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혜정 Oct 07. 2024

가을에 만나는 친구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10월호 주제는 '독서의 계절'입니다. 아래 글은 오글오글 멤버 한라봉님 글입니다. 






적당히 뜨거운 햇빛에 조금은 차가워진 바람이 기분 좋은 계절이다. 지난여름 눈부시게 반짝이던 초록 잎들이 여러 색깔로 물들어 하나둘씩 땅으로 내려앉는 계절. 4계절 중 짧지만 그 색깔만큼은 선명한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혼자 맞이하는 다섯 번째 가을이다. 이혼 5년 차, 나는 여전히 혼자지만 이제 그 혼자라는 시간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고요한 가을 속에서 나는 책을 친구 삼아 스스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이혼 후 갑작스레 찾아온 혼자 남겨진 시간은 공허했다. 내 삶의 절반을 함께하며 일상을 공유하고 의지했던 사람을 마음에서 도려내었다. 그 빈자리에 허전함과 외로움이 차지하고 앉아 나를 괴롭혔다. 억지로 그 자리에 누구를 끌어다 놓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더 큰 공허함과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그건 또 다른 상처였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대하고 만났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왜 더 공허해지고 외로워지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러던 중 그를 만났다. 



- 오늘은 청사포까지 드라이브 왔다가 여기서 커피 한잔하고 들어가려고요



그가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다. 주말에 남자 혼자 드라이브와 카페라니 신기했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을 익숙하게 즐겼다. 퇴근 후 혼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집에 가서 간단히 식사 후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었다. 나와의 약속에서도 항상 먼저 도착해서 전자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집 근처 단골 술집에서 혼술을 하고 뷔페도 혼자 갔다. 참 신기하고 궁금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연애라는 걸 시작하면서 그는 혼자 가던 곳에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그의 새벽 출근길에 긴 통화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가 잠들기 전 한 시간가량의 통화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는 주말을 함께 보내길 바랐지만 내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우리는 주말 중 하루만 함께 했다.



"나 일본 여행 계획해놓은 게 있는데 시간 되면 같이 가자."



그가 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안해왔다. 나는 거절했다. 아이들을 두고 여행을 갈 수 없었다. 그는 혼자 떠났다. 나는 회사에서 그가 일본을 여행하며 다니는 곳, 먹는 음식 등 사진들을 메시지로 받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혼자 여행하는 그를 마냥 응원해 줄 수 없었다. 혼자서도 즐거워하는 그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외로워졌다. 이런 내가 싫었다.



"너의 아이들이 미워지려 해."



지금 생각해 보면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그가 이런 이야기를 가감 없이 꺼냈을 땐 그 속이 어땠을지 마음이 아프다. 매번 데이트 후 나를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 운전대를 잡은 그의 얼굴이 어두웠던 것도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당시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너무나 상처가 되는 말일뿐이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나는 이별을 선택했다. 내가 먼저 이별을 선택해놓고도 나는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참 이기적이었지만 또다시 혼자가 된다는 불안감에 그에게 부탁을 했다. 우리 서서히 이별하자고.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는 나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는 전화를 받아주고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나도 천천히 연락을 줄여나갔고 마지막 통화에서 그가 말했다.



"너는 살면서 혼자였던 적이 없잖아. 당분간 혼자 지내봐. 너는 너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해 보여."



누군가를 만나도 외로운 이유였다. 내가 나와 친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하고 싫었다. 나를 나로 채워야 했는데 타인으로 채우려 했으니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지막 당부를 새기며 나는 아침에 책을 읽고 저녁에 산책을 하며 오롯이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랫동안 멈추어있던 독서를 다시 시작한 계기였다. 책 속에서 만난 이야기들은 나를 위로하고 나의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감정이 복잡하거나 외로워질 때면 책부터 찾게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혼자가 되어도 더는 외롭지 않다는 걸 깨닫는 일이었다.



차가운 공기에 더 외로웠던 계절,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롭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는 책을 통해 나와 대화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이제는 그 소중함과 혼자만의 시간을 균형 있게 맞추며 살아가려 한다. 혼자라는 시간을 통해 나를 좀 더 깊이 이해하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와도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서점에서 <신독,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을 데려왔다. 올해 가을 나의 친구가 되어줄 책이다. 나는 외로울 땐 책을 만난다.



가을, 외로운 이가 있다면 책이라는 친구를 만나보길 권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