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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Mar 05. 2024

꿈과 용기

본가에 내려온 지 며칠 안 되어 꿈을 꾸었었다. 그 꿈은 엄청 큰 거위가 나타난 꿈이었다. 처음엔 그저 거위모양의 큰 풍선이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진짜 거위가 나타난 것이다. 석촌호수에 떴던 러버덕처럼 엄청 커서 나는 당황했다. 그 거위가 나를 향해 왔다. 너무 커서 당혹스러웠으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꿈이 너무 선명해서 이틀 내내 그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생생해져 갔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대체 그 꿈은 무엇인가 생각했다. 엄마에게 말하니 보통은 태몽일 수도 있다는데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나는 오랜만에 저녁에 운동을 하기 위해 부모님 집 앞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따뜻해지나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다시 추워진 날씨에 나는 더욱 옷을 꽁꽁 싸맸다.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함께 다시 떠오른 그 꿈을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내 눈앞에 진짜 거위가 나타난 것이다. 내가 걷던 공원은 큰 호수를 끼고 있는데 날이 추워져서 거위 가족들도 추웠는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뚝길로 올라와 꽥꽥 울고 있었다. 꽥꽥거리는 거위들이 너무 귀여우면서도 눈앞에 나타난 진짜 거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가 취할 액션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렸다. 그 거위들에게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겠지만 나에겐 다시 본 친구처럼 반가웠기에 열심히 사진만 찍다가 다시 발걸음을 떼었다.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를 수도 없으니 말이다. 거위들을 뒤로하며 나의 마음속엔 내게도 나만을 위한, 나를 웃게 할, '거위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바람이 움트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랬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긴 하나? 예전엔 '꿈꾸던 소녀'였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막상 떠오르는 꿈이 없었다. 꿈이라고 하니 거창해 보여서 그렇게 느낀 것도 같다. 거창한 소원은 뒤로하고, 그저 그간 바라왔던 것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운동을 계속하며 마음속으로 소원 기도를 했다. 내가 할 것은 최선을 다하는 노력만 있으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원하는 삶의 모습을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한 번 그려본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된 오늘, 나는 다시 한번 꿈을 꾸었다.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한 남자가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먼저 악수를 청해 보았다. 물론 꿈이었지만, 남자에게 내가 먼저 손을 내민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뜨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늘 먼저 다가가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늘 다가오는 것만 기다렸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상대의 웃는 그 모습에 그렇게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건 내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선 생각해 보니 나는 '용기'를 내 본 적이 없었고, 낼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늘 머릿속에 의문으로 남았던 중요한 순간들, 왜 마음속에 갑갑함과 함께 쓰라린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는지, 그것은 '용기'의 부재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 앞에까지 다 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 지난날의 나의 미련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노력만이 아닌 '용기'도 함께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슨 꿈이든, 꿈을 이루는 최선엔 '용기'가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진정한 용기를 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거절이나 혹은 상황과 실패가 낳은 부정적 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 나의 결핍과 부족함에 대한 너무 강한 인식이 '용기'의 존재를 부재의 자리로 만들어버린 듯하다. '용기'를 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커버린 어른, 그 어른이 이제는 적어도 내 것에 있어서, 혹은 내 삶의 바람에 있어서 용기를 내보려 한다. 큰 것이 아니라도 나와 어우러질 수 있는 상황 안에서 말이다. 나의 일상 속에서 그리고 삶의 중요한 순간 속에서도 결과에 너무 집중해서 꼭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할 때 놓치는 일이 없도록 지혜를 구하려 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두어 예쁜 꽃들이 피어나게 하고 싶다. 좋은 향기를 품어 누가 와도 그 향기에 웃음을 머금을 수 있도록 내 삶을 그렇게 가꾸고 싶다. 렇게 사랑을 머금은 삶이 되었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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