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보내는 첫 번째 딸의 답장
처음으로 아빠의 초임 시절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것 같아. 평소에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로 너무 바빠서 전화를 해도 "뭐해? 밥 먹었어?"라는 짧은 대화밖에 나누지 못했던 것 같거든. 그래서 지금 아빠랑 나누는 이 편지가 시작에 불과해도 매일 아침 아빠에게 질문을 보내는 순간이 설레고, 답장이 오는 오후 시간도 기대가 돼.
솔직히 첫 질문을 고민하면서 어떤 질문을 던져볼까 생각이 많았는데 너무 깊이 생각하니 오히려 질문이 생각 안 나더라. 그래서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내가 아빠처럼 37년차가 되었을 때 어떤 질문을 받으면 좋을까? 고민했어. 그랬더니 이 질문이 떠올랐던거야.
아빠의 첫 출근 기억나?
내가 이 질문을 던지면서 나의 첫 출근도 생각해봤어. 지금 생각하면 마냥 어린 스물 세살의 나이로 인턴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출근했던 그 날. 잔뜩 긴장된 채로 1시간이나 일찍 회사에 도착했는데 큰 건물에 압도되어 근처 은행으로 도망아닌 도망을 가게 되었어. '와 내가 진짜 잘 할 수 있을까?' '면접에서는 다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못 하면 어떻게 하지?' 부정적인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은행 안에 틀어져 있던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아무 소용없을 정도로 땀이 나더라고.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첫 출근 뿐만 아니라 서울에 처음 올라와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엄청 많이 울었던 것 같아. 친구랑 처음으로 광화문을 가게 됐는데 광화문역 문이 열리는 순간 퇴근 시간 속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져나오는 걸 보고 울기도 했고, 대외활동 면접을 가서도 나보다 멋진 친구들이 많은 걸 알았을 때도 울기도 했어. 세상 속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아빠의 편지를 보고 처음으로 이 생각이 들더라.
아빠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나는 내가 소심하고, 여린 성격이라 무언가에 적응하는데 더 힘들어하고, 더 용기가 필요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 내가 보는 아빠는 태어날 때부터 선생님이었나 싶을 정도로 멋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빠가 편지에 썼던 것 처럼 선생님이 되고난 후에 안 해본 닭 키우기, 국화꽃 피우기, 코스모스 심기를 하면서 안 해본 일에 열정 하나만 가지고 해냈던 순간이 있었는지 몰랐어. 스물 다섯살의 초임 교사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아닌 다른 업무가 얼마나 부담 되었을까. 정말 작은 일이라도 해내려고 했던 아빠의 모습이 눈에 그려져 왠지 모르게 내 모습이랑 비추어 보게 되더라.
<아빠의 첫 번째 편지 중에서>
나도 열심히 울더라도 무슨 일이든 하나씩 해내다보면 아빠처럼 멋진 모습의 37년차가 되어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어.
정말 편지를 주고받길 잘한 것 같아! 평생 모를 수도 있던 아빠의 초임 시절 이야기도 듣고 말이야. 어쩌면 이 편지를 통해 나의 초심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네.
앞으로의 편지도 잘 부탁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