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를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
남편이 페루에서 꼭 가고 싶은 곳은 마추픽추였다. 사실 마추픽추는 우리가 페루로 가기로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유명한 관광지에는 별 흥미가 없었고 어딜 가든 현지의 문화에 푹 젖고 싶었다. 그래서 절충한 계획은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꼭 들러야 하는 고산 도시인 쿠스코에서 2주 동안 일하는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 동안 마추픽추에도 다녀오는 것이었다.
Workaway.info라는 웹사이트는 세계 각지에 있는 우리 같은 여행객들과 숙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노동력을 원하는 호스트들을 연결해 준다. 보통 하루 4~5시간, 주 5일 정도 봉사하며 숙식을 해결 할 수 있다. 이곳에 가입을 해서 고심 끝에 찾아낸 일자리는 쿠스코에 있는 한 여행사였다. 영어만 할 줄 알면 일할 수 있는 곳은 무궁무진했다. 그 여행사의 호스트 루이스와 이메일로 2주간의 홈스테이를 계약하고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기대하고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의 이메일에 있는 주소와 전화번호만 가지고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 기사에게 여행사의 주소를 건넸다. 약 20분 만에 도착한 곳은 여행사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도심과는 조금 떨어진 주거지였는데 건물들은 허름하고 유기견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녔다. '간판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하지?' 루이스에게 전화를 해보니 이메일을 주고받았을 때와는 달리 영어를 전혀 못 했다. 막막함이 몰려왔다. '낚인 건가? 2주 동안 어떻게 숙박을 해결하지? 그건 예산에 없던 지출인데….' 걱정을 하며 주변 가게에 물어물어 우여곡절 끝에 이상한 출입문으로 한 건물의 5층까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고산지대라서 산소가 부족한지 겨우 5층 계단을 오르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올라가 보니 건물의 겉모습과는 다르게 비교적 말끔한 여행사 사무실과 부엌, 화장실, 그리고 봉사자들이 머무는 방이 있었다. 그 방은 2층 침대가 4~5개 있었고 이미 4명의 봉사자가 와있었다. 해가 지니 너무 추웠다. 더울 줄 알고 겨울옷은 안 가져왔는데… 다행히 코를 고는 봉사자는 없었지만, 동네 유기견들이 밤새 짖어대는 바람에 시끄러워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낯선 환경과 기대에 못 미치는 생활 여건으로 심신이 지쳐왔다. 리마에서 사서 미리 먹고 온 고산병 약을 8시간마다 먹으며 두통과 심장벌렁임에 맞섰다. 새삼 옆에서 투덜거리는 남편의 존재마저 위안이 됐다.
이튿날부터 우리의 봉사가 시작되었다. 아침식사는 봉사자 각자가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 온 과일과 빵 등으로 간단하게 먹고, 남편은 미리 와 있던 4명의 봉사자와 함께 여행사가 신축하고 있는 호스텔 공사현장에 가서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건축 잡일을 도왔고, 나는 그동안 주방장을 도와 모든 직원과 봉사자들이 먹을 점심식사 준비를 돕게 되었다. 주방장은 30대 중반 현지 여성이었고 이름은 아이대였다. 영어를 전혀 못 하셔서 내가 생존 스페인어를 배워 겨우 소통했지만, 페루의 전통 가정식 요리들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나는 고작 감자를 깎거나 양파를 다지는 일만 했는데도, 결과물을 보면 보람도 있었다. 1시쯤 다 함께 우리가 준비한 점심을 먹고 나면 일과는 끝이 났다. 하지만 고산병 증상으로 피로가 빨리 쌓여서 점심 먹고 2시간 정도 낮잠을 자며 쉬다가 시내로 걸어 나가서 시장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고 들어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