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사랑하는 딸아!
이번 추석 연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했다는 것, 맛집 투어, 함께 산행을 하면서 계곡 물에 발도 담그고 소소한 행복을 함께 느끼고 누렸다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우리 딸은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엄마, 아빠가 웃는 얼굴”이라고 했지. 이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해지는구나.
딸의 답장을 읽으면서 아빠의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됐어. 돌이켜보니 내 삶 속에 모든 순간이 감사함으로 가득차 있는 걸 알고 있음에도 때론 사소한 것 하나에 안 해도 되는 걱정을 하는 때도 많았던 것 같거든. 아빠는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차창 밖으로 들판의 오곡백과, 파란 하늘에 걸린 흰 구름이 가을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출근을 했어.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
출근 길에 이런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게 행복 아닐까?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라는 말 알지?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말인데 출근을 하는 그 순간에 갑자기 확 그 말의 의미가 다가오는거야. 행복은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것.
자연을 바라보며 행복에 대한 생각을 곱씹다가 아빠의 일터인 교실에 도착했어.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좀 더 고민해봤다. 그저 오고가는 출근길이 나에게 행복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뭘까?
내가 좋아하는 직장으로 출근한다는 것. 그 곳에 가면 예쁘고 멋진 아이들이 있고 교직생활의 든든한 동반자인 동료 교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만의 교실이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아빠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자체가 아닐까? 작은 것에서 와 닿는 가슴 저림이 행복이고 때론 힘들기도 했던 옛 추억의 조각들, 핸드폰 사이로 퍼져 나오는 아내의 사랑스런 잔소리가 모두 행복인 것 같아.
그 생각을 시작으로 아빠의 행복을 더 찾아보기로 했어.
기억 속의 행복 ‘하나’
10여년 전, 너희들이 어렸을 때 그 힘든 중에도 시간을 내어 휴가철이 되면 텐트를 싣고 영덕 바닷가를 찾아 떠났어. 적당한 공간만 있으면 허름한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 먹고 귀한 모둠회를 시켜 먹던 기억이 나네. 지금도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그 때는 너희들이 어려서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어. 아빠가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어디론가 무작정 떠났지. 지금 생각하니 정말 아름다운 추억 속의 한 장면이네.
기억 속의 행복 ‘둘’
아빠의 교직생활 37년 6개월 동안 경북의 8개 지역을 근무하면서 그 지역의 문화를 접했고 좋은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기쁨을 함께 하던 그 순간 순간이 행복이었어. 또,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객지 생활을 한다는 건 힘들었지만 경주에 근무할 땐 엄마와 함께 보문단지 둘레길을 걸었고, 구미에서 근무할 때는 금오산 둘레길, 영주에서는 서천 둔치 뚝방길을 걸으면서 힐링했어. 그 모든 순간이 행복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전문직으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이제 다시 새로운 곳에서 또다른 시작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감사야. 급격한 환경의 변화로 인해 적응을 하는데 힘들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적응하고 안정을 찾을 줄 몰랐다.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연구실에 앉아 수업준비도 하고 연구도 하고 딸에게 편지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지금 나의 행복이란다.
딸아!
어렸을 때 받은 든든한 응원들을 아빠에게 다시 돌려줘야겠다고 했지. 우리가 겪었던 삶의 무게들은 힘들었지만 그 이겨낸 힘들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거라고 생각하면 감사할 뿐이란다. 지금도 충분히 너무 잘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하구나.
딸의 바람처럼 아빠는 지금 너무 행복해. 왜냐고?
우리 가족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학교에 오면 아이들과 함께 해서 즐겁고, 사회에서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지. 맞다! 아빠가 좋아하는 운동이 테니스잖아. 아들과 함께 파트너가 되어 칠 때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든든하고 행복하단다. 그리고 매일같이 엄마와 함께 저녁으로 고수부지를 걷는 것도 너무 행복해.
우리 또 열심히 살자.
너무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가지면서 말이야.
음료수를 대표하는 코카콜라 회장이 신년사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진 말라”
쉼표❜는 9를 닮았어. 1에서 8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면 9쯤에서 쉼을 통해 ‘스스로를 멈추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딸의 말처럼 다음에는 우리 어디로 ‘쉼’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그리고 거기에서 아빠의 트레이드 마크인 백만불짜리? 웃음을 더 많이 만들어볼게. 우리 딸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