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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태영 Sep 26. 2024

5-1 아빠! 나 퇴사하려고

아빠에게 보내는 다섯번 째 답장

아빠랑 편지를 주고 받은 것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네! 시간 진짜 빠르다. 덥다못해 뜨거웠던 여름 날씨에 편지를 쓰자고 말을 했었는데 지금 창 밖은 높고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어.


사실 이 편지를 시작하던 여름엔 설렘보단 걱정이 좀 더 많았어. 자리가 주는 의미가 아예 적지 않을텐데 37년간 열심히 올라간 곳에서 다시 초임 교사 때처럼 학교 현장으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아빠가 그것 자체를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었거든. 


나도 작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퇴사했잖아.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5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나온다는 건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어. 더군다나 사회 생활을 시작하던 23살 부터 지금의 나이까지 9년이라는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던 나에겐 더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 


아빠! 내가 26살 때 여행 플랫폼 회사에 다니다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생각나? 난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해. 이미 마음으로는 퇴사 결심을 다 했는데 엄마, 아빠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는거야. 그 전에도 벌써 두 번의 이직이 있었고, 엄마,아빠 입장에서는 회사를 옮겨다닌다는 게 되려 내가 참을성이 없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 미루고 미루다가 친구랑 홍대에 있는 빙수집에 가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여기서 말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어. 여느때와 같이 다정하게 받아주는 아빠 목소리에 조금은 더 용기를 내서 말했지.


아빠! 나 퇴사하려고!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는데 아빠는 바로 나한테 묻더라. "많이 힘들었지? 네가 퇴사하려고 하는거면 다 이유가 있겠지. 상주 내려올래?" 다른 이유 하나 묻지 않고, 잠시 상주에 내려와서 쉬라는 아빠의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 친구가 퇴사한다고 해도 이런 저런 이유를 물어보며 그 선택이 올바른 선택인지를 판단하려고 하는 내 성격상 아빠의 그 대답은 너무 충격적이었어. 사실 아빠 말처럼 내가 "퇴사하려고!"라고 말을 했을 때는 이미 마음 속 힘듦이 가득 차 있을 때 였단 말이야. 일주일 마다 1박 2일 씩 출장 촬영을 나가고, 장거리 촬영을 많이 가다보니 이동 자체도 힘이 들었어. 거기에 남자 선배 둘에 나 하나.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무거운 촬영 장비도 번쩍번쩍 들려고 했고, 아직 모르는 게 많을 때였지만 무시당하기 싫어서 아는 척 하느라 하기도 힘들 때였지.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려서 더 무식했던 것 같아. 힘든 걸 힘들다고 말도 좀 할 줄 알았다면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K-장녀인 내가 꾹꾹 눌러담다가 터뜨린 그 말에 힘을 보태주는 아빠의 말 한마디. 정말 큰 힘이 됐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돌이켜보면, 내가 흔들려서 꺾이기 전에 아빠의 믿어주는 말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9년이라는 시간동안 한 길로 계속 걸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아빠에게도 그런 용기를 주고 싶었어

스타벅스에서 가족 회의를 하던 때가 생각나. 교육장 임기가 끝나고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명예 퇴직과 원로 교사로 가야할지.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가야하는지, 아니면 편하게 퇴직을 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게 맞는건지. 길고 긴 고민을 하다가 아빠가 우리에게 털어놓았잖아. 우리의 대답은 "무조건 원로 교사지!"였어. 누구보다 교육에 대해 열심인 아빠가 학교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게 퇴직하는 것보다 더 좋을 것 같았거든. 아빠도 일 없이 못 사는 스타일이잖아! 그렇게 말은 했지만 막상 9월 1일자 발령이 났을 때 혹시나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야. 공간도 달라졌고, 사람도 달라졌고, 위치도 달라졌으니 얼마나 큰 변화였겠어. 그런데 정말 아직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시간인데 아침마다 보내주는 아빠의 카톡에서 행복이 느껴지는 게 너무 대단해. 

아침을 기대하게 하는 아빠의 카톡

점점 행복을 완전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아빠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온전히 와닿는 거 알아? 분명 나처럼 아빠도 그 안에서 힘든 게 있었을테지만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그래도 만약 힘든 게 있다면 말해줘! 내가 아빠의 말 한마디에 용기를 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잘 걸어온 것 처럼, 아빠에게도 그런 용기가 되는 말을 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어!


오늘도 온전한 가을 날씨를 느끼며 행복한 하루 보내자!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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