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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태영 Sep 19. 2024

1 아빠의 첫 출근은 말이야

딸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37년 전의 이야기를 쓰라고 하니 아주 먼 옛날 이야기라 생각되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너무나 생생하다. 첫 발령지인만큼 당시의 학교와 주변의 모습이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 타임머신을 타고 37년 6개월 전, 1987년 3월 1일로 가볼게. 


응답하라 1987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3월 1일.  꿈에 그리던 새내기 선생님으로 첫 발령을 받았어. 25살 나이, 총각 선생님으로 발령 받은 곳은 예천군에 소재하고 있는 풍양초등학교. 당시 학교는 18학급에 720여명의 학생이 다니는 상당히 큰 학교였어. 


예천 풍양은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당시에는 육지와의 연결 통로는 유일하게 면소재지에서 북쪽에 위치한 지보교 뿐이었다. 육지 속의 섬처럼 거의 고립된 지역이라 생산과 소비가 자급자족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기억으로는 전형적인 농촌 면소재지에 5일장이 대규모로 열렸고 유흥업소가 엄청 많았어. 고향인 상주를 갈 때는 낙동강 북쪽의 유일한 다리인 지보교를 이용해야만 했지. 지금은 상풍교, 영풍교가 놓여져 20분 정도 걸리지만 당시에는 버스로 2시간이나 걸려 고향에 갈 수 있었어. 요즘엔 서울에서 상주까지 2시간 30분이면 가는데 말이야. 당시를 떠올려보면 비포장 도로에 농촌마을 변두리에 노부부가 사는 농가 방 한 칸을 얻어 자취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활 환경과 학교문화 속에서 선생님으로서의 첫 출발을 한 거야. 교대를 갓 졸업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든 새내기 선생님에게는 참으로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출발을했어.사실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아. 


그 때의 아빠를 돌이켜 떠올려보면, 정말 젊고 풋풋한 패기넘치는 선생님이었어. 


처음으로 맡은 학년은 4학년 1반 선생님이었는데 새마을 업무를 맡아서 사육장 관리와 화단 관리 및 국화 재배였어. 당시 교장선생님의 전공이 농업이라 학교 환경 가꾸기에 관심이 많아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 같아.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히 기억 남아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떠오르네.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수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도로가에 나가 코스모스 심기, 사육장을 이용하여 닭 기르기, 온실 속에 국화 키우기를 했었거든.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사육장에 닭 키우기는 족제비 때문에 물거품이 되었고, 애지중지 키우던 닭이라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 그리고 국화에 대해 문외한인 나에게 국화 키우기 업무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수소문을 해서 정보를 구하고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해야된다는 신념 하나로 도전해봤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가을이 되니 소국, 대국이 활짝 피었고, 지금도 그 길을 가면 그때 생각이 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아빠의 교직 첫 출발은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열심히 울던 소쩍새였던 것 같아. 부족한 게 많아도 이겨내야했고,  가진 건 열정 밖에 없었던.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의 아빠가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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