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와의 일상

28. 사진을 정리하다가...

by James 아저씨

며칠 전이었습니다. 핸드폰 저장용량이 너무 꽉 차 정리하리라 마음먹고 정리를 하다 보니 대부분이 사진입니다. 여행 사진과 일상의 사진들을 백업하고 보니 남은 건 대부분이 고양이와 자두 사진들입니다. 특히 지난번 집에서 고양이 10여 마리와 함께 했던 시절의 고양이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정리를 하려 사진을 쭈욱 보는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필 찬바람이 불어오고 추워지는 날씨... 이 애들이... 지금 이 애들이 어디서 살고 있을까... 살아 있기나 할까... 내가 두고 온 애들이... 어디선가 살아남아 있을지... 지난겨울을 못 이긴 애들은 분명 세상을 떠났을 거고... 살아남아 뿔뿔이 헤어진 애들이 또 한 번 이 겨울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니 또 한 번 가슴이 콱 미어 옵니다. 어쩌자고... 아직도 나는 이 아이들을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바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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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호피, 우) 턱시도

그 하나하나의 애들 중 특히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힘들게 하는 애들이 있습니다. 특히 '턱시도...' 이 애는 처음으로 고양이라는 세계에 나를 데려다준 아이고 내 인생에 고양이와 엮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안 해봤는데 어느 겨울 아침 출근길에 현관문 앞에서 나를 보고 냐옹거리며 말을 걸어온 애입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당황해하는 나와는 반대로 그 애는 빤히 나를 올려보며 뭐라 야옹야옹 거리며 말을 겁니다. 사람이 오면 도망을 가는 게 보통의 길냥이들인데 이 애는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나온 나를 보고도 도망은커녕 빤히 올려다보며 그렇게 내게 왔습니다. 배가 고파 온 건가? 해서 일단 자두 밥이라도 주며 이따 퇴근 때 고양이 밥을 사 올 테니 지금은 이거라도 먹어라 하고 출근을 했고 퇴근하고 오니 마치 내가 아침에 한 말을 지키는 걸 보겠다는 것인지 또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에 와 밥을 먹고 갔습니다. 그러자 또 한 아이 '치즈 1호'가 왔고 이 둘은 영역다툼 없이 둘이 현관 앞 데크를 둘의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2022년 12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난 건지... 동네 길냥이들이 이 애 저 애 와서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각자의 나름 영역을 만들어 밥을 먹어도 꼭 그 자기 영역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밥그릇을 그렇게 놓아두자 알아서 자기 밥그릇에서 밥을 먹고 다른 영역으로는 잘 가지 않는... 마치 그들 만의 규칙이 있다는 듯...

그래서 오는 아이들마다 이름을 지어 주었고 특성과 외모에 따라 이름은 '치즈 1호, 2호' '블랙이 0,2,3,4호' '고등어', '삼순이', '최강신예'... 그리고 고등어 새끼들과 삼순이 새끼들까지... 그러다 또 운명의 한 아이가

왔습니다. 바로 '호피'입니다. 2023년 여름 무렵... 작고 삐쩍 마른 길냥이 한 마리가 다른 성묘에게 쫓기는 듯 와서 도망을 간 게 하필 자두 우리... 당시 자두는 같이 살던 살구가 세상을 떠나 삶의 의욕을 잃고 시름시름 앓듯 밥도 안 먹고 누워만 있던 때였지요... 그 아기 길냥이가 바로 '호피'였습니다. 자두 우리로 들어가 자칫 자두가 물면 어쩌나 걱정을 한 것도 잠시... 놀랍게도 자두는 그 작은 길냥이 '호피'를 받아들이고 다른 성묘들의 공격을 막아주는 겁니다. 그리고 누워만 있던 자두는 거짓말처럼 다시 활력을 찾고 예전처럼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성묘들은 더 이상 '호피'를 공격하지 못하고 '호피'는 그 자두 우리를 자기 영역으로 삼고 그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호피'는 자두와 함께 가을을 보내고 제법 커져 성묘가 되어 갔습니다. 겨울까지 '호피'는 자두와 함께 지내다 겨울 끝 무렵 훌쩍 나가더니 안 돌아와... 아... 이제 이 애는 스스로 자기 영역을 찾아 어디론가 떠났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몇 개월 후 봄이 되자 나타났는데 훌쩍 커진 모습으로 완전한 수컷이 되어 나타났는데 더 놀라운 건 나가서 중성화수술을 받고는 다시 돌아온 겁니다. 대개 중성화 수술을 하러 잡힌 고양이는 다시 자기가 잡힌 곳에 풀어놓으면 그곳에서 산다는데... 이 아이는 어디선가 중성화 수술을 받고는 다시 자두 곁으로 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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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우아한 자태의 턱시도 우) 극강의 귀요미 호피

내가 잊지 못하는 건 바로 이 두 아이... '턱시도'와 '호피'입니다. 내게 처음으로 고양이 세계를 알려주고 고양이들에게 정을 주게 한... '턱시도'... 가장 의젓하고 우리 집에 오던 10마리의 길냥이중 원톱으로 서열에서도 최상위에 있었고 현관 앞 데크 중앙을 차지하고 우리 집을 자기 영역으로 삼은 아이... 내가 '턱시도'~~ 하고 이름을 부르면 어디선가 있다가도 '저 여기 있어요~'하듯 짠 나타나는 아이... '턱시도'는 어느 추운 겨울 현관문을 조금 열어 놓고 현관 안에 작은 박스 몇 개를 들여놓았더니 겨울밤... 이 아이는 현관에서 겨울을 났고 또 그렇게 열린 문으로 들어와 현관에서 겨울을 난 아이들이 몇몇 있었지요... '호피'는 현관 쪽으로는 못 오고 첫해 겨울은 자두 집에서 나더니 두 번째 겨울은 어디선가 집이 있는지 밥 먹을 때와 산책 때만 왔습니다. 신기하게도 자두가 산책을 나가면 '호피'는 따라서 같이 산책을 했고 이게 동네에선 신기한 일로 동네의 스타가 되기도 했었지요... 그러다 보니 원조 '턱시도' 조차 '나도 산책에 갈 거야' 하듯 셋이 산책을 하게 되기도 했고요 현관으로 들어와 잠을 자던 '턱시도'는 문을 열어 놓으면 거실에도 들어와 요기조기 살피며 돌아다니는데 꼭 현관 앞에서만 누워 있습니다. 문을 열어 놓고 언제라도 나갈 수 있게 말이죠... 차라리 '나 여기 실내에서 살 거야~' 이러고 눌러앉으면 그때 집고양이가 되었을 텐데... 이 아이는 현관문과 중문을 열어 놓고 언제든 나갈 수 있어야 했습니다. 문을 닫아 놓으면 불안해하고 문 앞에서 계속 처량하게 울어대서... 그렇게 문을 조금 열어 놓으면 들어와 중문 앞에서 엎드려 자곤 했습니다. '호피'도 가끔 문을 열어 놓으면 들어와 자두와 함께 거실에서 놀곤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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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치즈1호/ 중) 치즈 2호/ 우)최강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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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데크에 한꺼번에 와서 밥먹는 치즈1호,턱시도,최강신예,고등어, 블랙이/ 우) 한꺼번에 온 블랙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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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와 그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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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와 그 새끼들(맨끝의 치즈 2호는 육아도우미 역할)

그래서 지금... 나는 그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여러 회한에 잠겼습니다. 이 아이들은 이 겨울을 또 어디서

나고 있을까... 길냥이 들의 평균 수명이 2~3년이라는데 이 아이들이 아직도 살아 있을까... 나는 추운 바람이 불고 기온이 떨어지는 이 맘 때면 두고 온 그 아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가슴이 저려 옵니다. 사진을 정리하다... 그 아이들 사진을 보며 또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결정할 때 아이들이 가장 마음에 걸려 여러 고민만 하다가 결국 그냥 두고 온 그 애들이 두고두고 눈에 밟히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턱시도'와 '호피'는 데려다

실내 고양이로 살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소용없는 후회 말입니다. 나름 이사 전 고양이 커뮤니티와 동물보호센터에 문의를 했더니 길냥이는 영역을 옮기면 적응을 못하고 도태가 되기 쉽고 그 동네에서 쫓겨나게 된다고... 그 말을 들으니 데려갈 엄두가 안 나서 그냥 두고 왔었는데... 차라리 집냥이로 키우며 문을 꼭꼭 닫아 놓고 집에서 살게 할걸 그랬나~ 하는 쓸데없는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온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면 더 그런 생각이 납니다. 놓지도 못하고 끌어안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그런데다 요즘 이 동네에선 까망이가 자꾸 들어와 또 가슴에 들어앉았습니다. 이전 애들이 내 가슴에 남아 이렇게 아픈데 까망이마져 들어왔습니다. 큰 일입니다. 내보내려 했더니 또 한 아이가 들어왔으니... 말입니다.


* 대문사진- 예전 집에서 호피와 자두가 산책 후 둘 다 퍼져 있던 때...



자두, 살구, 고양이에 대한 지난 글들

[브런치북] 자두, 살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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