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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태영 Sep 19. 2024

3 후회보단 행복을 찾아볼래?

딸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딸!

편지 잘 읽었어. 사실 아빠는 네가 중학생 때부터 PD가 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그 길을 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그 직업에 대해 잘 모르긴 했지만 너무 어려운 길이고,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네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일단 하라고 한거지. 그냥 아빠 자식이니까. 자식이 원하는 건 어지간하면 다 해주고 싶고, 다해준다 생각했었어. 


단지 아빠가 나 스스로의 꿈에 대한 지지를 받지 못해서는 아니었다는 걸 알아줘. 그 당시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못 하는 게 당연히 많았던 시대라고 생각해. 그래도 아빠는 선생님이 되고난 후에 어차피 내가 원했고, 내가 개척해야 된다고 마음을 먹고나서는 그 직업 안에서 나만의 행복찾기가 시작된거야.


교직에 들어와서 23년은 교사로, 이후 14년은 교감, 교장, 장학사, 교육지원과장, 교육장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그 때마다 느끼는 행복의 순간들은 다른 거 같아. 먼저 교사로 근무할 때부터 얘기해 볼게. 


교사로 근무할 때는 좋은 수업을 했을 때 가장 행복했어.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발표를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볼 때 선생님으로서 정말 행복했단다. 그것보다 더 행복한 건 수업 시간 외에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어. 예천 유천초에 근무할 당시 아빠가 2학년 담임을 했을 때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때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학교 이름 유천(버들柳, 내川)처럼 학교 주변에 버드나무가 늘어져있는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가 있었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 주변에 있는 뒷동산에 올라가서 아카시아 잎 먼저 따기 놀이를 했는데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 했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먼저 잎을 튕겨서 따는 놀이였는데 아이들이 선생님을 이기면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더라. 그리고 점심시간에는 냇가에 나가 아이들과 함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지. 도시에 있는 학교에서는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건데 아름다운 자연 속 학교라 가능한 일들이었어.


그렇게 23년의 시간동안 교사로 차곡 차곡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다가 관리자가 되었어. 교감부터 교장, 교육청에서는 장학사, 교육지원과장, 교육장까지. 정말 돌이켜 생각하면 이 시기 업무들은 너무 힘든일도 많았던 것 같아.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는 것 보단 선생님들과 학부모, 아이들, 거기에 교육청 직원들까지 모두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했으니까. 그래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할 때 느꼈던 또 다른 행복을 느꼈어.


아빠 삶의 가치관이 뭔지 알아?

“일보다는 사람 중심”


일을 하는 환경에서도 가장 중심은 사람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어.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항상 사람 중심에 기준을 두고 접근한거야. 일본 경영의 神 마스시다 고노스케가 쓴 책의 이름인 “길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 마라”를 마음 속에 두고 따뜻하고 친근한 관리자로 다가가고자 했지. 교육장으로 근무할 때는 매월 1일 소통 공감의 날 새달맞이 회의를 했는데 한 달을 시작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그 달을 살아가는 새로운 힘을 주고 싶었어. 수능 필적란에 있는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도 아빠가 직접 외워서 시 낭송을 하기도 하고, 불꽃 축제에 갔다가 영상을 찍어와서 같이 보여주기도 했지. 교육장협의회로 제주도에 갔을 땐 너무 예쁜 겨울바다와 숲 속 풍경과 유채꽃들을 그대로 담아와서 보여주기도 했는데 아빠는 그냥 이런 것들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 나로 인해 직원들이 일을 할 때 신명나게 하고 한 달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피드백을 해주는 것 자체가 행복했던거야. 또 하나 더 생각해보면 직원들과 같이 어울려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라떼를 마시고 정을 나누던 때가 너무 행복했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었지


아빠는 37년동안 교직에 있었지만 때론 선생님으로, 때론 관리자로 있었잖아. 학생 때 내가 원하던 직업은 아니었지만 이미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후회하기 보다는 내가 행복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선생님일 땐 학생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관리자일 땐 직원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그 행복을 찾아왔어. 그래서 아빠는 후회보단 행복이 내 삶 속에 가득할 수 있는 것 같아.


딸도 일하다가 힘들 땐 한번 씩 생각해줄래?

내가 있는 이 길 위에서 후회보다 행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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