 일이 많아진다. 최근 메이저 대학의 특별강의를 요청받았다. 일상 속에 생긴 특별한 이벤트였다. 강의 며칠 전부터 강의 시간과 강의 장소를 확인했다. 최소 10번은 넘게 강의 장소에 언제, 어떻게 도착할 수 있을지 그려봤던 것 같다.


강의자료도 확인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의 자료는 ‘내가 쓴 메일함’에 저장되었으며, 내가 쓰는 사내 메신저의 첨부파일로도 저장되었으며, 심지어 출력본도 뽑으려 했으나 이것 까지는 오버(?) 인 것 같아 참았다. 강의 자료를 다운로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그렸던 것이다.


‘망치기 싫다.’

‘실수하기 싫다.’

‘잘하고 싶다.’

‘프로처럼 보이고 싶다.’


마음들이 나를 가만히 두질 않는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조바심 내는 나를 돌이켜보면 오줌 마려운 강아지 마냥 긴장하는 것 같다.


좀 더 초연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아마 삶의 연륜이 더 쌓이면 위 같은 걱정과 조바심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강의를 마치고 난 후에 강의를 주관해 주신 분이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 강의 좋았습니다.”


이 강의를 위해 기울여 온 노력들이 빛나게 만들어준 최고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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