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회복이 되었다. 오늘은 다시 어린이집에도 다녀왔다. 그런데 아직 내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아기가 많이 아팠을 때, 아기에게 감기가 옮았는지 며칠 사이에 나 역시 고열이 나고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몸살과 근육통은 너무나 심하여 '정말 이러다 뭐 하나 망가지겠다'라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기에 나는 좀 두렵기까지 하였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아픈 아기에 온 집중이 되어있었기에 내가 아픈 건 사실 그 다음다음 문제정도로 인지되었던 것 같다. 나에게도 다른 가족들에게도. 나조차도 내가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듣고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기가 입원한 지 삼일 째 되던 날,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새벽 6시 50분부터 가서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첫 진료를 보았다. 피검사를 하고 수액을 맞고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서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아파서 어떻게 견뎠어요?"
'염증 수치가 매우 높아 온몸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뼈마디가 아팠을 텐데'라고 추측하는 그 진단에 나는 "발가락 뼈까지 아파요"라고 대답하였다. 5일 동안 약을 먹었으나 낫지 않았고 중이염과 기도까지 좁아져 모든 것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 이후로도 약을 먹었지만 좀처럼 호전되질 않았다. 아직까지도 목소리가 돌아오질 않고 있다.
아기가 아프고 나의 몸까지 온전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지난달에 준비했던 대학원 준비에 실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전 같았으면 아쉬운 마음을 훨씬 넘어서 불안하고 예민하고 화가 나고 별의별 부정적 감정이라곤 다 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이번엔 아쉬운 마음까지만 들은 채로 나는 나의 일상을 재정비하는데 마음을 쏟게 되었다. 왜냐하면 '감사함'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사실, '내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너무 아쉽지만, 아기만 건강을 찾았으니 그걸로 다행이다'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의 바람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나는 아기와 나 모두 건강하게 사는 일상을 위해 전진하는데 집중하고 싶다'하는 마음과 기대가 감사함으로 더 크게 자리 잡았기에 힘은 빠졌지만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나는 우연히 지난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되돌아보니 아쉬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열심히 공부했던 분야에 한 발만 담가놓은 채로, 순수한 열정으로 일했던 일터에서 또 한 발을 담가놓은 채로, 타고난 재능은 어린 시절 잠깐 빛을 발하다 그대로 멈춰진 채로, 지금은 그 어느 곳 하나에서도 나를 찾지 않으니 나는 두 손이 있음에도 이곳들 중 내가 섬기고 일할 곳은 어느 곳도 없다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아파서 어떻게 견뎠어요?'
꽃이 활짝 한 번이라도 피었으면, 피기 전까지의 그 과정이 아픔에서만 끝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동안 그 과정 그 상태로 아파서 어떻게 견뎌왔나. 아픈 통증을 참으며 아직도 작은 꿈을 놓지 않고 준비하는 내 모습을 보니 안쓰러우면서도 나라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건강해져야겠다, 몸도 마음도, 다'하고선 마음을 추슬렀고 이러한 내 모습을 나만 알아서 다행이다 싶어 위안을 삼았다.
안타깝고 약간은 어리석은 내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며 낙심할 수 있으나 나는 오히려 너무나 감사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길 위에서 뜬금없지만 아무리 아파도 나를 보고 웃는 아기의 웃음소리에 진심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기의 존재가 분명 나에겐 나보다 더 큰 바다와 같은 사랑으로 내 인생을 덮은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숨길 수 없는 이 미소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아기와 나는 많이 끈끈해졌다. 아기의 마음을 헤아려주니 아기는 요즘 나와 제법 대화도 많이 하고 나에게 애정표현도 잘한다. 오늘은 오랜만의 외출에 내 손을 꼭 잡고 찾으며 볼을 비비고 행복해했다. 그 모습을 보니, 요즘 매일 아기가 나에게 와서 '같이! 같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기와 같이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몰랐지만, 적어도 오늘의 나는 내가 어디가 아픈 줄 알고 무슨 약을 먹어야 하는지도 안다. 그렇다면 건강해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또 하루가 번뜩 지나간다. "아기야, 건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