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종합예술이다.
아이들과 겨울방학 하기 전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토끼의 재판' 대본을 가지고 연극을 꾸민다.
모두 역할을 하나씩 맡으려니 2개 모둠으로 나누어서 준비를 한다. 의도치 않게 연극 배틀처럼 판이 짜인다.
[대본 읽기]
어떤 배역이 나오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생각하느라 책에 곧 들어갈 기세로 읽는다. 대사가 짧은 것을 선호하는 아이도 있고 주인공을 하고 싶은 아이도 있고 뭔가 소품을 많이 쓰는 역할을 하고 싶은 아이도 있다.
[모둠 나누기]
모둠은 디지털 세상에 맞게 컴퓨터가 랜덤으로 나누어준다. 순식간에 모둠이 나뉘고 교실 앞뒤에 모둠끼리 모여서 자기 모둠을 확인한다.
[배역 정하기] 별표 다섯 개!!! 제일 중요함
이것 역시 가장 공평한 랜덤! 룰렛에 모둠 아이들 이름을 넣고
"토끼 돌린다"
하고 클릭하면 아이들이 두구두구두구두구 음향 효과를 넣어준다.
이렇게 일단 정해진 배역은 모둠 안에서 둘이 서로가 맞바꿀 마음이 있으면 바꿀 수 있다.
"나 호랑이 싫어. 대사 너무 많아서 어떡해.... 하기 싫어."
"그럼 내가 할까? 바꿀래?"
"아니."
물론 이런 경우도 있다. ㅎㅎㅎ
그렇지만 대부분 무난하게 배역이 정해진다.
[대본 리딩]
1차 대본 리딩을 위해 교실 앞쪽과 뒤쪽으로 두 모둠이 나뉘어 동그랗게 앉는다.
"재원아, 지금 대본 읽는 시간인데 왜 장난감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총 장난감은 우리 가지고 놀지 않기로 했는데?"
"선생님, 제가 사냥꾼이라서 이거 소품이에요."
첫 리딩에 소품을 직접 준비해 오는 배우라니. 준비성이 철저하군.
1모둠의 연습 모습쉬는 시간마다 각 모둠별로 알아서 대본 연습과 암기를 한다.
[티켓 만들기]
우리끼리 하는 공연이지만 그래도 티켓을 만들어 보자.
실제 연극 티켓 몇 가지를 예시로 보여주고 만들게 했더니 재미있는 티켓이 많이 나온다.
교실 바닥에 앉아서 볼 건데 좌석은 4-D, 셋째 줄 3번, 121번.
무료 관람부터 금액이 있는 티켓, VIP만 모시는 티켓도 있다.
압권은 '기획사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럴싸한 티켓[무대 배경 만들기]
평소 A4나 8절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에게 전지를 여러 장 이어 붙인 흰 배경종이를 주니 선뜻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아이들의 요청으로 밑그림을 그려주고 화가라고 칭송을 받는다. (그림이 매우 민망함 ㅎㅎ)
저 큰 종이에 18명이 달라붙어 겨우 색칠을 한다.
배경 색칠하다가 싸워서 기획사 사정(?)에 의해 연극이 취소될 뻔 한 건 안 비밀. ㅎㅎ
2모둠의 화해 기념 촬영[동선 체크]
배경과 소품까지 준비하고 실제처럼 움직이면서 대사를 해본다. 앉아서 할 때와 또 다르다. 둘이 이야기하지만 관객을 바라봐야 하는 시선 처리, 제 때 대사를 치고 나와야 하는 타이밍, 가만히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나무와 길(road)의 지루함.
연습할수록 완성도에 욕심이 나는 배우들의 신경전도 날카롭다.
[음향효과 준비]
어디서 공연을 좀 본 아이들이 처음 연극이 시작할 때 종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서 징소리 파일을 찾아서 들려주고 OK를 받는다. 그리고 필요한 소리가 뭐가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바람 소리, 호랑이 소리, 궤짝이 철컹 닫히는 소리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유튜브를 뒤져서 음향효과를 찾아낸다. 다른 소리는 맘에 드는 소리를 다 찾았는데 궤짝 소리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찾다 찾다 현금출납기 철컹~ 땡소리를 넣었더니 이건 마트 소리라고 안 된단다. 모든 배우가 감독인지라 사공이 많다.
길고 긴 회의 끝에 겨우 모든 음향효과와 배경음악을 확정 짓는다.
[최종 리허설]
각자 위치에서 진짜 공연처럼 해본다. 하다가 중간에 끊었다가 싸우다가 결국 해결책을 찾아낸다. 대사가 많은 호랑이는 궤짝 안쪽에 커닝할 수 있도록 적어놓는다.
두 모둠이 같은 연극을 준비하다 보니 먼저 한쪽을 보고 두 번째 리허설하는 모둠은 좀 수월하다.
서로 같은 역을 맡은 친구들끼리는 연기 분석도 하고 자기는 다르게 할 거라고 혼자 연습도 한다.
소싯적 읽은 만화 '유리가면'이 떠올라 혼자 웃는다.
누워있는 아이의 역할이 길이다.[본공연]
삼각대를 세워서 휴대폰으로 촬영 준비를 한다. 1모둠이 공연할 동안 2모둠은 관객이 된다. 절대 떠들지 않고 배우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관객 예절도 배운다. 배우들은 자기가 공연을 하기 전에 관객에게 가혹할 정도로 조용히 시킨다. ㅎㅎㅎ
카메라가 돌고 징소리가 울린다.
배우도 관객도 긴장된 순간.
그동안 연습했던 연기를 펼친다. 궤짝에 갇힌 호랑이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애걸복걸하는 장면에서는 관객이 배를 잡고 웃는다.
함께 연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들 손으로 준비한 어린이들이 스스로 대견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촬영한 영상은 유튜브에 링크 공개를 걸어 볼선생의 손을 거친 브로슈어와 함께 학부모님께 보내드린다.
저녁에 집에 가서 부모님과 나눌 이야기가 한 보따리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아이들은 한 뼘 자란다.
실제 공연 모습
유튜브에 저장한 연극 영상을 요즘도 가끔 보며 그때 생각을 하고 웃는다.
볼선생이 심심할 때 보려고 너희들이 이 고생을 한 거란다.
볼선생의 빅 픽처.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