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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킴 Jan 14. 2021

04. 애 낳으면 세계여행은 꿈도 꾸지 말라고?

페루 쿠스코에서 만난 데이비드네 가족

우리보다 며칠 먼저 도착한 4명의 봉사자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온 가족이었다: 아빠 데이비드, 엄마 에이미, 만 13세 형 에이든, 만 11세 동생 카이. 데이비드와 에이미는 학교 선생님이고 케냐와 일본 등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근무하며 아이들도 다 함께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살고 있었고 지금은 1년간 세계여행 중이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에이든은 중학교 1학년, 카이는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고 한창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느라 바쁠 때일 텐데, 짧은 휴가도 아닌 1년이란 긴 시간 동안 휴학을 하고 엄마 아빠와 함께 Workaway를 통해 세계 이곳저곳에서 일하며 여행을 하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두 형제는 엄마와 아빠를 따라 공사현장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며 잡일을 돕고 점심을 먹으러 올라왔다. 2주 동안 한방을 쓰며 매일 같이 점심을 먹다 보니 이 두 형제가 어른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섞여 대화하고 어울린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나는 영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많았기에 365일 동안 부모님과 24시간 붙어 지내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사춘기의 아이들에겐 답답하고 성가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어 온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란 기본적으로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놀 궁리만 하며, 부모님께 이거 해달라 저거 사달라 끊임없이 요구만 늘어놓는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잠깐잠깐씩 떠나는 휴가 차원의 해외여행이 아닌 이런 여행은 못 갈 거로 생각했기에 임신 전 마지막으로 온 여행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여행에서 만난 데이비드네 가족은 내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그들의 두 아들은 결코 데이비드와 에이미의 자유를 빼앗는 짐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에이든과 카이는 엄마 아빠처럼 각자 여행 블로그도 쓰고 있었다. 그들은 엄마 아빠에게 딸려 다니는 짐이 아니라, 1년간의 가족 여행을 각자의 관점으로 경험하고 기록하는 독립된 자아를 가진 존재였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가치를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진 부모가 몸소 실천하며 살기에, 두 아들은 1년간의 휴학 동안 경험하는 것들을 통해 인생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또래 친구들에게 그 나라 언어를 배우기도 하고, 그 친구들의 삶을 관찰하며 우물 밖 세상을 알아가고 있었다. 임신하는 순간부터 향후 20년간 이런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은 불가능한 이야기를 내게 현실로 보여주고 있었다.


고도 적응은 꼬박 5일이 걸렸다. 주말은 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봉사자들은 보통 쿠스코에서 갈 수 있는 관광지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마추픽추는 하이라이트로 맨 마지막으로 가려고 생각했었기에, 레인보우 마운틴으로 갈까 했는데 그곳은 쿠스코보다 고도가 더 높고 하이킹도 꽤 해야 한단다. 맙소사, 이제 겨우 쿠스코의 고도에 적응했는데 레인보우 마운틴은 무리일 것 같아서 즉흥적으로 결정한 마추픽추 여행.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쿠스코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마추픽추였다. 데이비드네 가족은 그다음 주에 마추픽추를 이미 계획해 둔 상태여서 이번 주에는 레인보우 마운틴으로 간다고 했다.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 각자 다른 곳으로 다녀와 보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기차를 타고 다녀오는 코스가 가장 편한데 너무 비싸서(적어도 1인당 400달러), 우리는 최대한 저렴한 버스 패키지(1인당 150달러)를 선택했다. 토요일 아침 8시, 버스를 타고 쿠스코를 떠났다. 말이 버스지 20인승 승합차였다. 짐을 실을 트렁크도 없어서 사람과 짐이 꽉 찬 상대로 덜덜거리며 6시간 동안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 히드로일렉티카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아구아스깔리엔떼라는 마추픽추 마을까지 가는 편도 30달러 기찻값을 아끼기 위해 기찻길을 따라 3시간을 걸어서 해가 다 진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 있는 호스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5시부터 줄을 서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에 올라갔다. 


마추픽추는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광활했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온 산을 누비느라 피곤하고 배고팠는데, 마을에 내려와서 사 먹은 피자까지 너무 맛이 없으면서 비싸기만 해서(심지어 자릿세까지 15불을 받았다. 세계적 관광지답게!) 심신이 확 지쳐버렸다. 다시 히드로일렉티카까지 3시간을 걷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어서 30불을 내고 기차를 탔다. 돈이 행복을 사지는 못하지만 편리함은 살 수 있었다. 기차에서 마주 보고 앉은 두 명의 불가리아 여자들은 우리처럼 어제 기찻길을 걷다가 무슨 파리에게 뜯겨서 두 팔이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세상에… 기차에서 내려 또다시 6시간의 버스 대장정에 올라 사람과 짐들로 200% 가득 찬 승합차를 타고 덜덜거리며 산길을 달려 우리의 본부인 쿠스코 호스텔에 도착했다. 데이비드네 가족은 그동안 레인보우 마운틴을 다녀왔다. 다음날부터 5일간 또 열심히 일하고 다가오는 주말에는 그들이 마추픽추로, 우리는 레인보우 마운틴으로 떠났다. 서로에게 따끈따끈한 조언들을 전해주면서. "마추픽추에서 내려와서 절대 피자는 사 먹지 마, 그리고 기찻길을 걸을 땐 꼭 긴 팔 긴바지를 입어야 해"


몸이 피곤하니 얼큰한 한국 음식이 당겨서 쿠스코에서 유일한 한국식당 사랑채를 찾아갔다. 나는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속이 안 좋은 남편은 소고기죽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6첩 반상이 내 앞에 차려지니 너무 행복했다. 반찬은 리필도 되고 역시 한국인 인심이 좋다. 사장님께 한국 라면 파는 곳이 있냐고 물으니 쿠스코에서 라면을 파는 단 한 군데의 마트를 소개해 주었다. 바로 찾아가서 한국 라면을 종류별로 두 봉지씩 총 여섯 봉지를 사서 며칠 동안 저녁으로 야금야금 끓여 먹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정크푸드에 불과한 라면이 객지에서는 소울푸드가 되었다. 일본에 9년을 살았던 데이비드네 가족 두 아들이 라면을 맛보더니 입맛에 맞는지 잘 먹길래 날을 잡아 라면 파티를 열었다. 안성탕면 6개를 큰 냄비에 올리고 물 개량까지 정확히 끓여 데이비드네 가족, 여행사 직원 한 명, 루이스의 두 아이까지 총 9명을 모아 함께 나눠 먹었다. 루이스의 아이들은 'Picante!(매워)'를 외치면서도 재미있는지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부터 각자 먹던 아침 식사 풍경도 바뀌었다. 서로서로 자기 것을 나눠 먹는 훈훈한 풍경으로.


데이비드네 가족들과 헤어지기 전, 라면을 통해 소개된 한국의 맛으로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사랑채를 찾았다. 부대찌개, 불고기, 제육볶음 등 맛있는 한국 음식 한 상을 벌여놓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레인보우 마운틴에서 데이비드, 에이든, 카이,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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