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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태영 Sep 19. 2024

3-1 아빠!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빠에게 보내는 세번째 답장

내가 있는 이 길 위에서 후회보다 행복을 찾아보자!


맞아. 사실 모든 선택 위에는 후회가 있을수도 있는데 나는 항상 후회를 하고싶지 않아서 아등바등 살아가려 했던 것 같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에서 나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잖아. 사실 고백하자면 엄마, 아빠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나름의 힘든 일들도 많았어.


지난번 편지에서 말했던 것 처럼 상주에 비하면 사람이 너무 많은 서울이 그저 무서웠고,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나에게 혼자 다니는 모든 길은 낯설었어.


내가 기숙사에 올라가던 날 생각나?


엄마, 아빠가 주말에 이사를 미리 도와줘서 짐은 다 갖다놨지만 새학기 전 날 혼자 서울에 가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 동서울 터미널에 내려서 2호선을 타고 건대입구역에 내려 7호선으로 갈아타고 태릉입구역을 가야하는데 '갈아탄다' '환승한다' 라는 개념이 나에게 없었어. 그래서 지나가던 할아버지에게 혹시 7호선은 어디서 갈아타냐고 물어봤는데 나보고 "학생은 숫자를 못 읽나?"하며 그냥 지나가시는데 갑자기 확 외로움이 밀려오더라. 상주에 있으면 누구에게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데 정말 배낭 하나 메고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는 곳에 홀로 서있는 느낌이 들었어. (이 때 정말 다시 상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행히 같은 학교 학생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기숙사에는 도착할 수 있었어. 그렇게 하룻 밤을 보내고 새학기의 아침이 밝았어.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서 피곤한 상태로 기숙사 책상에 앉아있는데 가족 단톡방에 아빠 메시지가 하나 온거야.


"오늘 딸이 다니던 고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기분이 울적하더라. 매일 밤 야자 끝난 딸을 데려다줬는데 지금은 딸이 서울에 있으니 못 데려다주네. 그래서 잠깐 학교 앞에 차 세워두고 앉아있다 왔어."


나는 아직도 이 문자가 잊혀지지가 않아. 한 글자 한 글자 읽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거야. 아이처럼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소리내서 울고싶었는데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러지도 못했지. 황급히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아는 언니들에게 연락을해서 기도해달라했어. 이 외로움을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지금 생각하니 참 귀엽네)


그렇게 하루 하루 외로움을 견뎌내면서 그래도 내 할 일은 해야하니까 이것 저것 쉬지않고 도전도 해왔던 것 같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강남을 직접 찾아가서 대외활동 면접도 보고, 아침 8시부터 토익 학원에 가서 밤 11시까지 공부를 하기도 했지. 문화PD라는 대외활동을 할 땐 무거운 카메라를 이고 지고 여주, 창원, 문경 가리지 않고 촬영하러 다니기도 했어.

정말 다시 돌아가도 이렇게 열심히는 못 살 것 같아
대학생 때 쓰던 일기장

그렇게 나는 대학교 3학년에 첫 인턴을 합격하게 됐고, 22살의 나이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된거야. 아빠가 24살의 나이로 초임 시절을 보냈으니 내가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사회를 경험하게 된거네! 그래도 난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PD'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어. 아무리 야근을 해도 회사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좋았고, 편집을 너무 오래해서 허리가 아파 책상 밑에 담요를 깔아놓고 무릎을 꿇은 채로 일을 해도 행복했어! 그냥 내가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던 날들이었던 것 같아. 이 시기가 딱 아빠가 말한 것 처럼 '후회보단 행복을 찾자!'라는 마음으로 일을 했던 순간이었어.


그런데 정말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내가 살아왔던 순간들을 하루 하루 돌아보니, '열심히 살았다' 라는 말을 빼고는 할 수가 없겠더라. 아빠가 믿어준 만큼 정말 잘 해내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기를 잘 견뎌낸 나 자신도 너무 대견한 것 같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아빠도 이런 시기가 있었겠지?


나는 해봤자 대학 생활을 끝내고 사회 생활을 한지 이제 9년차 이지만 아빠는 무려 37년차 대선배님이잖아. 아빠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만 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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