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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태영 Sep 27. 2024

6 "선생님, 동안이세요"

딸에게 보내는 여섯 번째 편지

교사로 다시 새출발을 한 지가 벌써 23일째구나!


오늘 아침은 출근하는 길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어. 사무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매봉산 자락 풍경이 가을을 품고 있었지. 가을의 중턱에 교실에 앉아 딸에게 편지를 쓰는 나에게 스스로 파이팅을 해 본다. 


누구나 처음 가는 길은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낯설고 두렵기 마련이야. 이런 저런 일로 환경의 변화를 겪게 마련이고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적응기를 겪는 것도 당연한거지. 딸도 여러번의 이직을 하면서 오히려 아빠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잘 견뎌낸 딸이 너무 대견하다. 37년이나 하나의 직업으로 살아오고 있는 아빠 역시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 

 

사실 교사로서의 새출발은 아빠의 큰 결심이었어. 남은 정년을 가장 뜻있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나의 강한 신념이 있었지만 이 길을 선택하기까지 잠못 이룬 밤의 고민으로 마음의 무게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빠의 마음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원로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쪽으로 기울여져 있긴 했지만 정상에 올라갔을 때 명예롭게 퇴직하라는 여러 이야기들에 마음이 시끄러울 때였어. 


엄마와 이야기도 해보고, 아빠 혼자도 생각해보다가 결론이 도무지 나지 않아 아들과 딸, 사위가 왔던 그 날에 가족 회의를 하게된 거였지. 선택이 어려울 땐 가족들의 의견만큼 든든한 것이 없잖아. 아빠를 제일 잘 알고, 올바른 선택을 도와줄 무조건적인 내 편들. 그 날의 대화로 아빠 마음은 확신을 갖게 되었고, 선택을 했어. 벌써 발령 받은지 23일이 지나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작은 교실에 앉아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첫 오리엔테이션 준비 자료


지난 9월 2일 첫 수업이 생각난다. 6학년 아이들과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는데 오랜만에 아이들 앞에 서니 조금 어색하기도 했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벌써 몇 년 전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수업을 해야한다는 것이 낯설기도 했고. 그래도 아빠 나름대로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어 이런저런 자료도 만들었어. 아빠에 대한 질문들을 OX 퀴즈로도 만들고, 몇 가지 재밌는 퀴즈도 만들었지. 다행히 아이들의 반응은 좋았어. 


아빠가 만든 빙고판


그러다 갑자기 안경을 낀 말쑥하게 생긴 남학생이

“선생님 진짜 동안이세요." 라고 말하는 거야.  그 소리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고마워"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했지만 아빠에게 큰 힘이 되었어. 앞으로는 귀여운 일들이 더 많이 생길 것 같아 기대가 돼.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에 수시로 선택의 기로에 서잖아. 


점심을 뭘 먹을지, 운동을 어디로 갈지. 단순한 선택이지만 이런 선택들이 모여 누군가의 삶을 만들어가는거고. 아빠에게는 퇴직을 앞둔 1년 6개월의 시간에 대한 선택이 인생의 큰 선택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에서 이 길을 '잘' 선택했다 생각이 드는 이유는 바로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않을까. 정말 너무 큰 복이잖아. 나의 일터가 나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이 된다는 것이. 앞으로도 아빠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수업 속에서 아이들과 행복 찾기 놀이를 하며, 교무실에서는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조그마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선배로서 나의 역할을 다하는 원로 교사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사랑하는 딸아!

우리 딸도 서울살이 10년! 회사를 여러번 옮겨 다니면서 그 때마다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힘들어도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딸이 언젠가 아빠한테 이렇게 말했지? 

"회사의 어느 한 분이 힘들게 해서 너무 힘들어!" 

그 때 좀 더 자세하게 묻고 챙겨주지 못해 후회가 되는구나! 그래도 이렇게 딸과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빠한테 말하지 못했던 고민들과 이야기들도 마음껏 털어놔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작은 교실에 앉아 단풍이 지는 산을 바라보면서 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줄게.


오늘도 최고의 선택이 아닌 가장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딸이 되길 바라며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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