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더 가까이 모여드는 애들...
지난 주말은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모든 걸 날려버릴 듯 무서운 날이었습니다. 태풍의 영향이었다지요...
그러다 밖에 있을 고양이들이 걱정되어 나가 봤습니다. 일단 '자두'네 집 테이블 위에 있던 파라솔이 꺾여 뒤집혀 있습니다. 이 테이블은 냥이들이 올라가 밥을 먹고(호피) 쉬기도 하고(턱시도, 삼순이네 가족) 잠도 자는(삼순이네 가족이 잠을 잡니다) 곳이었는데 그 위에 해나 비를 막아줄 대형파라솔이 비바람에 뒤집혀 꺾여
뽑혀서 나뒹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접어 놓았다가 해가 너무 뜨거워 요즘 펼쳐 놓았는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결국 이 비바람을 못 이기고 그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자두'도, 냥이들도 놀라 혼비백산 도망을 갔겠지요... 하지만 '자두'는 이날 집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냥이들은 아마도 어디론가 도망을 갔겠지요. 겨우 뽑힌 파라솔을 접어 치웠는데 애 들은 어딘가 숨었나 봅니다. 그렇게 비바람을 맞으며 대충 정리를 다할 무렵 어디서 나타났는지 비를 맞은 애들이 내 주위에 모여듭니다. 이 애들은 기가 막히게 내가 온 걸 압니다. 어디선가 나를 엿보고 있었는지 내가 나오면 다들 모여드는 겁니다. 에그~ 이런 비를 맞고 온 게 측은하여 현관문을 열어 놓고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사실, 이 애들과 정을 떼려면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쳐도 내다보지도 말아야 하고 현관 안으로 들여놓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도저히 이 비바람에 나를 보고 나타난 이 애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현관 안에
들여놓고 말았습니다. 비를 맞건 말건 일단 놔두어야 하는데...
현관으로 모여든 애들을...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턱시도'가 들어오고 '치즈'도 오고 무엇보다
'삼순이네 가족'이 왔는데 새끼들은 일단 내가 있으니 못 들어옵니다. 문 앞에 알짱거리기만 합니다.
그러건 말건 문을 열어 놓지도 말고 들여놓지도 말았어야 했는데...
이 애는 원래부터 1년 10개월가량 이 데크를 지키며 살았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저 애의 포즈가 너무 웃기면서도 슬픕니다.
그래서 가장 정이 많이 든 아이입니다. 젊잖고 다른 애들과 잘 싸우지도 않고 내게는 개냥이가 되어
퇴근 때 데크에서 쪼르르 달려와 엉겨 붙고 '자두'와도 사이가 좋은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문을 열어 놓아도 중문 안에 있는 발판까지만 와서 나의 동태를
살피며 얌전히 앉아 있다가 내가 아는 체를 안 해주면 슬그머니 나가버리는... 실내에선 문을 닫아 놓으면 열어 달라고 냐옹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애...
사실 이게 마음이 아픕니다. 차라리 집냥이가 되어 실내에서 살았으면 데리고 가는 것도 무리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애와 '삼순이네 가족'이 현재는 데크에 머무는 애들인데 요즘 다른 애들까지 자꾸만 데크에서 머물고 눌러앉을 태세여서 걱정입니다.
'치즈 1호'는 요즘 내가 떠날걸 아는지 매일 와서
밥을 먹고 심지어 자고 가기도 하고 데크에서 머물며 거의 종일 데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비바람이 치던 날엔 아예 현관 안에 들어와 살고
주말 내내 현관과 데크를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치 내가 이사 가는 걸 아는 것처럼... 하루라도 더 보겠다는 건지... 아님 이제 예전처럼 다시 집에 와서 살겠다는 건지... 이 애는 초기 '턱시도'와 데크에서 살며 다른 애들의 접근을 막고 텃세를 부리며
살다 지난겨울 집을 나가더니 한동안 안 와서 다시 길냥이로 어디론가 떠났나... 했는데 그 후 뜸하게 와서 밥을 먹고 손님처럼 지내더니 얼마 전부터는 매일 오더니 이렇게 아예 데크에 눌러살고 있습니다
이 애는 초기 건강상태가 극히 안 좋은 상태였는데 현재 외모상으로는 눈곱이 심한 것 이외엔 피부병도 없어지고 털도 고와진 것 같습니다. 몸무게도 늘어서 살이 통통하게 올랐습니다. 이 애는 자기가 내게 와서 헤딩을 하며 아는 체를 할 땐 내 손길을 허락하는데... 요즘 매일 내 다리에 와서 헤딩하고 그럽니다.
어쩌자고... 내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는 기분입니다. 요샌...
'치즈 2호'는 지난번 중성화 수술 대작전 때 유일하게 중성화수술을 받은 아이입니다.
하지만 이 애는 1년 반이 넘었는데도 손길은커녕
가까이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특이한 아이입니다.
밥을 주려 가까이 가도 하악질을 하고... 근접하면 몸을 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애도
요즘 데크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전엔 밥을 먹으면 잠시 머물다 스르륵 어디론가로 쿨하게 떠나는 신사 같은 애였는데... 이 녀석도 내가 떠날걸 아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애는 중성화수술을 하고도 '고등어' 에게 남편인척하고 그 애들을 돌보더니 이번엔
'삼순이' 새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신기합니다.
천성이 부성애를 가지고 태어난 앤지... 여하튼 이 애도 데크에서 누워 잠도 자고 새끼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블랙이 2호'가 나타나는걸 가장 경계하며 매일 '블랙이 2호'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즘 데크에서 머물며 잠도 자고 거의 붙어 있는 걸 보니 데크에 자릴 잡을 모양입니다. 신기한 건 '치즈 1호'와 '치즈 2호'는 상극으로 그렇게 둘이 만나기만 하면 싸움을 해대더니 요샌 싸우지 않는 건 물론 데크에서 평화롭게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그러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무슨 작당을 한 건지...
'삼순이'는 새끼들이 거의 어미만 해졌는데도 독립시키지 않고 데크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 애는 초기 삐쩍 마른 상태로 와서 서열도 최하위였고 내 눈치를 보며 나를 피해 다니며 밥을 먹고 늘 다른 아이들에게도 눈치를 보며 밥을 먹고 그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니 배가 나왔길래 새끼를 가진 걸 알았는데 새끼를 낳고 난 후에도 데크에선 존재감 없이 다른 애들과 겹치지 않게 동선을 만들어
다니던 소심쟁이 '삼순이'가 새끼들이 이렇게 컸는데도 독립을 시키지 않습니다. 길냥이들은 대개 젖을 떼고 밥을 먹을 때면 가차 없이 정을 떼고 새끼들을 내 보낸다고 하는데 이 아인 그럴 마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놀아운건 이 서열 최하위 약체로만 알았던 '삼순이'가 공공의 적인 '블랙이 2호'를 날카로운 냥펀치를 몇 번 날리며 쫓아버리더니 만삭이 된 채 와서 밥을 먹던 '고등어'조차 공격해서 쫓아 버린 겁니다. 이 '삼순이'는 대체 뭐죠? 그러면서도 새끼들을 끼고 있고요... 비바람이 몰아 치던 지난 주말엔 '자두'네 집 테이블 위에서 자던 애들이 현관 앞으로 다 몰려왔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니 차마 내치지도 못하고 그냥 어정쩡하게 현관 앞에서 '치즈' 와 '턱시도'와 이 가족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꾸만 모여들고 있습니다(물론 비도 오고 했지만)...
이제 1달 후면 이 애들과 헤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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