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쭈 보여요

by 사탕볼

맑은 날씨에 등교했는데 1교시에 보슬비가 내리고 점심 먹을 때 폭우가 쏟아지는 희한한 날씨.

하늘도 무심하시지... 날씨라도 좋아야 학교에 오고 싶을 텐데...


학교가 공사 중이라 교실이 있는 건물에서 급식소까지 천막을 설치해 우천로를 대신하고 있다.

천막이다 보니 건물과 간격이 5cm 정도 떨어져 설치되어 있다. 보슬보슬 비가 올 때는 천막으로도 충분한데 오늘같이 폭우가 쏟아붓는 날엔 천막 끝으로 그 위에 떨어지는 빗물이 쏟아져 내려 폭포처럼 물이 떨어진다.

"선생님, 어떻게 지나가요?"

"잠깐만 있어봐."

근처에 장우산을 하나 펼쳐서 쏟아지는 물을 막으니 우산을 따라 물이 줄줄줄 흐른다.

"우산 아래로 조심해서 지나가."

하나씩 하나씩 건네주는데 아이들이 점점 내게서 떨어져서 건너간다.

아이들이 안 젖게 우산을 좀 멀리 뒀더니

세상에. 물이 내 등을 타고 흐른다. 비가 똑똑 떨어지는 게 아니라 양동이로 들이붓는 수준이다.

처음 물 맞았을 때 이미 등부터 엉덩이까지 다 젖어서 이제 피해봐야 소용도 없다.

먼저 건너가서 친구들이 우산 속을 지나오는 것을 보던 아이가 깜짝 놀란다.

"선생님 옷 다 젖었다!"

하필 옷이 젖은 티가 많이 나는 회색 티셔츠다.

선생님 괜찮냐고 아이들이 난리다. 괜찮으니까 줄을 서라고 겨우 달래서 1학년 아이들을 몰고 급식소로 간다.

"우리 선생님 어떡해..."

누가 들으면 큰 병이라도 난 줄.

"선생님, 빤쭈 다 보여요."

뭐라고??? 위에 옷만 생각하고 아래를 생각 못했다. 오늘 나의 하의는 연한 색 얇은 여름 청바지다.

오늘 팬티를 뭐 입었지? 내 팬티들은 대부분 무난하다.... 다행히....

축축한 엉덩이가 더 찝찝하다.

"3반 뒤에 따라온다."

"선생님, 뒤돌아서 서 있어요. 3반 애들한테 다 보여요."

이건 무슨 논리인가. 3반한테 보여주면 더 부끄럽고 우리끼리는 좀 봐도 된다는 건가 ㅎㅎㅎ

"선생님 팔에 물부터 좀 털어요."

엄마같이 내 팔을 손으로 닦아준다.

여학생들이 날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대토의를 하고 있다.

"괜찮아. 교실 가면 드라이어 있어. 말리면 돼. 걱정 말고 밥 먹어."

"선생님이 희생하셔서 우리가 안 젖었어."

언제나 바르고 고운, 책에 나오는 것 같은 말을 하는 승아.


빨리 밥 먹은 아이들이 다시 비를 맞고 들어갈까 걱정된다.

우리 반 마지막으로 배식을 받았지만 1번으로 밥을 마신다.

나와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빗방울이 보일 동 말 동 하다.

밖에 나와서 보니 더 잘 보이는지

"선생님, 빤쭈 진짜 보여요."

쌍둥이 2호 어린이가 T친구에게 화를 벌컥 내며

"너 왜 그래~! 아니에요! 선생님, 잘 안 보여요. 얘들아, 선생님 가려!"

우리 반 여학생 넷이 일사불란하게 내 뒤를 막는다.

"보지 마! 우리 선생님 보지 마!"

누군지도 모르는 고학년 남학생 둘이 지나가다가 봉변을 당한다.

얘야, 아무 말 안 하면 안 볼 거 같은데.... 조용히 가면 안 될까.


교실에서 드라이어로 옷을 말린다. 위에 티셔츠 안으로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고 여학생 둘이 붙어서 내 티셔츠를 흔들고 난리다. 옆에 둘은 부채를 부친다고 양손으로 펄럭거린다. 바람은 딱히 오지 않는다.

우리 반 T여학생. 또 정확한 도움말을 준다.

"선생님, 궁디부터 말리세요."


청바지 허리춤을 들어 따뜻한 바람을 넣어 말린다.

여기저기 한참 말리다가 티셔츠에 바람을 넣으니 한 여학생이 등에 달라붙는다.

"따뜻하고 냄새 좋다."

그러자 3명이 내 등에 달라붙어 코를 박고 있다.

이 맛에 선생 하지 ㅎㅎ

흐뭇하게 젖은 옷을 말린다.


뒷문 앞엔 남학생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든든한 경호원이 내가 흐뭇하게 바라보는지도 모른 채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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