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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태영 Sep 19. 2024

2-1 하고 싶은 거면 한번 해 봐

아빠에게 보내는 두 번째 딸의 답장

와 나는 아빠가 교대를 그렇게까지 안 가고 싶어했는지 몰랐어! 지나가는 이야기로 '경영학과'를 지망했던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6시까지 원서 마감인 걸 버티다가 30분 전에 원서를 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야. 이제와서 들으니 나는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아빠는 얼마나 고민이 깊었을까 싶어.


내가 진로를 정할 땐 아빠가 할아버지처럼 "너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해!"라고 강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잖아. 아무래도 아빠 직업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으니까 나에게도 권하긴 했었지.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초등학생 때 까지. 그런데 점점 내가 좋아하는 게 명확해지고, 하고 싶은 게 생겨서 그 꿈을 이야기했을 땐 아빠는 나의 꿈에 대해 그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어. 


하고 싶은 거면 한번 해 봐


사실 내 꿈의 시작은 아이돌을 좋아하면서였잖아. 너무나 무모하게도 아빠에게 "나 빅뱅 오빠들 방송국에서 만날거야! 그럴려면 PD가 되어야겠어!"라고 말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철 없는 사춘기 시절 꿈이었던 것 같아. 내가 만약 자식을 낳았는데 저런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답답해질 것 같기도 하거든. (저렇게 무모하다고? 역시 피는 어디 안가는구나 하겠지..휴) 그런데 그때 아빠는 그 말을 듣고도 "그게 무슨 꿈이야? 공부나 열심히 해서 교대가는 게 최고야" 라고 하지 않고 "아빠는 PD에 대해 잘 모르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잘 알아봐. 공부도 해가면서!"라고 말했어. 왠지 모르게 혼날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잘 알아보고 준비하라는 아빠의 말. 단순하게 꿈꿨던 나의 희망 직업에 대한 열정은 아빠의 그 말 한마디로 더 커졌어. 


아빠! 그 때 생각나? 

내가 PD면 영상을 만들 수 있어야한다고 디지털 카메라를 사달라했던 때. 

빅뱅 오빠들을 보고 오면 공부 더 열심히 하겠다고 콘서트 데려다 달라고 했던 때. 

시험기간인데 UCC 공모전 나가야된다고 안방에서 컴퓨터로 편집하던 때. 


돌이켜 생각하면 아빠가 뭐라고 해도 할 말 없는 행동을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아빠는 정말 예쁜 핫핑크색 디지털 카메라를 사주고, 상주에서 서울까지 왕복 8시간이던 시절에 콘서트장 앞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콘서트 한정 굿즈 수량 몇 개 안 남았다고 나대신 줄까지 서서 굿즈 사주기도 하고. 콘서트 끝날 때까지 차에서 나 기다렸다가 다시 상주로 데려가고. 시험기간에 편집을 할 땐 눈 나빠진다고 안방에 불켜놓고 하라고 하기도 했어. 정말 이런 아빠의 행동들이 나에겐 큰 응원으로 다가왔고, 내가 PD라는 꿈을 현실로 이뤄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어.


오늘 아빠의 편지를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아빠가 받지 못했던 꿈에 대한 지지를 나에게 해줬던 게 아닐까싶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빠가 '선생님'으로 살아가면서 그 직업이 천직이라고 느껴질 만큼 잘 맞았다는 거야. 경제적인 이유로, 할아버지의 권유로 선택한 길이지만 그만큼 아빠에게 의미가 있다고 느껴질만큼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는 거잖아. 


나는 정말 앞으로의 아빠의 모든 순간에 행복함이 넘치는 것들이 가득했으면 좋겠어! 아빠의 위치가 어디있든 그냥 아빠 이름 세 글자로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 아빠! 다음 답장에는 아빠가 선생님으로 살아가면서 있었던 행복한 순간들을 더 나눠줘! 내가 모르던 순간들을 알게되는 게 너무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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