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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킴 Jan 14. 2021

05. 칠레의 농장에서 남편이랑 한 달 살기

내 생에 가장 평온했던 시간

페루 여행 후 우리는 바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날아갔다. 페루에서 3주 동안 생존 스페인어를 몇 마디 배웠는데, 칠레에 도착하니 이 나라 사람들은 같은 스페인어를 마치 이탈리아어처럼 빠르고 거친 억양으로 쏟아내는 바람에 어안이 벙벙했다. 겨우 표준 한국말을 배운 외국인이 부산에 와서 사투리를 듣는 느낌이 이럴까? 다행히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남편이 스페인어를 곧잘 배워 모든 의사소통을 도맡았다. 한국에 있을 땐 한국말 잘 못한다고 구박했는데, 한국말보다 못하는 스페인어로도 나를 에스코트하는 모습을 보니 존경심이 올라왔다. 


칠레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칠레산 와인을 좋아해서인데, ‘칠레’하면 광활한 포도밭이 떠올랐고, 포도 농장에서 팜스테이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매일 밤 와인을 마시면서! 


Workaway에서 산티아고로부터 3시간 남쪽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 있는 탈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유기농 블루베리 농장을 선택해서 호스트와 4주간의 계약을 맺고 버스에 올랐다. 쿠스코에서 일했던 여행사가 기대보다 여러모로 열악했기에 이번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산티아고에서 탈카로 가는 버스는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를 갈 때 탔던 승합차 같은 끔찍한 버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급진 2층 관광버스였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인 칠레는 남북으로 이어지는 장거리 버스 시스템이 칠레 물가에 비해 아주 저렴하면서도 훌륭했다. 마치 비행기에 탄 것처럼 목베개와 담요도 주고 물과 간식까지 제공했다. 좌석도 120도 정도로 뒤로 눕혀지고 승차감도 아주 좋았다. 차에서는 잠을 잘 못 자는 남편이 3시간 내내 숙면을 취했다. 버스 창밖으로는 안데스 산맥 설산의 절경이 보였다. 


탈카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40대 초반의 곱슬머리 여성 농장주 히메나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쿠스코 여행사 사장 루이스와는 달리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하셨다. 영국에서 산 적이 있다고 했다. 말이 통하자 오랜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밤이 늦어 우선 농장이 아니라 탈카 시내에 있는 히메나의 집으로 가서 그녀의 가족들을 만났다. 남편 리카르도, 그들의 두 아들만 9세 아윤, 만 6세 블라스와 큰 개 두 마리,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까지. 히메나의 집은 2층짜리였고 방이 4개, 화장실이 3개, 거실, 주방, 창고, 넓은 마당에 정원과 테라스가 있는 저택이었다. 


이튿날 아침 히메나는 우리가 일주일간 농장에서 해먹을 식재료를 사주기 위해 함께 시장과 마트를 들렀다. 과일, 채소, 빵, 파스타 그리고 매일 마실 와인까지 5병을 사서 구불구불 산길을 달려 산 중턱에 있는 그녀의 블루베리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 하우스는 방이 2개, 화장실 하나, 주방과 거실, 테라스로 이루어진 소박한 2층 집이었다. 와이파이도 안되고 텔레비전도 없고 전화기도 없었다. 근처에 있는 사람이라곤 40대 후반의 농장의 매니저 헤르만 뿐이었는데 영어를 전혀 못했다. 


이 집을 4주 동안 단독으로 우리 부부가 쓰게 되었다. 히메나는 가족들과 함께 시내에 있는 집에 지내면서 낮에 잠깐씩 농장에 들릴 거라고 했다. 허허벌판에 있는 외딴곳이라 걱정도 되었지만 쿠스코에서 다른 봉사자들과 북적거리며 한 방을 쓰다가 이렇게 우리 부부 둘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기다니 너무 설레었다. 


히메나의 유기농 블루베리 농장에서의 일과는 이랬다. 오전 7~8시 기상해서 과일, 오트밀, 빵 등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오전 9시부터 농장 일을 시작했다. 한창 여름인 11월이었는데 일을 하려면 긴 옷을 입어야 해서 매일 땀을 뻘뻘 흘리며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블루베리 잎에 유기농 영양제를 뿌려주는 일, 자동으로 물주는 시스템의 파이프를 청소하는 일, 콩 따는 일, 트랙터 뒤에 타서 비료 뿌리는 일, 양파 심기 등… 둘 다 도시에서 자라 삽질 한 번 해보지 않은 남편과 나는 어리버리한 팀이었다. 둘 다 못하는 일이라 함께 배우고 실수하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특히 양파 심는 일이 가장 힘들었는데, 질척이는 논에서 장화를 신고 양파 모종 한 뿌리 당 스쿼트를 한 번씩 하는 일은 앞으로 양파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꿔놓을 정도로 고됐다. 볕이 뜨거운 정오 무렵에는 집으로 들어와서 2시간 정도 쉬며 점심을 해 먹었다. 그렇게 매일 매 끼니를 요리 해 먹은 적도 없었다. 농장이 말 그대로 산 중턱에 있어서 근처에는 다른 농장 밖에 없고 작은 구멍가게 하나 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오후 5시쯤 빵을 파는 차가 확성기로 ‘빵 사세요’를 외치며 산길을 달려주는 덕분에 신선하고 저렴한 빵을 사 먹는 재미는 있었지만. 오후 2시쯤부터 다시 농장일을 시작해서 오후 5시나 되어야 일과가 끝났다. 쿠스코에서 하루 4시간 일했던 것에 비하면 하루 6시간 땡볕에서의 농장 일은 훨씬 고되고 힘들었다. 그래도 하루 세끼 식재료를 다 제공받고 우리만의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할 만했다. 


오후 일과까지 끝나면 샤워 후 그날 땀에 전 옷과 수건을 손빨래해서 테라스에 널어놓고 저녁을 해 먹었다. 와이파이도 텔레비전도 없는 곳이었지만 다행히 요리 책이 몇 권 있어서 그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매일 색다른 요리도 해 보았다. 와인 한 병을 오픈하고 둘이서 느긋한 저녁식사 시간을 즐기는 것은 하루 일과의 하이라이트였다. 우리는 그 시간을 ‘Buena Time’(좋은 시간)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의 바쁜 일상 속에서 그때그때 풀어놓지 못했던 실타래 같은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함께 풀었다. 와인 최대 수출국답게 와인 가격이 정말 저렴해서(한 병에 2~3불) 더 많이 마시고 싶었지만 행여 알코올 중독이 될까 봐 둘이서 하루에 한 병으로 제한을 두었다. 점심때 와인과 어울릴 만한 요리를 할 땐, 낮술부터 시작할 때도 있었는데, 딱 한 잔씩만 해야 저녁에 마실 와인이 있기 때문에 조절하면서 마셔야 했다. 빈병은 주방 한편에 진열했는데, 4주간의 팜스테이가 끝나고 보니 약 20개의 빈병이 줄을 서서 우리의 '부에나 타임'을 추억해주었다. 


해가 늦게 져서 밤 10시가 되어서야 캄캄해졌는데, 산 속이라 그런 지 밤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도시에서는 밤이라도 암막 커튼을 치지 않는 이상 바깥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 때문에 실루엣이 보이는데, 그곳에서는 밤이 되면 눈을 아무리 부라려도 마치 눈을 감고 있을 때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괴한이라도 들이닥치면 꼼짝없이 아무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것처럼 무섭기도 했지만 우리는 쿠스코서 데이비드네 가족들과 한방을 썼기에 못했던 섹스도 실컷 하고 매일 밤 숙면을 취했다. 하루 6시간의 육체노동, 하루 세끼 집밥, 하루 한 병 와인, 둘만의 느긋한 대화와 섹스는 하루를 윤택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첫째 출산하던 날 진통할 때, 내 생에 가장 평온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자기 최면을 했는데 그때 떠올린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평온한 농장의 전경과 매일 밤 느꼈던 그 소박한 행복.


우리가 4주 동안 농사지으며 살았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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