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남겨짐의 길목에선 아이들
1. 턱시도도 산책냥이 되고...
떠날 때가 돼서 그런가... 애들이 부쩍 '자두'와 잘 놀고 나를 더 잘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무거운데... 어느 날부터 '턱시도'도 산책 갈 때 따라나서더니 셋이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더욱 신기해합니다. 이 애들은 이제 동네에서 인싸가 되었습니다. '호피' 없이 '자두'와 둘이만 나가면 사람들은 왜 동생 안 데리고 나왔냐고 묻습니다. 웃기는 건 경쟁적으로 자두의 관심을 끌려합니다. 발라당은 둘다 '자두' 앞에서 합니다. 모두 '자두'의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나 '자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도한 '자두'는 그저 한번 쳐다보고는 그냥 무시하고 갑니다. 그러면서 둘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자두'앞길에서 그러고 있습니다. 그런데 '턱시도'는 이제 막 산책을 시작한 신입이라 영역을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200m쯤 가면 쫓아오지 않고 앉아 냐옹대며 있습니다. 그러다 다음날은 좀 더 멀리까지 쫓아오고... 또 다음 날은 그보다 더 멀리 나오고... 그렇게 조금씩 멀리까지 따라 나옵니다. 예전 '호피'가 이렇게 조금씩 멀리까지 영역을 넓히며 따라왔는데 이 애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따라오다 더 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가 올 땐 또 셋이 같이 옵니다. 산책선배인 '호피'는 때에 따라 직선거리 700m쯤도
같이 가고 동네 한 바퀴 코스에선 '호피'는 같이 끝까지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제 산책의 맛(?)을 알아버린
'턱시도'는 제자리에서 우릴 기다리며 냐옹거리고 있다 우리가 오면 폴짝 뛰어나와 같이 옵니다.
신기하고... 또 안쓰럽고 그럽니다. 이제 헤어져야 할 텐데...
2. 집 나간 삼순이와 남겨진 새끼들은...
그러던 어느 날 '자두'와 산책을 나가는데 동네 어귀 깨밭에서 '자두'가 낑낑거리며 깨밭 사잇길로 들어갑니다. 뭘 발견했는지 나를 끌고 낑낑거리며 들어가는데... 가서 보니 세상에... 풀숲에 '삼순이'가 웅크리고 있는 겁니다. '자두'는 반가워 낑낑거리고 어쩔 줄 몰라하는데 '삼순이'는 이게 뭔 일이야... 하듯 멍하니 우릴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둘이는 아는 사이니 '삼순이'가 '자두'를 발견했다고 도망가거나 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반가워 주머니를 뒤지니 아무것도 없고 대충 '자두'를 묶어 놓고 집에서 추르를 가져와 주었더니 추르를 받아먹습니다. 곁에 있던 '호피'는 물 끄러니 바라보고 있더군요... 이 애가 집을 나가 잘 먹고 있는지... 걱정인데 비 온 뒤라 바닥에 깔린 박스는 다 젖어 있고... 아마도 '삼순이'는 집을 나가 여기서 살고 있었나 봅니다.
'삼순이'가 남기고 간 새끼 3마리 중 '하얀 치즈'는 내 눈에 띄지 않게 살아 발견이 잘 안 됩니다. 그리고 '까망이'와 '노란 치즈'는 매일 나를 따라다니고 냐옹거리며 말을 겁니다. 아마도 먹을걸, 간식을 달라고 하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애들에게 간식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어차피 야생에서 살려면 간식은 못 먹고살고 또 버릇을 들이지 않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가슴이 좀 아프지만 이 애들에겐 그래야 합니다.
그러고 며칠 후 '삼순이'가 오랜만에 데크에 왔습니다만 새끼들에겐 냉정하게 처다도 안 보고 밥을 줘도 먹지 않고 동태를 살피고 한 바퀴 돌더니 우두커니 앉아 있길래 간식을 주었는데 그것도 먹지 않고 그냥 가버립니다. 무슨 일인지... 그렇게 왔다가 그냥 갑니다. 마음이 짠 합니다. 아마도 새끼들이 잘 있는지 확인을 하러
와서 잘 있으니 그냥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집 나간 이유도 아마도 새끼들이 더 안전하고 편한 곳에서 밥을 먹게 하려고 자기가 영역을 떠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애들이 잘 있나 와서 보고 가는 엄마 '삼순이'...
3. 그리고 치즈들과 고등어...
치즈 1호는 이제 매일 아침저녁 와서 밥을 먹고 현관 앞에서 쉬기도 하고 문을 열어 놓으면 현관에 들어와
전실에서 잠도 자고... 그럽니다. 왜 다시 와서 마치 집고양이처럼 구는지... 작년 겨울 그렇게 여기서 겨울을 보내더니 봄에 집을 나갔다가 여름부터 다시 오기 시작했는데 이제 다시 현관에 정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치즈 2호는 정말 신기한 아이입니다. 1년을 넘게 나와 조우를 하고 매일 밥을 주는데도 나를 보면 피하고
하악질을 합니다. 그런데 '삼순이' 새끼들에겐 정말 다정한 아빠처럼 굽니다. 애들과 놀이도 하고 나 잡아봐라... 놀이, 까꿍놀이처럼 갑자기 나타나 애들에게 덮치는 듯 놀라게 하는 놀이도 하고... 누워있을 때 애들이 와서 배을 타고 넘고 해도 그냥 놔두는 전형적인 아빠 같아 보입니다.
신기한 건 예전엔 그렇게 치즈들 둘이 상극이더니 이젠 데크에서 서로 소 닭 보듯 그냥 지낸다는 겁니다.
고등어는 '삼순이'가 없자 다시 밥 먹으러 옵니다. 그런데 이 애는 유일하게 새끼 고양이들에게 하악질을 하는 애입니다. 여기 다른 성묘들은 새끼가 밥을 먹으러 오면 비켜주고 간식도 양보하고 그러지만 '고등어'만은
제 새끼가 아니라서 그런지 가까이 오는 걸 싫어합니다.
4. 공공의 적 블랙이 2호는...
어느 날 새벽 고양이들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데... 비도 오고 귀찮고 해서 나가지 않고 있는데 점점 더 커지고 누군가가 엄청 물리고 있는지 고양이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납니다. 해서 나가보니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고 마당에선 '치즈 2호'와 '블랙이 2호'가 대치를 하고 있는데 가까이 가보니 '턱시도'가 쓰러져 있는 겁니다. 해서 좀 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비 온 뒤 잔디에서 '블랙이'와 싸우느라 뒹굴고 그랬는데 '블랙이'한테 엄청 당했나 봅니다. 몰골이 말이 아니고... 그러다 아마도 우군인 '치즈 2호'가 합세한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일단 '블랙이 2호'를 쫓아 보내고 '턱시도'를 데리고 와서 젖은 털을 닦아주었습니다만 잔디가 묻고 털이 젖어 엉망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가보니 잔디에 턱시도 털 잔해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걱정입니다. '블랙이 2호'는 이곳 터줏대감인 '턱시도'까지 제압하고 말았는데 남은 애들이 공동으로 경계를 하는 형국이니... 이 애들은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없으면 다시 뿔뿔이 흩어질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싸우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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