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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벳 May 03. 2024

살이 빠지니 친정 엄마와의 관계도 가벼워졌다

해묵은 애증 관계가 다이어트에 주는 영향


“ 너 그러다 큰일 나.”

친정엄마와 전화할 때 어김없이 들려오는 한 마디. 이어지는 한숨이 통화 너머로 느껴지는 게 나 만의 착각은 아니겠지. 살이 찔 대로 쪄있는 딸네미 걱정에 엄마는 늘 노심초사이다.



“ 특히 넌, 갑상선도 안 좋아서 살찌면 안 된대. 당뇨랑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도 더 잘 걸리고. 그러니까 몸 관리 해야 돼.”



나도 안다. (누구는 살이 찌고 싶어서 쪘나요.) 갑상선 저하증을 거의 10년 넘게 앓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거도. 이 병의 부작용이 호르몬이 부족해서 대사량도 낮아지고, 먹지 않아도 살이 찌는 거란 걸. 누구보다도 체감하고 있는데. 엄마는 그걸 콕콕 집어서 한 번씩 아프게 한다. 작년 한창 몸무게가 피크였을 때, 할머니 장례식 이후 정도는 더 심해졌다. 친척들이 보고 깜짝 놀랐다는 둥. 무슨 일이 있냐고 했다는 둥. 엄마의 입을 통해서 굳이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쏟아진다. 결론은 어서 살 빼라는 소리라는 거지만.






친정엄마와는 늘 그렇게 애증의 관계였다. 집 안에서 순하디 순했던 큰 딸은 자라면서 비뚤어지고 어긋났다. 엄마의 간섭이 버거웠고 잔소리에 마음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일부러 하지 말라는 걸 계속했다. 운동해야 한다는 말에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반문하고. 끼니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에 한 끼도 겨우 먹는다며 폭식하기 일 쑤. 스트레스를 푼다고 술도 거의 매일 마셨다. (지금은 입에도 못 대는 몸이 되었지만) 이렇게 보니... 청개구리 같은 딸이다.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그런다는 걸 알고 있는데. 왜 반감이 드는 걸까.



엄마는 내 주변의 이들 중 가장 바지런하고 깔끔한 사람이다. 이리저리 여기저기 윤이 나게 쓸고 닦는다.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않는 깔끔함이 몸에 배어 있다. 그뿐인가. 화초 가꾸기가 취미인지라 집 안은 식물원 수준. (식물은 정말 바지런한 사람이 잘 키운다.) 반찬은 늘 식탁을 가득 채울 정도로 요리도 잘한다. 장을 직접 담가 먹을 정도니. 이렇게 하루 종일 움직이니 살이 찔 수가 없다. 40대였던 엄마의 몸무게는 45kg을 넘어 본 적이 없었으니. 그러니 40대에 접어든 딸네미가 얼마나 한심하고 안타까워 보일까. 둔해진 몸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모습에 관리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덧붙여 늘 말했다. 네가 부족한 게 뭐가 있냐고.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거 안 해준 적 있었냐고.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떳떳하게 대학교도 졸업한 나름 똑똑하고 유능한 딸로 키웠는데, 이제는 집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 싫단다. 살도 찌고 점점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 안타깝단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엄마에겐 나름의 자부심이었나 보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외모가 능력이고 힘인 시대. 엄마는 그 시대를 살아왔다. 예쁘고 날씬한 외모가 관리 능력이고 됨됨이임을 증명한다 여겼다. 그리고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본인의 외모에 만족을 넘어 딸의 외모에 간섭했다. 물론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잘 나가고, 예뻤으면 더 좋겠는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널 위한 말이라고 포장하며 전할 때, 이는 조언이 아닌 상대를 아프게 만드는 화살이 된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다. 이게 계속되면 오히려 독이 되고 문제가 된다. 마음이 비뚤어지고 반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로 변화하듯이.






올해 초 다이어트를 시작. 엄마에게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안에 오기가 있었나 보다. 성공해서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길고 긴 겨울 방학에도 친정 한번 가지 않고 매일 운동했다. 이를 모르는 엄마는 방학 때 아이를 데리고 오라 했지만. 요리조리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는 딸의 말에 내심 서운 했을 것이다. 이를 애써 무시하고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운동을 했다. 남편이 그렇게 급하게 하다 요요가 올 수도 있다 말해도, 식단과 운동을 정확히 지키며 자신을 억눌렀다. 오전에 일이 있으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했고, 전날 식사 약속이 있으면 그다음 날은 무조건 샐러드와 닭가슴살만 먹었다. ( 옆에서 남편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참 독한 여자라며 허허 웃어넘겼더랬다.)



엄마 대학 병원진료가 있어 만난 날. 멀리에서 걸어오는 엄마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냐고. 너무 급하게 다이어트하다가 건강 해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눈에는 걱정과 함께 기쁨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달라진 딸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하는 엄마의 모습에 뿌듯함의 감정이 올라왔다. 결국 나도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던 마음이 있었던 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여전히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 나를 발견했다.






다이어트 성공 후 엄마의 잔소리가 줄었냐고? 아니다. 이제는 몸도 가벼워졌으니 집안일에도 신경을 쓰란다. 아무리 치우고 정리해도 엄마의 깔끔함에는 발끝도 미칠 수 없는데. 이제 살 빼라는 잔소리는 안 하지만 또 다른 잔소리 레퍼토리가 이어지는 중이다. 앞으로 계속 또 다른 잔소리로 이어지겠지. 결국 엄마는 나에게 영향을 주고 싶은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로 잔소리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지금은 자연스럽게 엄마와 정서적 거리를 두고 있는 중.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실망하고 미워하는 게 아니다. 더 잘하고 뛰어났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버거운 게 아니다. 엄마의 사랑의 말은 나를 위한다는 포장을 둘렀지만, 그 속에는 얽어매고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낮아진 자존감이 회복되고 단단해지면서 나를 더 생각하기로 했다. 거의 이틀에 한번 이어지는 엄마와의 통화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줄어들었다. 진정한 건강한 관계는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함을 느끼며.





다이어트를 하니
마음에도 살이 빠져
가벼워지나 봐요





메인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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